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복수불반분'과 유운홍의 <부신독서도>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복수불반분'과 유운홍의 <부신독서도>

  • 승인 2025-01-1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변변치 않은 일이지만, 결혼하고 일 년여 만에 그만 두었다. 그나마 막무가내 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시리즈로 된 각종 역사, 문화와 예술사, 철학과 사상, 민속학 등의 독서에 몰두하였다. 어떤 목표나 분명한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한국미학을 유추해 내겠다는 소망으로 사두었던 책들이다.

입사 준비도, 일자리 찾는 것도 아니었으니, 아내가 보기에 얼마나 한심하였으랴. 게다가 때때로 예술 하는 후배들이 찾아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가진 게 없으니 즐길만한 안주가 있을 리 없었다. 개다리소반에 눈물겹게 마련한 두세 가지 푸성귀가 전부였지만, 술자리는 곧잘 길어지곤 했다. 미래가 불투명한 것을 넘어 어둠뿐이었을 터인데, 예술가는 그런 것이라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인내하고 함께 해준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부신독서(負薪讀書)'란 고사성어가 있다. 직역하자면 '땔나무를 지고 책을 읽다'이다. 중국 전한 중기 주매신(朱買臣, ? ~ BC 115년)이란 사람이 있었다. 가난하여 땔나무해서 져다 팔아 생계유지를 하였다. 책이 좋아 등짐지고도 부단히 독서를 한다. 이런저런 연유로 공손홍과 논쟁에 이겨, 50 넘은 나이에 한무제에게 중용 된다. 이어 뛰어난 계책으로 적을 물리쳐 고향 회계의 태수가 된다. 후에도 승승장구하여 승상장사에 이른다. 대기만성과 같은 뜻으로 '주매신 오십부귀(朱買臣 五十富貴)'라고도 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부단히 공부하면 언젠가 입신양명한다. 언제 어디서고 독서하라 이른다.

그의 아내는 참지 못하여 40 무렵 이혼하고 다른 남자에게 간다. 주매신이 태수가 되어 돌아와 새로운 남편과 함께 관사로 불러 거처하게 하고 생활비도 대주었는데, 한 달여 만에 죽음을 택한다. 가난하고 무기력한 주제에 낚시나 하던 강여상의 아내 역시 그의 곁을 떠난다. 훗날 강태공이 주나라 재상이 된다. 아내가 다시 함께 할 것을 요청하자, 엎어진 물은 동이에 되돌려 담을 수 없다며 거절한다. 둘 다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覆水不收, 覆水不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다. '주매신의 아내(買臣之妻)'라고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랴, 그럼에도 조강지처(糟糠之妻)가 되지 못한 것을 나무라는 듯하다.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가를 반성하고, 소인배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들춰낸다.(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 論語 衛靈公篇)"라 덧붙여 어려움이 부인에게도 책임이 있다 설명한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 전쟁 중에도 밥은 먹어야 하고 미래 또한 준비해야 한다. 필자는 그리하지 못했으나, 막연히 했던 독서가 오늘날 글쓰기와 직무수행의 밑거름이다. 아내도 도망가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그림2466
<부신독서도>, 견본담채, 16.1 × 22.1cm, 서울대학교 박물관
위의 고사를 그린 시산 유운홍(詩山 劉運弘, 1797 ~ 1859, 도화서 화원)의 <부신독서도(負薪讀書圖)>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서전>에 의하면 유운홍은 1819년(순조 19) 이수민(李壽民)·이의양(李義養) 등과 함께 문조신정후(文祖神貞后) 가례반차도(嘉禮班次圖) 제작에 참여하였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청산고주도(靑山孤舟圖)」·「월야소선도(月夜小仙圖)」,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부신독서도(負薪讀書圖)」, 개인 소장의 「등고망원도(登高望遠圖)」,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화조도(花鳥圖)」 등이 전한다.

