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브로드 스트리트 물펌프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브로드 스트리트 물펌프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 승인 2024-02-01 17:40
  • 신문게재 2024-02-02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KIT_윤석주 부소장님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영국 런던의 소호지역의 브로드 스트리트에 가면 물긷는 손잡이가 없는 물펌프가 서 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 물펌프는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이 이야기는 거슬러 1854년으로 올라간다. 이미 두 차례의 콜레라 유행이 지나가고 3차 유행시대에 콜레라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 존 스노우는 이미 수만 명이 사망한 대유행 상황과 앞으로 빠르게 전파될 전염병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관할 구역에서 사망한 환자들이 살았던 집의 주소를 얻게 되고, 이를 지도에 표시하게 된다. 당시 콜레라, 흑사병과 같은 질병이 전염되는 것은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전해진 미아즈마(Miasma·나쁜공기)설이 통용되고 있었다. 미아즈마설은 부패해 나는 악취에 의해 각종 전염병이 퍼진다는 내용인데, 1880년에 공식 폐기될 때까지 정설로 통용됐다.

존 스노우가 지도위에 사망환자가 살던 집을 표시하면서 주목할 만한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 사망자는 브로드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분포해있었다. 한층 더 나가서 브로드 스트리트에는 당시 먹을 물을 공급하던 공용 물펌프가 있었다. 당시 런던은 하수시설이 열악했고, 상수도 시설도 우물이나 공용펌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존 스노우는 사망자의 분포가 공용 물펌프를 중심으로 된 것에 주목하여 시 당국에 브로드 스트리트의 공용 물펌프의 물긷는 손잡이를 제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콜레라의 전염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게 됐다.

미아즈마에 의해 전염병이 전파된다는 것을 믿던 시대에 물을 통제함으로써 전염을 막을 수 있었던 사실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지금이야 질병의 원인이 세균이나 바이러스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 정도로 일반화됐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주요 질병의 원인이 발견되고 의학계의 인정을 받은 것이 1900년대 초반이니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공포였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호열자 또는 괴질이라는 이름으로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대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게 되니 치료와 예방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1854년에 콜레라균을 발견했으나 이를 질병의 원인으로 제시하지는 못했다. 이후 로베르트 코흐가 탄저병(1877), 콜레라(1885) 및 결핵균(1882)을 구체적으로 질병과 연계한 업적으로 19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100년이 넘게 지난 이 시대는 어떤가? 2020년 새해 초부터 전 세계를 공포와 불안에 떨게 하는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점에 우리는 주변의 학교나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 두려움에 떨면서 외출도 삼가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피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마스크는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이었다. 무척 오래된 것처럼 느끼지만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당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가끔 길을 지나다 보면 철거된 코로나 19 선별진료소의 팻말이나 천막이 눈에 띈다. 무거운 마음으로 PCR 검사를 위해 줄을 서 있으면 세상 근심을 다 짊어진 것 같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의료기술의 발달과 공중위생의 개선으로 전염병이 줄어들고 예방도 성공적으로 했던 시대에 코로나 팬데믹은 인류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앞서 코흐는 주요 병원균을 규명함으로써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였고 그로부터 120여년이 지난 지금은 mRNA백신를 성공적으로 제작한 커털린 커리코, 드루 와이스먼 박사가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인류의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의 싸움에 큰 힘을 주었다. 인류가 지나온 역사를 뒤돌아보면 수많은 질병과 함께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불과 2~3년 전의 코로나 팬데믹 시절의 우리의 모습이 아득하게 느껴지고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고비를 넘기고 미래를 위해 전진하는 우리들에게도 브로드 스트리트의 물펌프 같은 것이 하나쯤은 남아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윤석주 안전성평가연구소 부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당신을 노리고 있습니다”…대전 서부경찰서 멈춤봉투 눈길
  2.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3. 대전·충북 회복기 재활의료기관 총량 축소? 환자들 어디로
  4. 충남도, 국비 12조 확보 위해 지역 국회의원과 힘 모은다
  5. 경영책임자 실형 선고한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상소…"형식적 위험요인 평가 등 주의해야"
  1. 충남도의회, 학교 체육시설 개방 기반 마련… 활성화 '청신호'
  2.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3. 대전동부교육지원청, 학교생활기록부 업무 담당자 연수
  4.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5. 충남권 역대급 더운 여름…대전·서산 가장 이른 열대야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충청권 4년제 대학생 2만 명 학교 떠나… 대전 사립대 이탈 심각

전국 4년제 대학 중도탈락자 수가 역대 최대인 10만 명에 달했던 지난해 수도권을 제외하고 충청권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대전권에선 목원대와 배재대, 대전대 등 4년제 사립대학생 이탈률이 가장 높아 지역 대학 경쟁력에서도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교육부 '대학알리미' 분석에 따르면, 2024년 전국 4년제 대학 223곳(일반대, 교대, 산업대 기준, 폐교는 제외)의 중도탈락자 수는 10만 817명이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인데, 전년인 2023년(10..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꿈돌이 컵라면 5일 출시... 도시캐릭터 마케팅 '탄력'

출시 3개월여 만에 80만 개가 팔린 꿈돌이 라면의 인기에 힘입어 '꿈돌이 컵라면'이 5일 출시된다. 4일 대전시에 따르면 '꿈돌이 컵라면'은 매콤한 스프로 반응이 좋았던 쇠고기맛으로 우선 출시되며 가격은 개당 1900원이다. 제품은 대전역 3층 '꿈돌이와 대전여행', 꿈돌이하우스, 트래블라운지, 신세계백화점 대전홍보관, GS25 등 주요 판매처에서 구매할 수 있다. 출시 기념 이벤트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유성구 도룡동 엑스포과학공원 내 꿈돌이하우스 2호점에서 열린다. 행사 기간 ▲신제품 시식 ▲꿈돌이 포토존 ▲이벤트 참여..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서산 A 중학교 남 교사, '학생 성추행·성희롱' 의혹, 경찰 조사 중

충남 서산의 한 중학교에서 남성 교사 A씨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개월간 성추행과 성희롱을 했다는 고소장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일부 피해 학생 학부모들은 올해 학기 초부터 해당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부적절한 언행과 과도한 신체접촉을 주장하며, 학교에 즉각적인 교사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이에 학교 측은 사건이 접수 된 후, A씨를 학생들과 분리 조치하고, 자체 조사 및 3일 이사회를 개최해 직위해제하고 학생들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했으며, 이어 학교장 명의의 사과문을 누리집에 게시했다. 학교 측은 "서산교육지원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푸른 하늘, 함께 만들어가요’

  •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 늦더위를 쫓는 다양한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