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우리는 왜 함께여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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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우리는 왜 함께여야 하는가?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26-06-15 14:06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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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몇 년 전 유퀴즈에 방영된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35세 김민섭 작가가 계획했던 후쿠오카 여행을 못 가게 되자 항공권을 양도하기 위해 영문명이 같은 동명이인을 SNS에서 찾기 시작했고, 소식이 퍼지자 수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마침내 찾아낸 25세 김민섭은 졸업 작품전 비용을 마련하려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여행비를 기꺼이 후원했다. 후원자 중 한 8살 아이의 엄마는 "나눔도 베풂도 행하며 세상 여행을 두려움 없이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여행을 계기로 25세 김민섭은 학과 수석으로 졸업하고 취업에 성공했다.

이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낯선 청년의 이야기가 마음을 건드렸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이것이 내적 동기의 힘이요, 소시민들의 연대가 만들어 낸 기적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전혀 다른 풍경도 보여준다. 지난 5월 말, 삼성전자 노사는 파업 직전 초과 성과급 교섭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AI 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메모리 부문이 폭발적 성과를 내자, 노조는 초과 이익의 10.5%를 받아냈다. 메모리 직원 1인당 약 6억 원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3년 전 적자 시기에도 회사를 묵묵히 떠받쳤던 스마트폰 사업부는 고작 600만 원을 받는다고 한다.

성과급은 과연 진정한 성과를 이끌어 내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가? 불과 3년 전 주가가 '4만 전자'로 추락했을 때 메모리 직원들의 월급이 깎였는가? 그렇지 않았다. 회사 전체가 공동체로서 함께 버텼다. 그런데 슈퍼사이클이 오자 "내 성과는 내 몫"이라는 논리가 전면에 나선다. 각자도생의 시대 속에서, 위기를 함께 버텼던 공동체의 기억은 어디로 갔는가?

이 현상의 뿌리에는 외적 동기의 지배가 있다. 영어교육 현장에서 늘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토익 점수를 올리려 죽기 살기로 공부하지만 스트레스는 극심하고 진짜 소통 능력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목표 점수를 얻고 취업에 성공한 순간 영어 공부는 멈춘다. 이것이 외적 동기의 한계다. 반면 다른 문화와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즉 내적 동기에서 출발한 학습자들은 다르다. 다른 문화가 재미있고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영어를 공부한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게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3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심리학자 데시와 라이언의 자기결정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성과 유능감, 관계성이 충족될 때 내적으로 동기화된다. 이와 맥을 같이하는 연구들은 외적 보상이 단기적으로 행동을 유발하지만 내적 동기를 오히려 잠식하는 '과잉정당화 효과'를 보여준다. 회사에서 성과지표 달성을 위해 매일 보고서 작성에 매달리는 직원들이 창의적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수치로 포착되지 않는 협력과 신뢰는 사라지고 공동체는 어느새 각자도생의 정글로 변한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재정지원 사업에 취업률을 핵심지표로 넣어 책임을 대학에 떠넘긴다. 지난 15년간 시행된 대학교 평가는 대학들을 정부 지표 달성을 위한 무한경쟁으로 내몰았다. 외적동기가 불러온 '과잉정당화 효과'는 외형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질 저하를 낳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건만, 학문의 깊이와 공동체 의식은 지표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뒷전으로 밀린 지 오래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지금 한 건 크게 잡아야 한다'는 조급증으로 내몰린다.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도, 학생들의 스펙 전쟁도 그 뿌리는 같다. 경쟁에서 탈락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외적 보상에 대한 집착을 낳고, 그 집착이 공동체를 소리 없이 허물고 있다.

다시 김민섭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25세 김민섭이 그 여행에서 얻은 것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내가 잘 되기를 응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깊은 신뢰였을 것이다. 그 신뢰가 그를 수석 졸업으로 이끌었다. 내적 동기는 진공 속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공동체가 그것을 키운다.

나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 숫자가 아니라 깊은 관계를 쌓는 것, 경쟁이 아니라 시민들의 연대가 사람을 움직이는 더 깊은 힘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성과급도, 더 촘촘한 성과지표도 아니다. 서로를 믿고 함께 가는 공동체의 회복이다. 그 회복은 언제나 우리 각자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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