[맛있는 여행]-21. 아쉬움이 남는 삼겹살의 고장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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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21. 아쉬움이 남는 삼겹살의 고장 청주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4-01-15 17:38
  • 수정 2024-03-04 14:16
  • 신문게재 2024-01-16 10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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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 가축시장에서 돼지를 운반해 주는 인부들.
필자가 어렸을 적만 해도 농촌의 대부분 집에서 돼지 한두 마리 정도는 집 안에서 나오는 음식물 잔반인 구정물이나 곡물 겨 등을 먹여 사육했다.

돼지는 시골에서 몫 돈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정이나 마을에 대소사가 있을 경우 주로 돼지를 잔치 음식으로 삼았다.

지금은 법으로 밀도살이 금지되어 도축장에서만 돼지를 잡고 있지만, 예전에는 마을에서 돼지를 잡았다.

동네마다 마을의 대소사에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 돼지를 잡아 몇 근씩 떼여가고 내장이나 머리 족 등은 돼지를 도살하는 사람에게 품삯으로 주었던 것이다. 가끔 동네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런 날에는 어른들이 야단을 쳐도 아이들이 모여 돼지 잡는 모습을 구경하다 돼지 오줌보를 얻어 그 속에 물을 넣고 축구를 하기도 했다.



당시 돼지고기는 전쟁을 치른 후인지라 궁핍한 생활을 연명해 가고 있어서 대부분 여러 식구가 나눠 먹을 수 있는 국을 끓였다.

그렇지만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먹을거리가 풍부해진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돼지고기 부위 하면 살과 지방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삼겹살이 인기가 제일 좋다.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세분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도 초 축산물품목제조보고였으며, 삼겹살이라는 말이 사전이 등록된 것은 1994년으로 "돼지의 갈비에 붙어 있는 살.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돼지고기"라고 정의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삼겹살'은 고유어와 한자어의 합성어로 우리 어법(語法)에 맞지 않는 말이다.

우리말에서는 '한개·두개'나 '한올·두올'처럼 '두겹·세겹'이라 하지, '이겹·삼겹'이라고 하지 않는다.

즉, 순수한 고유어도 아니고 순수한 한자어도 아니다. 삼(三)은 한자어다. 겹은 고유어며, 살도 고유어로 세 개의 어근이 합쳐진 합성어가 '삼겹살'이다.순우리말(고유어)가 되려면 '세겹살'이 되어야 한다. 즉 '세겹살'은 표준어이고, 고유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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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 표지.
1931년 출판된 방신영(方信榮 1890~1977)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 6판에 삼겹살을 '세겹살', '뱃바지', '세층저육(三層猪肉)'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세겹살(뱃바지)'은 배에 있는 고기로 돈육 중에 제일 맛있는 고기라는 내용이다.

1934년 11월 3일 자 동아일보(東亞日報 4면에 기사다. 제목은 "도야지(돼지)고기는 조선의 있어서는 강원도에서 조 껍질을 먹고 자란 것이 조타"이다. 우리나라 돼지고기로 치자면 강원도에서 좁쌀 껍질 먹여 기른 것이 좋다는 뜻이다. 기사에서는 "돼지 뒤 넓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삼매라 하는)'이 제일 맛이 있다 하고"라고 했다. 삼겹살을 세겹살 혹은 '삼매(三枚)'라 불렀다.

1940년 홍선표(洪善杓)가 쓴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도 '세겹살'이 '가장 맛 좋은 부위'라고 나온다.

경기도 개성 출신개성 동화작가 해송(海松) 마상규(馬湘圭1905∼1966) 선생이 57년에 쓴 '요설록(饒舌錄)'에서는 삼겹살이 우리나라 특유의 비육법(肥肉法)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한다.

"개성 산 삼층(三層) 제육이 제육으로 치는 것은 정평이 있는 일이지만 개성 산이라고 모두 삼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양돼지 아닌 순종을 그것도 소위 양돈장 같은 대규모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과부 댁 같은 데서 집에서 기르는 것이다.

뜨물을 얻어다가 먹이는데 얼마 동안은 잘 먹이고 그다음 며칠 동안은 뜨물을 주지 않는다.

잘 먹을 때에 그것이 살이 되고 못 먹을 때는 기름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살, 비계, 살 삼층 제육이 된다는 것이다. 고수하고 맛 좋은 품이 양돼지에 비할 바 아니다."라고 비육(肥肉) 의 결과임을 증언하고 있다.

이렇듯 '세겹살'이 1957년 마상규(馬湘圭)의 요설록부터 '삼겹살'로 바뀌고 1959년 1월 20일자 경향신문 4면 김제옥의 기명 기사에서 저녁 식탁에 올릴 '돼지고기와 무 볶음' 요리에 들어가는 돼지고기 식재료로 '삼겹살'로 표기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신문에 실린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 왕준련 회장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돼지고기를 널리 사용하지 않으나 서양에서는 돼지고기를 널리 사용한다. 그중 베이컨은 돼지고기 삼겹살을 소금에 절여서 1개월간 지난 후에 훈연 처리하여 얇게 썬 것이다"

1972년 동아일보의 기사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조림용으로 소개한다. '돼지고기 삼겹살 한 근을 2센티로 네모나게 썰어 물을 붓고 조리는 방식'이다. 너무 많은 기름기를 줄이기 위하여 "끓였을 때 위에 떠 오른 기름을 걷어내고 생강 등을 넣어서 잡냄새를 없애라"고 조언한다.

삼겹살이 본격적인 외식으로 등장하는 것은 1970년대 말부터다.

