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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낙천 교수 |
작가 한강은 1993년 계간 <문학과 사회>를 통해 시로 등단하고 이어서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하였다. 이후 지속적인 작품 활동을 통해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을 짧고도 함축적인 시적 산문에 담아 표현함으로써 한국의 현대사를 강렬하게 묘사하였다. 2005년 심사위원 전원 일치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였고 치열하게 자신만의 작가 세계를 구축해 나갔으며, 2016년에는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의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식물적 상상력의 상징적 인물인 영혜의 가족 내에서의 비난과 상처 그리고 소외를 영혜의 독백으로 표현함으로써 육식성의 권력과 폭력에서 벗어나려는 트라우마의 서사화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트라우마의 서사화는 그를 집요하게 이끌었으며 그 몰입의 결정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로 이어지면서 이들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 되었다. 이로써 작가 한강은 조정래, 황석영 등 기존 한국 문단의 선배가 이룩한 문학적 성취의 기반 위에서 새로이 한국문학의 위상을 드높이는 성과를 올렸다. 그 결과로 더 이상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변방이 아니라 핵심 주류이며 세계 문학 시장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그가 전한 한국적 이야기가 충분한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국제 무대에서 더 많은 독자를 만나 보편적인 소통을 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였다. 그리고 작가 한강은 우리에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갖게 된 문화 국가라는 자부심을 심어 주었으며, 우리도 이제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문으로 읽게 되었다는 문화적 당당함을 갖게 해주었다. 그야말로 한국어로 이룩한 자랑스러운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쾌거이다.
작가 한강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수상 소감에서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는 문학이 폭력과 상실을 극복하고 구원과 희망을 제시하는 것임을 밝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문학적 탐구는 『소년이 온다』에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배경으로 국가의 폭력에 맞서는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연대의 가치와 문학적 치유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또한,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통해 이것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깊게 영항을 끼치는지를 기억의 회복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적 주제인 폭력, 억압, 고통,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질서인 생명, 애도, 희망, 연대를 구현하는 방식은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보편적 메시지로 작동하였다. 그리하여 작가 한강이 인간 내면을 심도 있게 탐구하고 역사적 고통을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은 그의 진지한 질문인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그러면서 세상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가!"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 '한강 효과'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작가 한강의 소설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반가운 진풍경이 전국적으로 벌어졌으며, 출판계에서는 2025년 1월 대형 서점가의 도서 구매량이 전년 대비 9% 증가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으며, 최근에는 유명인이 추천하는 이른바 '팬덤 독서'가 또 하나의 독서 트렌드가 되고 있다. 더불어 일반인들의 독서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서 좋은 책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이러한 독서계의 동향이 특히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모쪼록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독서 열풍이 이어져 독서가 삶의 위로가 되고, 그렇지 않아도 지치고 힘든 시기를 보내는 우리들에게 문학을 통한 치유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백낙천 배재대 국어국문·한국어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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