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좁아 에어컨 무상지원도 못 받아" 폭염에 노숙 택한 쪽방주민

  • 사회/교육
  • 사건/사고

"집 좁아 에어컨 무상지원도 못 받아" 폭염에 노숙 택한 쪽방주민

8일 현장가니 창문없는 쪽방서 버티기 어려워 하천가, 산으로 향해
고충 커지지만, 쪽방주민 주거복지 위한 사업은 하세월…"속도 내야"

  • 승인 2025-07-08 17:45
  • 신문게재 2025-07-09 1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쪽방
폭염 경보가 내려진 8일 낮에 방문한 한모씨가 사는 쪽방. 창문이 없어 환기가 안돼 방 안은 뜨거운 열기만 가득했다. (사진=정바름 기자)
"창문이 없어서 바람이 안 들어오니 선풍기 틀면 뭐해, 밤새도록 열만 내지…." 낮 최고기온 36도를 넘어서 폭염 경보가 내려진 8일. 오전 11시께 대전 동구 정동의 쪽방촌에서 만난 한 모(82)씨는 오랫동안 쓰지 않아 '먼지 쌓인 선풍기'를 가리키자 이같이 말했다.

그가 사는 2평 남짓한 쪽방은 한증막 그 자체였다. 환기조차 되지 않는 방 안은 10분만 있어도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거기에 옷장이나 사물함을 둘 수 없어 벽에 겹겹이 걸어놓은 패딩 등 옷가지, 탑처럼 쌓아둔 생필품들을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혔다.

두 달 전 지역의 한 통신기업에서 주거 취약계층 100가구에 에너지 효율 1등급의 창문형 에어컨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지원받을 수 없었다. 쪽방이 너무 비좁고 창문도 없어 에어컨 설치 자체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한 씨 외에도 이곳 정동 쪽방 주민 대부분이 집 구조상 에어컨 설치가 불가능해 결국 매입임대주택에 사는 주거 취약 계층 등 50여 가구만 지원받게 됐다. 에어컨 설치가 가능한 몇몇 쪽방 주민들도 전기세 부담, 집주인 눈치에 원해도 손을 들지 못했다.

냉방기기조차 달 수 없는 비좁은 쪽방에 사는 이들에게 일주일 째 폭염 경보가 이어지는 올해 여름은 더 야속하다.

결국 한 씨는 집보단 노숙을 택했다. 바깥 그늘에 있으면 그나마 바람이라도 맞을 수 있어서다. 최근에는 열대야 때문에 잠들기 힘들 정도로 곤욕스럽다고 했다. 한 씨는 "밤새 찬물을 끼얹어도 더워서 그냥 하천가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아 쪽잠을 잔다"라며 "밥 먹을 때, 잠잘 때 빼고는 더워서 집에 머물지 않는다. 무더위 쉼터나 경로당은 시원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해 불편하다 보니 차라리 산에 간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주거급여 지원금액에 맞춰 쪽방 월세를 20~30만 원 받는 다른 집주인들과 달리 이곳 집주인은 한 달에 15만 원만 받아 양심적이라 했다. 더위를 피하지 못하고 주거 다운 보금자리도 아니지만, 월 70만 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다른 쪽방 주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폭염 탓에 집에 있기 힘들어 쪽방 상담소 내 무더위 쉼터에는 매일 50~60명이 드나든다. 대전 지역 원도심 내 쪽방 주민들은 총 70가구다. 대부분 생계가 어려운 60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혹서기를 견딜 수 있도록 구청에선 선풍기와 쿨매트, 먹거리 등을 지원했고 쪽방 상담소에선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주거공간이다. 정동 쪽방촌을 중심으로 추진됐던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5년째 지연되고 있다. 처음에는 쪽방촌 정비와 쪽방 세입자들에게 영구임대주택 입주권과 이사비용이 지원되는 사업에 기대감을 모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시행자로 나섰지만, 몇몇 토지·건물주의 반대에 2년 동안 기본조사인 지장물 조사는 멈춰있는 상태다. 앞서 LH는 올해 안으로 사업 지구 내 토지·건물주들의 동의를 받아 기본조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혀왔다.