'그간 우후죽순처럼 주점가에 늘어가던 삼겹살집에도 여름이 시작 되면서 사람의 발길은 눈에 띄게 뜸해졌다'(1979년 8월 25일자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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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가정집 돼지우리.
하지만 1980년대 초반을 넘어가면서 삼겹살은 도시 노동자들에게 퇴근 후 즐겨 마시는 소주와는 뗄 수 없는 안주가 된다.

특히 삼겹살은 80년대 초 강원도 탄광촌에서 광부들이 많이 먹기 시작했다.

돼지고기의 지방은 융점이 사람 체온보다 낮아서 대기오염, 식수 등으로 자신도 모르게 축적된 고해 물질을 체외로 밀어내어, 특히 탄광촌의 진폐증 환자에게 좋아 탄광촌에는 돼지고기가 무제한 공급된 것은 광부들의 회생불능 진폐증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돼지고기만이 해독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돼지고기에 많이 들어있는 철(Fe)은 체내 흡수율이 높아 철 결핍성 빈혈을 예방하며, 메치오닌 성분이 가장 많이 들어있어 간장의 보호와 피로회복에 좋다.

흙먼지가 자욱한 탄광촌 사람들이 삼겹살을 자주 즐기니 삼겹살이 기관지에 좋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소설가 조정래의 한강을 보면 광부들이 삼겹살을 먹기 시작한 것은 1980년 그 이전으로 봐야 할 것 같다.

한강에 삼겹살 관련 대목을 보면'그들은 한바탕 축하를 하고 잔디밭에 둘러앉았다. 그들이 준비한 것은 다진 고추에 버무린 돼지고기 삼겹살과 맥주 그리고 김치였다. 돼지고기와 맥주는 모든 한국 광부들이 최고로 치는 음식이었다. -중략- 독일 사람들이 매운 양념을 한 돼지고기 굽는 냄새를 너무 싫어해 밖으로 쫓겨 나온 셈이다.' 파독 광부들이 1963~1980년도 까지었으니 이 시기 이미 삼겹살은 광부들이 즐겨 찾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독일로 파견되어 고국을 그리는 마음으로 양념한 삼겹살로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다.

한국의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 받는 삼겹살을 테마로 특화된 거리를 만들고 침체된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지방자치 단체가 있다.

바로 충청북도와 청주시다.

1912년 충청북도와 청주시는 청주 서문시장에 340m 정도의 삼겹살거리(청주시 상당구 남사로89번길 2)를 조성했다.

이번 주 맛있는 여행은 청주에서 엿이나 과자 등을 전국에 유통하는 '우진유통'의 이기영 대표와 함께했다.

이 대표가 안내한 서문시장 삼겹살거리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비교적 한산했다.

어쨌든 청주는 예로부터 쇠전[牛: 우시장]이 유명했다. 경기 수원, 경북 의성과 더불어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혔다.

영호남과 경기도 사이에 자리한 내륙 한복판의 쇠전에는 장날이면 소몰이꾼과 장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고장이다.

의례히 육축(六畜/소,말,돼지,양,닭,개)은이 쇠전[牛]에서 매매를 했다. 그리고 당시 돼지의 운반은 지게를 주로 이용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토종돼지는 몸집이 아주 작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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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거래도 함께 했던 조선시대 당시 청주우시장.
1920년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자료에 의하면 "조선의 토종 돼지는 흑색으로 머리가 길고 뾰족하며, 체질은 강건하고 번식력이 높다. 그러나 체중이 6∼10관(22.5∼37.5kg)에 불과해서 고기 맛은 좋지만 경제가치가 매우 적다."고 했다.

맛 좋은 토종돼지를 이용해 청주에서는 조선시대 초기 건저(乾猪) 즉 '말린 돼지고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보면 청주에서 '말린돼지고기[乾猪]'를 공물로 진상했다고 나온다.

구한말의 4대 문장가이자 망명 지식인, 우국지사인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1850~1927)의 문집 '소호당집(韶濩堂集)' 제12권에 보면 청주(淸州) 한용빈(韓用斌)의 딸은 돼지고기 요리와 화채를 더욱 잘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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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서문시장 삼겹살거리.
청주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 재래시장 활성화의 일환으로'삼겹살거리'를 조성할만한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다.

청주는 삼겹살을 '청주삼겹살'이라고 이름 붙인 후 이를 지역 대표음식으로 육성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주 삼겹살거리가 조성 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난 것 같은데, 막상 서문시장의 삼겹살거리에 들어서니 그저 막연한 생각이 든다.

전국 어디나 지근거리에 삼겹살집들이 많은데, 굳이 청주 서문시장까지 와서 삼겹살을 먹어야 하는지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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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구이.
청주삼겹살은 달인 간장 소스와 각종 양념으로 파저리를 만드는 표준 레시피를 정립해 대중화하며 적극 홍보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충북지역 방언으로 간장을 '지렁물'이라 하는데, 이 '지렁물'을 달여서 만든 소스는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기 전에 잠시 담가 놓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 정도의 내용으로는 너무 약하다.

삼겹살 거리에 신선한 정육점 하나 보이지 않다. 삼겹살거리지만 박피한 부드러운 삼겹살도 즐길 수 있지만 박피를 하지 않은 오겹살의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을 듯싶다.

조선 초기 공물로 바쳤던 건저(乾猪) 즉 '말린 돼지고기'를 재현해 내는 것도 좋을 듯싶고, 미국에서 국내 소비는 물론 수출까지 하는 삼겹살을 대패 삼겹살 수준으로 아주 얇게 저며 튀겨내는 베이컨 등 삼겹살을 다양하게 개발하여 여타 지방의 삼겹살과 차별화하는 메뉴를 개발해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한 청주의 삼겹살거리를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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