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예술가의 혼과 존중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예술가의 혼과 존중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4-10-2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휴식, 재충전이 되기도 하고, 견문과 미적 즐거움, 지식과 지혜를 얻기도 하기 때문이다. 해외로 떠나는 사람도 많다. 가는 곳마다 한국인을 만날 수 있을 정도다. 여건에 맞추어 마음 가는 대로 여행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적당히 안배하여 국내여행도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기초단체 별로 찾아보길 권장한 적도 있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이 넓지 않지만, 그렇다고 좁지도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다. 더구나 규모가 확대되다보니 가보았던 곳도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수 삼년 전에 2박 3일로 전남 영암에 다녀 온 일이 있다. 월출산 등산은 물론, 여러 곳을 살펴보았지만,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한 곳이 월출산기찬랜드이다. 가야금산조테마공원,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조훈현바둑기념관, 곤충박물관 등과 함께 각종 유락시설이 있었다.

한옥으로 지어진 가야금산조기념관도 이색적이고 아름다웠다. 전시장 구성이 잘 되어있는 탓이겠지만, 지금도 기억이 새록새록 인다. 산조(散調)는 기악 독주곡이다. 3~6개의 장단으로 구성된다. 영암 출신의 거문고 명인 김창조(金昌祖 1856 ~ 1919)선생이 1883년 처음으로 가야금 산조를 창제하였다. 산조음악의 효시가 된다. 이어서 거문고산조 · 대금산조 · 해금산조(奚琴散調) 그리고 1950년경 아쟁산조(牙箏散調) 순으로 등장한다. 월출산을 오르며 물의 흐름이 빨라지듯, 진양조로 시작하여 단모리로 끝난다. 진양조 · 중모리 · 중중모리 자진모리가 주로 쓰이지만, 산조의 종류나 바디에 따라 엇모리 · 굿거리 · 휘모리 · 단모리 등의 장단이 가감되기도 한다. 자연과의 동화, 화합이기도 하고, 가사 없는 판소리라 부르기도 한다. 전시관에는 가야금 및 산조음악, 김창조선생의 손녀 김죽파(金竹坡, 1978 중요무현문화재,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현재의 국가무형유산 양승희(梁勝姬, 2006 중요무형문화재 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 명인도 소개되어 있다.

양승희 명인은 1948년생이다. 어머니가 무용이 좋아 당대의 명무였던 최승희(崔承喜, 1911~1969)를 흠모한 나머지 이름도 똑같이 지어주었다 한다. 5살 때부터 무용과 국악을 공부하였으며 가야금도 배우게 된다. 음악적 재능이 탁월하여 서울대 국악과로 진학한다. 훌륭한 교수를 만났을까? 지도교수가 자신의 수준을 넘어섰다며 김죽파 선생을 소개한다. 1970년 김죽파 선생을 만나 20년 동안 사사 받는다. 심지어 김죽파 명인은 양승희의 모친을 만나 딸을 결혼 시키지 말라고 요청한다. 뛰어난 예술가가 마음껏 연주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탓이었으리라. 결혼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손해지만 국가적 손실이라 주장한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 그만 남자 친구가 생기고 만다. 결혼하게 되자 다시 시부모를 찾아간다. 연주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 달라 설득한다. 시부모 역시, 우리는 아들 하나 얻으면 그만이라며 여러모로 배려하고 돕는다. 심지어 해산하고 일주일 만에 선생에게 달려가 가야금 연주에 매달린다.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가이지만, 정작 본인은 성에 차지 않는다. 득음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새로이 판소리 공부를 10여 년 하고 나서야 비로소 미적 쾌감,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한다.