그림에 비해 화제가 크게 쓰여, 여백을 가로막고 있다. 산 중턱 탑이나 커다란 바위와 무성한 나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등이 심산유곡임을 절로 느끼게 한다. 숲속 비탈길로 땔나무 등에 진 사람이 책 읽으며 내려온다. 표정이 참 진지하다. 익숙한 길이라도 쉽지 않을 터이다. 하고 싶어 하는 일엔 고달픔도 사라진다. 빼어나진 않지만, 풍부한 상상력으로 고사를 그려냈다.

독서, 수없이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책만큼 시공 초월한 진지한 만남이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획 독서도 필요하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시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교도소 메디컬센터 첫 진료개시…"교정처우 개선 우수모델 안정적 운영을"
  2. [사이언스칼럼]기후변화가 바꾸는 일상, 우리가 바꿀 미래
  3. 천황봉 3D 스캔부터 계룡산성 발굴까지… 세계유산을 향한 발걸음 '활발'
  4. 재투표 앞두고 교수사회 내홍…통합 동력 확보할 수 있나
  5. 대전사랑메세나·한국자유총연맹 대전시지부·중구 청년센터 청년모아, 지역사회 나눔과 봉사 표창
  1. 역대 최대 2조 9102억 기초연구 예산… 핵심은 '지역 연구자 살리기'
  2. [책으로 여는 미래] 읽는 아이에서 쓰는 아이로, 교실을 넘어 삶으로 대전동부교육지원청
  3. 대전 신규 아파트 입주에 동부권 초등학교 통학구역 재편…학생 배치 여건 고려
  4.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살아있는 지구과학 교과서 울릉도서 '특별한 과학 탐험'
  5. 대전스타트업파크 찾은 몽골·독일 대표단… 지역 기술력에 주목

헤드라인 뉴스


3기 진실화해위, 충청 미군 민간인 희생 29명 `진실규명`

3기 진실화해위, 충청 미군 민간인 희생 29명 '진실규명'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상교)는 지난 3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제8차 위원회를 열고, 과거 2기 진실화해위원회 당시 '조사중지' 결정에 머물렀던 '충청지역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대해 한국전쟁 전후 미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공식 인정하고 29명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규명되지 못하고 조사중지 상태로 남아있던 억울한 희생의 진상을 3기 위원회가 재조사해 진실규명 결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진실규명 결정이란 법에 따라 신청 사건 조사..

수능·내신 대전환에 국제중 인기…7년 새 지원자 73.6% 증가
수능·내신 대전환에 국제중 인기…7년 새 지원자 73.6% 증가

수능과 내신 평가체계 변화로 대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중학교 단계부터 학업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수요가 국제중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특목고·자사고 진학 실적과 영어 중심 교육환경 등이 맞물리면서 국제중 선호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6일 종로학원이 분석한 2027학년도 국제중 지원 현황에 따르면 전국 5개 국제중 가운데 경쟁률을 공개한 4개 학교의 지원자는 8998명으로 집계됐다. 474명 모집에 평균 경쟁률은 18.98대 1로, 최근 7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원자는 2021학년도 5182명에서 2025학년도 8597명까지 꾸준히..

유성구 직원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국화축제…관람객 호응 `만발`
유성구 직원들의 손끝에서 피어난 국화축제…관람객 호응 '만발'

대전 유성구의 '제17회 유성국화축제'가 형형색색의 국화로 물든 도심 속 정원과 특별한 사연을 담은 조형물로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10월 17일부터 11월 8일까지 유림공원과 유성천 일원에서 열린 이번 축제는 당초 11월 1일까지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관람객들의 높은 관심과 호응에 힘입어 일주일 연장 운영됐다. 특히 모든 국화조형물은 미술이나 조형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이 없는 유성구 직원들이 도면 없이 직접 제작하고 관리하는 작품이다. 이런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관람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실제 한 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깊어가는 가을과 낙엽 깊어가는 가을과 낙엽

  • 난방용품 판매 준비 분주 난방용품 판매 준비 분주

  • 울긋불긋 물든 도심 울긋불긋 물든 도심

  • 대전 갑천4BL 청년주택 공급사업 기공식 대전 갑천4BL 청년주택 공급사업 기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