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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경보가 내려진 8일 낮에 방문한 한모씨가 사는 쪽방. 창문이 없어 환기가 안돼 방 안은 뜨거운 열기만 가득했다. (사진=정바름 기자) |
그가 사는 2평 남짓한 쪽방은 한증막 그 자체였다. 환기조차 되지 않는 방 안은 10분만 있어도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거기에 옷장이나 사물함을 둘 수 없어 벽에 겹겹이 걸어놓은 패딩 등 옷가지, 탑처럼 쌓아둔 생필품들을 보고 있자니 숨이 턱 막혔다.
두 달 전 지역의 한 통신기업에서 주거 취약계층 100가구에 에너지 효율 1등급의 창문형 에어컨을 무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나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자임에도 지원받을 수 없었다. 쪽방이 너무 비좁고 창문도 없어 에어컨 설치 자체가 불가했기 때문이다. 한 씨 외에도 이곳 정동 쪽방 주민 대부분이 집 구조상 에어컨 설치가 불가능해 결국 매입임대주택에 사는 주거 취약 계층 등 50여 가구만 지원받게 됐다. 에어컨 설치가 가능한 몇몇 쪽방 주민들도 전기세 부담, 집주인 눈치에 원해도 손을 들지 못했다.
냉방기기조차 달 수 없는 비좁은 쪽방에 사는 이들에게 일주일 째 폭염 경보가 이어지는 올해 여름은 더 야속하다.
결국 한 씨는 집보단 노숙을 택했다. 바깥 그늘에 있으면 그나마 바람이라도 맞을 수 있어서다. 최근에는 열대야 때문에 잠들기 힘들 정도로 곤욕스럽다고 했다. 한 씨는 "밤새 찬물을 끼얹어도 더워서 그냥 하천가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아 쪽잠을 잔다"라며 "밥 먹을 때, 잠잘 때 빼고는 더워서 집에 머물지 않는다. 무더위 쉼터나 경로당은 시원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해 불편하다 보니 차라리 산에 간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주거급여 지원금액에 맞춰 쪽방 월세를 20~30만 원 받는 다른 집주인들과 달리 이곳 집주인은 한 달에 15만 원만 받아 양심적이라 했다. 더위를 피하지 못하고 주거 다운 보금자리도 아니지만, 월 70만 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에겐 달리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다른 쪽방 주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폭염 탓에 집에 있기 힘들어 쪽방 상담소 내 무더위 쉼터에는 매일 50~60명이 드나든다. 대전 지역 원도심 내 쪽방 주민들은 총 70가구다. 대부분 생계가 어려운 60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혹서기를 견딜 수 있도록 구청에선 선풍기와 쿨매트, 먹거리 등을 지원했고 쪽방 상담소에선 주민들의 건강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주거공간이다. 정동 쪽방촌을 중심으로 추진됐던 공공주택지구 사업은 5년째 지연되고 있다. 처음에는 쪽방촌 정비와 쪽방 세입자들에게 영구임대주택 입주권과 이사비용이 지원되는 사업에 기대감을 모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시행자로 나섰지만, 몇몇 토지·건물주의 반대에 2년 동안 기본조사인 지장물 조사는 멈춰있는 상태다. 앞서 LH는 올해 안으로 사업 지구 내 토지·건물주들의 동의를 받아 기본조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혀왔다.
올해가 마지막 사업추진연도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쪽방 주민들은 이대로 사업이 일몰 될까 봐 겁난다고 했다. 쪽방상담소 관계자는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지구 내 토지·건물주들은 대부분 이곳이 아닌 외부에서 산다"라며 "그들에게는 이 사업이 이익을 더 얻고 못 얻고에 따른 문제겠지만, 쪽방 주민들에게는 사람답게 살기 위한 중대 문제"라고 말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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