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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선 교수 |
굉음을 내며 날아온 헬기에서 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하려던 계엄군이 본청 이층의 유리창을 깼다. 국회의원 보좌진, 사무처 직원 등이 필사적으로 계엄군의 진입을 막았다.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계엄군은 기자들의 사다리를 뺏거나, 라이트를 쏘거나 카메라를 손으로 움켜쥐며 촬영을 방해했다. 1980년 5월 광주 투입 계엄군의 만행을 기억하던 기자들은 계엄군이 기자를 향해, ENG 카메라를 향해 총을 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기자들은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과 그들이 소지한 무력, 그에 저항하는 시민을 낱낱이 촬영했다. 기자가 기록하는 모든 순간들이 역사가 될 것이라는 사명감이었다.
평상시 3개의 풀단으로 구성돼 경쟁적으로 취재보도하던 국회 출입 영상기자들은 그날 밤과 새벽, 비상계엄이라는 비상한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사선에 서 있다는 인식을 공유했다. 풀단별 경쟁이 아니라 전체 기자들의 협력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공동취재에 돌입했다. 폐쇄적으로 운영하던 송출망을 개방하고 가용한 장비를 모두 동원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송출했다. 국회에서 벌어지던 비상 상황을 국민들이 신속하고 생생하게 영상으로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국회방송이 국회본회의장의 회의를 생중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자 현세진에 의해 촬영된 국회의 비상계엄해제 의결 과정은 텔레비전과 유튜브, SNS 등을 타고 실시간으로 국내외에 공유되었다. 국회의장의 비상계엄해제 요구 의결안 선포 영상을 본 군인들은, 부대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파면을 선고하면서, 목숨을 걸고 국회로 달려온 시민들과 부당한 명령에 소극적으로 임무 대응한 군인들에 의해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비상계엄이 저지될 수 있었음을 확인했다. 결정문에 명시적으로 적히지 않았지만, 12·3 친위 쿠데타를 막아내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데는 역시 목숨을 걸고 취재하고 보도한 언론인들의 생생한 현장 정보가 있었다. 레거시 미디어 소속의 언론인과 스마트 폰을 든 1인 미디어 저널리스트, 유튜버 등의 영상 저널리즘을 수행하기 위한 혈투와 상호 협력이 있었다. 그날 밤과 새벽, 오로지 기록하여 보도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회로 달려온 언론인들이 없었더라면, 국회의 비상계엄해제요구 의결을 차단하기 위해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을 실시간으로 국민과 전세계에 전달하지 못했더라면, 부당한 권력의 폭력행사는 은폐되고 유혈을 동반한 비극이 44년 전 광주에서처럼 되풀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달 17일 한국영상기자협회는 5·18기념재단과 함께 '12·3 계엄 사태 속 영상저닐리즘과 민주주의'라는 특별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는 성찰하지 않은 저널리즘은 신뢰와 생명을 잃고 배척당한다는 것, 역사를 기록하지 않으면 진실은 기억되지도 못하다는 것,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언론인이 감히 사선에 설 때 시민들은 언론을 오히려 보호해 준다는 것이 논의되었다. 세미나에서는 재난이나 전쟁 등 위험의 정도가 확인조차 되지 않은 가장 위험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가, 가장 늦게 떠나는 영상 저널리즘의 숙명과 그 수행자들에게 보내는 숙연한 응원이 계속되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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