올해가 마지막 사업추진연도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쪽방 주민들은 이대로 사업이 일몰 될까 봐 겁난다고 했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지구 내 토지·건물주들은 대부분 이곳이 아닌 외부에서 산다"라며 "그들에게는 이 사업이 이익을 더 얻고 못 얻고에 따른 문제겠지만, 쪽방 주민들에게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중대 문제"라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교도소 실탄 관리부실 논란… 이전 사업까지 우려목소리
  2. 민선9기 대전시 인수위, 이장우표 "일류경제도시' 도마 올린다
  3. 충남대·공주대, 규제 걷어내고 대학혁신 실험대에
  4. 충남대병원, 3년 내 새병원 예타 통과 목표…"머뭇거릴 수 없다"
  5. 오석진 교육감직 인수위 15일 출범…전문성·실행력 갖춘 진용 꾸리나
  1. [건강] "아프다" 말 못 하는 치매 어르신… '치과' 문 연 노인병원의 도전
  2. [기고] 반복되는 한화 폭발사고, 이제는 안전문화로 답해야 한다
  3. 중징계 의결 사안 놓고 대전교육청·노조 갈등… 16일 면담
  4. 한화에어로, 안전문화혁신위 출범… 반복 사고 우려는 여전
  5. 김운장 제주 신신호텔 그룹 회장, 제9대 대학야구연맹 회장 당선

헤드라인 뉴스


대전 바이오특화단지 용두사미되나… 2년째 손놓은 정부

대전 바이오특화단지 용두사미되나… 2년째 손놓은 정부

대전시가 국가첨단전략산업 바이오특화단지로 지정된 지 2년 가까이 지났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바이오특화단지 청사진 제시는 고사하고 관련 예산 역시 전무, 사업 추진 의지마저 의심케 하고 있다. 권역별 바이오사업 산업 육성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정부 당초 계획이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15일 대전시에 따르면 산업부는 지난 2024년 6월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된 전국 5개 바이오 특화단지에 대한 육성사업을 추..

`e스포츠 황제` 페이커, 대전에 뜬다…MSI 2026 향한 전 세계 팬들 시선 집중
'e스포츠 황제' 페이커, 대전에 뜬다…MSI 2026 향한 전 세계 팬들 시선 집중

세계 e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페이커' 이상혁이 대전에 온다. 국내·외 수많은 e스포츠 팬들의 우상인 이상혁이 소속팀 T1과 함께 오는 28일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개막하는 '2026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에 출전하게 되면서 개최도시인 대전이 들썩이고 있다. 세계 최고의 e스포츠 스타가 대전 무대에 선다는 사실만으로도 대전은 축제 분위기다. 소속팀인 T1은 14일 강원 원주 DB프로미아레나에서 열린 2026 LCK 로드 투 MSI 최종전에서 젠지 e스포츠를 세트 스코어 3대2로 꺾고 LCK 2번..

조치원 軍 통합비행장 차일피일… 주민 소음 피해 보상금만 1억원
조치원 軍 통합비행장 차일피일… 주민 소음 피해 보상금만 1억원

<속보>=세종시가 지난 4년간 조치원 군(軍) 비행장 소음 피해 주민들에게 1억 원에 육박하는 보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2025년 완공 예정이던 조치원·연기 비행장 통합 이전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진 상황인데, 보다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통해 주민들의 소음 불편을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세종시가 제공한 군 비행장 소음 피해 보상금 현황을 보면, 시는 최근 4년간 연평균 2400여만 원씩 1억 원에 가까운 보상금(전액 국비)을 해당 주민들에게 지급했다. 구체적으로 2022년엔 107명에게 266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 접시꽃에 담긴 여름 접시꽃에 담긴 여름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