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아버지의 유산, 재스민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아버지의 유산, 재스민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4-04-20 05:5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버지 살아생전에 키우던 화분이 몇 개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다. 모양낸 화분도 아니고 고급 화초가 심겨져있는 것도 아니다. 그중 하나를 가지고 와 키운다. 브룬펠시아 재스민(Brunfelsia jasmin, 이하 재스민)이다. 참 재스민이 아니고 향기가 좋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엄청난 유산은 아니지만, 아버지 뵙는 듯 해 수시로 돌보게 된다.

시골에 매월 한두 번씩 다녔지만, 개화기에 가지 못했던 탓일까 꽃 핀 것을 보지 못했었다. 아니, 관심 있게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옮겨와 키우다 보니 꽃이 피었다. 지난해엔 병인지, 영양부족인지 잎이 지고,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올 봄 다시 생기가 돌며 잎이 많이 돋는다. 말라비틀어진 가지에서 새 순 나오는 것이 신비롭다. 정상적이라면 개화시기지만, 다시 만날 꽃을 그리며 이 글을 쓴다.



우리 재스민은 나무 가지가 엄청 연약해 보인다. 게다가 잎이나 꽃도 쭈글쭈글하다. 마치 수분이 부족한 것 아닐까 의심하게 한다. 꽃이 피었을 때 기억이다. 꽃 색이 변한다. 처음엔 보라색이었다가 흰색으로 바뀐다. 보랏빛도 남보라, 붉은보라로 나타나고 보랏빛이 연해지기도 해, 한 나무에서 다양한 꽃이 피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영명은 '어제-오늘-내일(Yesterday Today and Tomorrow)'이라 한다. 밤에 영화를 누린다하여 '야영화'라고도 한다. 밤에 향기가 더욱 강하다. 가지가 빈약해 보이는 것과 달리 꽃은 많이 피었던 기억이다.

왜 시들했었을까?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관리방법도 모른다. 따라서 잘 가꾸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집안은 자연이 아니다. 햇빛, 물, 공기, 바람 모두 자연과 다르다.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여서 습한 곳을 좋아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봄가을과 여름엔 겉흙이 마른다음에 물주는 것이 좋다 하고, 동절기에는 속흙까지 마른 다음에 주라 한다. 물을 자주 주면 과습으로 잎이 우수수 떨어질 수 있다는 정보가 있다. 재스민 종류가 300여 종이나 되어, 정확한 자료인지 알 수 없다. 확언하기 어려우나 시골에서 자랄 때는 물을 자주 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어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꽃망울이 생기는 곳이 새가지 끝이라 순자르기로 새로운 가지를 자주 만들어 주어야 꽃이 많이 핀다 한다. 시기는 꽃이 진 다음이 적합하다. 햇빛과 통풍이 좋으면 연중 수차례 꽃이 핀다 한다.

조사한 내용의 다는 아니지만, 몇 가지 나열해 보았다. 생명의 신비를 어찌 다 알 수 있으랴. 다만, 소홀하게 다뤄 미안한 마음이 앞설 뿐이다.

평범한 진리 하나 되새기게 된다. 고운 꽃과 좋은 향기 즐기려면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고로움 없는 기대는 무지이거나 망상이다. 어찌 꽃과 향기뿐이랴, 세상만사가 다 그러하지 않은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아는 것이다.

올 봄의 꽃은 그 어느 때보다 화사하다는 느낌이다. 온 나라가 꽃동산이다. 전국이 봄꽃 축제다. 꽃으로 세상이 밝아진다. 정서적 위안이 된다.

당나라에서 보내온 모란꽃 그림에 나비가 없어, 향기가 없음을 알았다는 신라 선덕여왕의 영민함이 떠오른다. 신문왕에게 들려주었다는 설총의 '화왕계'도 생각난다. 화중왕 모란의 향궁에 천홍만자가 입궁한다. 절세미인 장미가 유혹한다. 할미꽃이 요염한 장미에게 현혹되지 말라, 패망의 길이라 충언한다. 처음엔 듣지 않았지만, 할미꽃이 떠나려 하자 뒤늦게 깨닫고 왕가의 계로 삼았다. 보기 좋은 것만 꽃이랴, 호박꽃도 꽃이다. 저마다 뜻이 있으니 꽃 없는 것도 꽃이다. 지구상 존재하는 30만종 식물 모두 꽃이 아니랴!

재스민은 그 종류만큼이나 꽃말도 다양하다. 공통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사랑'이다. 그를 통해 안정감, 편안함, 넉넉함을 느끼게 된다.

엄청난 재화의 유산은 아니지만, 더 많은 것이 담긴 재스민 화분에 감사하는 아침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베일 벗은 대전역세권 개발계획…내년 2월 첫삽 확정
  2. 대학 경쟁시킨 뒤 차등 지원?…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 놓고 '설왕설래'
  3. 전국 학교 릴레이 파업… 20일 세종·충북, 12월 4일 대전·충남
  4. [기고] 디지털포용법과 사회통합
  5. 어기구 의원, ‘K-스틸법’ 후속 국가재정법 개정안 대표 발의
  1. 양상추 가격 급등 현상에 대전 소상공인도 직격탄... 높아진 가격에 한숨만
  2. '사건 25%↑' 대전경찰, 우수부서 찾아 시상…서부署·중부署 등
  3.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4. 대전상의-국정원 '기업 기술유출 예방 설명회' 개최
  5. 설동호 교육감 시정연설 "모두 균등한 기회 누리는 든든한 대전교육 만들 것"

헤드라인 뉴스


대전만 없는 `공립형 대안학교`… 학교설립 공약 끝내 실패

대전만 없는 '공립형 대안학교'… 학교설립 공약 끝내 실패

설동호 대전교육감의 10여년 숙원이었던 공립형 대안학교 설립 공약이 결국 이행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지 확보에 오랜 시간을 소모했지만 끝내 추진에 실패하면서 차기 교육감의 과제로 넘어가게 됐다. 20일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올 초까지 추진했던 유성구 복용동 설립이 결국 무산됐다. 당초 AI 특성화 대안학교를 설립하려던 계획이었지만 교육부가 1월 중앙투자심사에서 대안교육 중심의 학교 설립을 주문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대안학교 성격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교육청은 주민 설득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다른 부지를 알아보겠다고 물러..

특수공집방·국회법 위반 이장우 대전시장·김태흠 충남지사 유죄
특수공집방·국회법 위반 이장우 대전시장·김태흠 충남지사 유죄

국회 패스트트랙(Fast Track: 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당시 대표였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1부(장찬 부장판사)는 19일 오후 2시 특수공무집행방해와 국회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황교안 전 총리와 나경원 의원, 이장우 시장과 김태흠 지사 등 26명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나 의원은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벌금 2000만원,..

[단독] 대전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불법 선거 논란
[단독] 대전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불법 선거 논란

사상 첫 직선제로 이사장을 선출한 대전 대덕구 법동 으뜸새마을금고가 불법 선거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수사를 벌인 경찰은 최근 사전 선거 운동 혐의 등으로 올해 7월 당선된 이사장 A씨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경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올해 법동 으뜸새마을금고 이사장에 선출된 A씨는 공식 선거 운동 예정일 전부터 실질적인 선거유세를 펼쳤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새마을금고 이사장 선거는 2021년 제6대 선거까지 간선제로 진행됐지만, 올해 치러진 제7대 선거는 금고 설립 이후 처음으로 전체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은빛 물결 억새의 향연

  •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구직자로 북적이는 KB굿잡 대전 일자리페스티벌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