학술적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아 서울대 대학원을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예술철학박사학위를 받는다. 지난해 방송에서 공자와 장자의 예술사상에 대해 "공자의 예술사상은 위인생이예술(爲人生而藝術)로 인생을 위한 예술이다. 예술을 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한 것이요, 규범을 찾고 모범적 인생 영위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장자는 위예술이예술(爲藝術而藝術)로 진정한 예술의 경지에 이르려면 예술만을 위한 예술이 중요하다. 예술이 신의 경지, 지고지순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했다며, 죽파 선생의 가르침이 장자의 예술론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예술가의 각고 노력이 어디 양승희 명인뿐이랴. 어느 것 하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어지는 것은 없다. 부단한 열정의 산물로 예술가가 탄생한다. 그런 예술가에게 기생, 기생놀이라고 폄하해 한동안 떠들썩했다. 물론, 기생이 나쁜 말은 아니다. 본래 전문 종합예술인에 대한 호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뒤 문맥으로 보아 접대부로 부른 것이요, 비아냥거린 것이 분명하다. 설렁설렁 살아온 백수건달의 눈에 다른 사람의 피땀 어린 삶이 보일 리 없다. 세상 어느 것도 혼과 땀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존중받아야 하고 존중해야하는 이유다. 존중이 없는 사회는 피폐해진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세종 넘어가는 구즉세종로 교통사고…사고 수습 차량 우회를
  2. 대전교육청 도박 '예방'뿐 아니라 '치유' 지원도… 교육위 조례 개정안 의결
  3. 한국·일본에서 부석사 불상 각각 복제중…청동불상 기술 견줄 시험대
  4. 광주시-삼성전자, 10억원 투입 '대·중소상생 스마트공장' 구축
  5. [유통소식] 대전 백화점 빅3, 가을 맞이 마케팅으로 '분주'
  1. 전 장관, '해수부 이전' 불가피성 강조...여전한 우려 지점은
  2. [사이언스칼럼] AI시대에 한의학의 방향
  3. 충청권 13일 새벽 폭우·강풍 예고…최고 120㎜ '침수 주의를'
  4. 화재피해 복구 ‘한마음 한뜻으로’
  5.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시청하는 시민들

헤드라인 뉴스


부석사불상, 한·일서 복제중… 청동불상 기술 견줄 시험대

부석사불상, 한·일서 복제중… 청동불상 기술 견줄 시험대

일본 대마도에 돌려준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일본 현지에서 그리고 국내에서 각각 동일한 모양의 불상을 제작하는 복제에 돌입했다. 일본 측은 대마도박물관에 보관 중인 불상을 관음사로 모셔 신자가 친견할 수 있도록 복제 과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충남도에서는 상처 없는 약탈 이전의 온전한 불상을 제작하는 중으로 1330년 고려시대 불상을 원형에 가깝게 누가 만들 수 있느냐 견주는 시험이 시작됐다. 11일 중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25년 5월 일본 관음사에 돌려준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은 쓰시마(대마도)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도심 온천관광 랜드마크 `유성온천 문화체험관` 첫 삽
도심 온천관광 랜드마크 '유성온천 문화체험관' 첫 삽

대전 도심 속 온천관광 랜드마크인 '유성온천 문화체험관'이 첫 삽을 뜬다. 11일 유성구에 따르면 유성온천 문화공원 두드림공연장 일원(봉명동 574-5번지)에 '유성온천 문화체험관' 건립 공사를 오는 15일 착공한다. 이번 사업은 지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온천지구 관광 거점 조성 공모 사업'에 선정된 이후 추진됐으며, 온천 관광 활성화와 지역 대표 축제인 '온천축제'와의 연계를 통해 유성온천의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화체험관은 국비 60억 원을 포함한 총 198억 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2층(연면..

국회 세종의사당 연결하는 `신설 교량` 입지 확정… 2032년 개통
국회 세종의사당 연결하는 '신설 교량' 입지 확정… 2032년 개통

국회 세종의사당과 금강 남측 생활권을 잇는 '금강 횡단 교량'이 2032년 수목원로~국토연구원 앞쪽 도로 방향으로 연결된다. 김효정 행복청 도시계획국장은 9월 11일 오전 10시 e브리핑 방식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금강 횡단 교량 추가 신설은 2033년 국회 세종의사당 완공 시점에 맞춰 원활한 교통 소통의 필수 인프라로 꼽혔다. 국책연구단지 앞 햇무리교를 사이에 두고 이응다리 쪽이냐, 반곡·집현동 방향에 두느냐를 놓고 여러 검토가 이뤄졌다. 햇무리교와 금남교는 현재도 출퇴근 시간대 지·정체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행복청은 이날 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

  • 화재피해 복구 ‘한마음 한뜻으로’ 화재피해 복구 ‘한마음 한뜻으로’

  •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시청하는 시민들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시청하는 시민들

  • 옷가게도 가을 준비 완료 옷가게도 가을 준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