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현 상황은 공포인가? 불안인가?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현 상황은 공포인가? 불안인가?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승인 2025-01-30 10:27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수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우리에게는 '쉘위댄스'로 알려진 야쿠쇼 코지라는 중년 배우가 있다. 당시는 꽤 젊은 모습으로 매일 반복되는 무료한 생활에 춤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 성실한 샐러리맨을 연기했다. 20년이 훨씬 넘은 오래전 영화지만, 극 중 스기야마의 순수한 댄스열정을 기억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배우가 작년 여름 '퍼펙트 데이즈'라는 영화로 한 번 더 한국을 찾아왔다. 극 중에서 히라야마는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통상의 직장에서는 정년이 넘은 듯하다. 동트기 전 기상해서, 화초에 물 주고, 수염 다듬고, 간단 세면 후 파란 청소원 작업복을 입고, 허름한 집을 나선다. 동트는 해에 눈을 가늘게 뜨며 함박웃음 짓고, 자판기 캔커피를 마시며, 청소도구가 잔뜩 실린 경트럭으로 스카이트리를 지나간다. (젊은 MZ세대는 생소하겠지만) 카세트테이프로 올드팝을 골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가진 성실한 도쿄 시부야구 공중 화장실 청소원이다.

일본이 2020년 도쿄 올림픽의 1년 지각을 감수하고도 개최하면서 세계에 내놓고 싶은, 여러 가지 기획물 중의 하나가 공중화장실이었던 모양이다. 공중화장실에서 신기하게 보일 수 있는 전기변색유리 기술(영화를 보면 외국인 여성이 사용법을 히라야마에게 묻는다)이나, 주위와의 조화를 고려한 공공 건축(장소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의 공중화장실)이기도 하고, 매일 스카이트리를 지나가는 씬들이 있어서 그런 생각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초기의 영화제작의도는 그러했을지 모르나, 시각적인 연출 능력이 탁월한 독일 빔 벤더스감독을 영입하고, 칸느 남우 주연상을 받을 정도의 연기력의 주인공과 특유의 스토리텔링으로, 이 영화는 울림이 깊은 독립영화가 되었다.

영화의 내용을 조금 더 살펴보자, 히라야마는 젊은 동료의 말에 의하면 어차피 더러워질 화장실을 쓸데없이 열심히 청소하고, 점심시간이면 구식 필름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햇살을 찍으면서 샌드위치를 먹는다. 귀가하면 자전거로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역전상점가 단골 가게에서 식사 겸 술을 한잔하고 어두워져서 귀가한다. 스탠드 불빛 밑에서 노벨상 수상 작가 윌리엄 포크너의 책 '야생종려나무'를 읽으면서 잠이 든다. 주말이 되면 파란 작업복과 세탁물을 챙겨 빨래방으로, 필름 사진을 현상 인화하고, 헌책방 여주인의 수준 높은 작가 평을 들으며 읽을 책을 고른다. 영화에는 무의미한 몸짓의 노년의 홈리스가, 예의를 모르는 젊은 엄마가, 무개념의 젊은 동료가 등장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굳이 의도를 유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쯤되면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일본의 국제사회에 보이고 싶은 공중 문화에서부터 청소원, 헌책방 주인 같은 서민들의 인문 교양 자랑에서 더 나아가, 고령화 사회의 일본에서도 MZ세대를 비꼬나 싶기도 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대화에서 나온다. 주말 단골 술집 여주인의 전남편(말기 암 환자)과의 우연한 인생 대화가 나온다. 질투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던 히라야마도 상대방이 "죽기 전에 아내를 보고 싶었다는" 말에 두 남자는 친해져서 철(?)없이 그림자놀이를 한다. 또 갑자기 가출해 찾아온 10대 조카와 지내면서도 "각자가 사는 수많은 다른 세상",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같은 대화를 나누었고, 조카가 읽는 중이라는 책을 줘서 보내고 여동생과 오랜 사연이 있을 법한 대화를 나눈다. 다음 날 여전히 같은 루틴으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출근하는 히라야마의 얼굴이 웃는 듯, 우는 듯한 표정으로 수 분간 롱테이크, 클로즈업으로 영화가 마무리된다.



우리와 일본은 역사 지정학적으로 밀접하여,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도 한다. 두 나라 모두 고도 성장기를 거쳐 선진국 진입하였고, 이제 저성장 국면을 피할 수 없으며, 초고령사회로의 인구구조변화를 겪고 있으며, Z세대 포함, 심각한 세대 간 차이를 보이는 상황이다. 일본보다 결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결코 안정적이다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대화를 가족 간, 세대 간 할 수 있을까? 작년 12월 3일 이후부터 우리나라의 신문 방송의 내용과 함께 사람들 사이의 대화 내용을 떠올린다. '퍼펙트 데이즈'중에 나온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 대한 헌책방 여주인의 비평이 생각난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을 묘사하는 천재적인 작가죠.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4.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