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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기자(사진=김정식 기자> |
그러나 지금의 보수정당은 스스로 숨을 끊은 채,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조직이 죽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말단은 침묵하고, 중간은 숨고, 윗선은 귀를 닫을 때.
흐름이 끊긴 조직은 이미 기능을 멈춘 죽은 조직이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살아 있는가?
아니,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한, 그곳은 더 이상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
이 말은 곧 국민을 생각 없는 집단으로 간주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런 인식이 만연한 조직은 절대 국민을 존중하지 않는다.
정치를 생략하고, 관계를 계산하며, 설득 대신 통보한다.
그것은 죽은 조직의 언어다.
살아있는 조직은 흐른다.
말이 오가고, 후진이 성장하고, 실수가 용인되고, 조직 안에서 '사람'이 숨을 쉰다.
죽은 조직은 정체된다.
인재는 차단되고, 질문은 억제되며, 새 얼굴은 위험 요소로 간주된다.
후진을 키우는 조직은 미래를 준비한다.
후진을 죽이는 조직은 종말을 앞당긴다.
보수는 원래 균형의 철학이다.
변화를 무조건 거부하는 게 아니라, 변화를 질서 있게 조정하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보수는 균형이 아니라, 경직으로 흐르고 있다.
위에서만 결정되고, 아래는 따라야 하는 구조.
그 속에서 아무도 묻지 않는다.
"우리가 왜 외면받는가?"
역사는 경고한다.
죽은 조직은 반드시 무너진다.
조선 말기 당쟁, 프랑스 귀족회의, 그들 모두는 '안에서 썩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당 중심 공천'이라는 환상을 깨야 하고, 국민을 수동적 존재가 아닌 정치의 주인공으로 대해야 한다.
살아있는 조직은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가 맞는가?", "국민이 원하는가?", "이후는 누구인가?"
지금의 보수가 살아나려면 이 세 가지 질문을 매일 품고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란 결국 사람의 예술임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흐름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흐름이 막히면, 썩는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살아 있는 조직만이, 살아 있는 정치를 만든다.
경남=김정식 기자 hanu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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