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도쿄 스미다구가 쓴 고향사랑기부제 기적

  • 오피니언
  • 월요논단

[월요논단] 도쿄 스미다구가 쓴 고향사랑기부제 기적

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

  • 승인 2025-02-09 17:01
  • 수정 2025-02-10 07:41
  • 신문게재 2025-02-10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고두환
고두환 대표이사
도쿄 스미다구의 한적한 거리, 철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눈에 봐도 독특한 건물이 등장한다. 바로 가쓰시카 호쿠사이 미술관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에도시대 목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 아래'는 19세기 서유럽 예술가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치며 '자포니즘(Japonism)' 열풍을 일으켰다. 일본이 쇄국을 끝내고 세계로 나아가던 시기, 이 파도가 유럽인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스미다구는 호쿠사이의 고향이다. 1988년, 그의 업적을 기리는 미술관 건립 계획이 세워졌다. 하지만 일본 버블경제 붕괴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2000년대, 도쿄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스카이트리' 건설이 추진되면서 미술관 계획도 재점화됐다. 하지만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건설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또다시 좌초되고 만다.



결국 스미다구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바로 고향사랑기부제였다. 2015년, 당시 지방 소도시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이 제도에 스미다구가 뛰어든다. 결과는 놀라웠다. 9년간 모금한 금액만 약 100억 원에 달한다. 단순한 기부금 유치가 아니었다. 스미다구는 전략적으로 기부자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다. 2017년 미술관 개관 1주년 특별전 입장권, 2019년 호쿠사이 서거 170주년 기념 특별전시 입장권과 함께 도쿄 스카이트리 최상층에서의 저녁 식사 티켓을 내놓았다. 100만 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 혜택은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기부'가 아니라 '참여'로 만들어낸 성공이었다.

스미다구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곳은 전통적인 수공예 산업이 활발한 지역이다. 크고 작은 공방과 장인들의 가게가 2,000여 개 이상 밀집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들의 존재는 점차 잊혀갔다. 이에 스미다구는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 장인정신) 거리' 보존을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장인들의 제품을 홍보하고 판로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기부금 사업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일본 국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냈고, 2023년 스미다구 고향사랑기부금은 100억 원을 돌파했다.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수도인 도쿄의 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고향사랑기부제'로 기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본에서 이 제도가 활성화된 초기에는 낙후된 지방 도시들이 주로 수혜를 입었고, 대도시 지역은 소외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스미다구는 달랐다. 단순히 '우리 지역이 어려우니 도와달라'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호쿠사이 미술관을 함께 만들자', '도쿄에 모노즈쿠리 거리를 보존하자'는 정서적 서사를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최초의 고향사랑기부제 민간플랫폼 '후루사토초이스'가 강력한 조력자로 나섰다. 이들은 단순한 기부금 모금이 아니라, 지역 브랜드를 만들고 가치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사람들은 스미다구에 기부하면서 단순히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일부가 된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다.

도쿄 스미다구의 성공 사례는 단순한 기부금 유치가 아니다. 고향사랑기부제라는 제도를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는 도구로 활용한 것이다. 대도시 기초지자체라도 소멸의 칼날을 피해갈 길은 없다. 쇄국이 끝난 후 일본을 세계로 알린 호쿠사이의 파도처럼, 스미다구의 도전은 재정자립의 서막인 셈이다.

/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집단 해고 GM세종물류 노동자들 "고용 승계 합의, 집으로 간다"
  2. 전북은행, '겨울방학 다다캠프' 성료
  3. 법무보호복지공단 대전지부, 대학생위원회 출범 첫 정기총회
  4. 배재대 라이즈 사업단 성과공유회 개최…대전시와 동반성장 모색
  5. 우송대 유아교육과,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최우수 A등급
  1. 인간보다 AI가 매긴 '지구 가치' 더 높아…충남대 정왕기 교수 연구 이목 집중
  2. 법무부 세종 이전 탄력받나…"이전 논의에 적극 응할 것"
  3. 구즉신협 노조활동 방해혐의 1심서 전·현직 임직원들 '징역의 집행유예형'
  4. 조원휘 "대전패싱, 충청홀대 절대 안돼"
  5. 올 세종교육청 보통교부금 '보정액' 늘어날까

헤드라인 뉴스


설 명절 차례상 비용,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20% 이상 저렴

설 명절 차례상 비용,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20% 이상 저렴

설 명절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20% 이상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6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설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4인 기준)은 전통시장이 평균 32만 4260원으로, 대형마트 평균인 41만 5002원보다 21.9%(9만742원) 차이가 났다. 품목별로 보면 채소류(-50.9%), 수산물(-34.8%), 육류(-25.0%) 등의 순으로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가격우위를 보였다. 전체 조사 대상 품목 28개 중 22개 품목에서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깐도라지..

집단 해고 GM세종물류 노동자들 "고용 승계 합의, 집으로 간다"
집단 해고 GM세종물류 노동자들 "고용 승계 합의, 집으로 간다"

집단 해고로 한 달 넘게 천막 농성에 나섰던 한국GM 세종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말 한국GM의 하청업체 도급 계약 해지로 일자리를 잃을 상황에 놓였지만 고용 승계를 위한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되면서다. 6일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전충북지부 GM부품물류지회에 따르면 전날 노사 교섭단이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데 이어 이날 노조 지회 조합원 총회에서 합의안에 대한 투표를 진행했다. 총 96명 중 95명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찬성 74표로 합의안을 가결했으며 이날 오후 2시에는 노사 간 조인식을 진행했다. 노조..

이장우 대전시장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대전·충남 통합법 직격
이장우 대전시장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대전·충남 통합법 직격

이장우 대전시장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을 겨냥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공세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통합 자체의 명분보다 절차·권한·재정이 모두 빠진 '속도전 입법'이라는 점을 문제 삼으며, 사실상 민주당 법안을 정면 부정한 것이다. 6일 대전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대전·충남 행정통합 타운홀미팅'에서 이장우 대전시장은 "도시 발전을 위해 권한과 재정을 끝없이 요구해왔는데, 민주당이 내놓은 법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정부가 만들어 온 틀에 사실상 동의만 한 수준"이라고 직격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

  • 초미세먼지에 갇힌 대전 도심 초미세먼지에 갇힌 대전 도심

  • 단속 무시한 건축 폐기물 무단 투기 단속 무시한 건축 폐기물 무단 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