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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기자<사진=김정식 기자> |
"통일! 평화!" 한목소리가 청사 천장을 울리지만, 회의실 밖, 한반도의 바람은 여전히 북풍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이 긴 이름은 애초에 통일의 시민적 합의를 모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지금, 이 조직은 이름만 남았다.
예산은 꾸준히 받고, 얼굴은 행사마다 보이며, 명함엔 자문위원이라는 줄이 박힌다.
정작 국민은 모른다.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논의를 하는지.
한 손엔 평화 구호, 다른 손엔 행사 뒷풀이 영수증만 남았다.
통일은 철의 장막을 걷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평통은 얼굴에 덮은 셀로판지도 걷지 않는다.
각 지역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위원이 바뀌고, 그 정치색은 이리저리 물든다.
색은 흐려졌지만, 욕심은 선명하다.
회의를 열고, 보고서를 쓰고, 자문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통일정책은 서울에서 이미 정해졌고, 그들 자문은 복사된 회의록의 각주일 뿐이다.
지도에서 남북을 잇는 실선보다, 예산 집행 내역에 찍힌 교통비와 식대가 더 도드라진다.
주민들은 묻는다.
"통일, 언제 오나요?"
그러나 그 질문은 대회의실 벽에 부딪혀 되돌아온다.
회의 후 제공된 도시락 사진만이 SNS에 조용히 공유될 뿐이다.
존재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존재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뭔가 하고 있는 듯 국민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철이면 여기저기 얼굴 비추고, 조직은 명함용 경력으로 쓰이며, 실제 평통은 더 이상 '자문기구'가 아닌 '기념사진용 장식'으로 전락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행사 사진이 아니라, 한반도의 미래를 논하는 진짜 목소리다.
민주평통이 할 일은 여론을 닦는 일이다.
광을 내는 일이 아니라, 굳어진 국민의 관심을 북쪽으로 돌려놓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스스로의 액자를 닦느라 바쁘다.
기념촬영 속 미소 너머, 냉전의 그림자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는 회의록이 아닌, 행동을 원한다.
명함 한 줄이 아닌, 실질적 움직임을 원한다.
평화는 말에 있지 않다.
발에, 손에, 그리고 국민의 눈앞에 있어야 한다.
이제는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이 조직, 정말 필요한가.
그 물음이야말로, 통일을 위한 첫 자문이 돼야 한다.
경남=김정식 기자 hanu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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