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의 할아버지 초당(草堂) 이선생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기고] 나의 할아버지 초당(草堂) 이선생

이연우 남서울대학교 특임교수

  • 승인 2025-07-02 13:51
  • 현옥란 기자현옥란 기자
KakaoTalk_20250702_124223287
이연우 남서울대학교 특임교수
초당 이규용(李圭龍) 선생은 조선 중기 산림(山林)을 대표하는 '충청5현'으로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선생의 9세손으로, 일제의 대한침탈과 식민정책이 노골화되자 몸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죽기로 항거한 항일독립운동가 성얌(醒菴) 이철영(李喆榮) 선생의 아드님이다. 어린 나이에 가난한 유학자며 독립운동가의 집안에 양자로 와 집안의 가풍과 전통을 잇고 수 백 년 지켜온 학문과 의리를 지켜냈다.

성암 선생의 독립정신은 단순한 투쟁이 아니라 인륜과 도덕에 바턍을 둔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 1904년 일제의 경부선 철도가 초려 선생의 유택을 지나자 강학을 멈추고 상경해 승지와 교통대신을 찾아 담판 짓고 선로를 다시 변경하였으며,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고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 징집하려고 하자 이에 분기하여 기의려문(起義旅文)을 지어 의병을 초모하고, 1909년 일제가 호적신고를 강행하자 이에 항거하여 호적신고 반대운동과 일제의 만행을 낱낱이 열거한 '치일국정부서 (致日?政府書)'를 작성, 일왕에게 보내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1909년 기유일기, 1910년 경술일기, 1914년 갑인일기 그리고 1914년 무오일기 등 네 편의 긴박한 옥중일기가 그것이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생부(生父)의 손에 끌려 막 고갯마루를 넘어섰는데 애타게 기다렸던 양부(養父)는 바로 영면한 뒤였다. 능성 구씨와 창녕 성씨 부인을 두고 슬하에 3남 6녀를 두었는데 딸들은 모두 가난한 집안으로 출가하여 그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그 밖에 손자 10명과 외손자 10명을 뒀는데 하나 같이 다 신의와 의리를 존중했고 대소각댁 집안 간 모두 우애가 깊고 화평하였다. 1968년 3월 얼굴도 못 본 양부의 뜻과 정신을 기리고 이를 널리 현창하기 위하여 유림의 발의로 '숭의사' 건립을 추진하고 1971년 봄 그 낙성식을 성대히 치렀다.

사실, 전국 유림의 발의였지만 초당선생은 큰 아들 종구를 데리고 경향각지를 돌았다. 사우(祠宇)건립 성금이라는 것이 농우(農牛)를 판 현금도 있었지만 쌀과 보리 등 곡식도 태반이었다. 언제는 그 고마운 마음을 갚으려고 남의 논도 갈아 주고 탈곡까지 그 대가를 치르려고 무한 애를 썼다고 사람들은 증언했다. 종일 밭에서 일을 하고 새벽은 저녁에 해놓은 나무 짐을 지고 시내로 팔러 나갔다. 종구, 종린 두 어린 아들도 아버지를 따랐다. 많은 식솔에 작은 농토로 늘 궁핍하고 가난했지만 초당 조부님은 아버지 성암 선생의 뜻을 쫒아 가세를 재정비하고 학문에도 게으르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어린 조부는 양부가 이미, 돌아갔으니 집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생부의 말에 '양자를 오기로 결정하였는데 어찌 물리겠는가' 하고 생부의 고집을 꺽은 일은 후일담으로 양가에 모두 전한다. 1961년 8월 상순 '성암집' 발문에 붙인 초당 조부님의 글을 읽노라면 그 진솔하고 지극한 정성과 마음에 가슴이 저민다.

"동방의 도학(道?)은 그 유래가 오래됐는데 참된 선비가 잇달아 등장하여 도학을 널리 천명(闡明)하였다. 신주가 가라앉았는데도 오히려 동쪽의 한 모퉁이를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도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오랑캐가 이 땅을 훔쳐 점거하여 종사(宗社)가 폐허가 됨에 이르러서는 삼강(三綱)이 끊어지고 구법(九法)이 모두 무너졌다. 이 때 우리 선군자(先君子) 성암 부군께서 산림의 벼슬하지 않은 선비로서 춘추(春秋)의 의리를 지키고 강상(網常)을 붙잡아 하늘의 이치와 백성의 떳떳한 도리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으니 그 세도(世道)를 도운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그 평소의 말씀으로 도를 밝히고 몸을 던져 의리로 항거하신 것이 편지와 문서 등에 드러나 있는데 상자 속에 보관한지 이미, 오래되었어도 이를 간향할 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거칠고 어리석어 진실로 우리 집안의 명성을 계승하기가 부족하니 그 글들과 다른 유편(遺編) 들도 모두 그냥 없어지지 않을까 두려웠다. 이에 감히 종중 문하의 몇몇 선비들과 의논하여 본고와 부록을 4권의 책으로 모아 인쇄를 맡기니 다만, 능력이 부족히고 처지가 열악한 까닭에 책을 널리 배포히지 못하는 것이 한심스러울 뿐이다"라고 서문은 적고 있다.

최근 그 문집 춘, 하, 추, 동 네 권을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에서 번역하고 층남 도비와 공주 시비를 받아 남서울대학교 '충남의병연구센터'에서 다음 달 중순 간행할 예정에 있는데 이 또한 우연의 일이 아니다.

초당 이규용 옹은 생전에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아버지 성암 선생의 문집읕 펴내고 사당을 건립하여 후세의 반듯한 의리와 정의를 실천으로 몸소 보여줬다. 2015년 11월 세종특별자치시에 '초려역사공원' 의 설립, 준공한 것도 그런 연원과 맥락에서 비롯되었음은 문중만의 주장이 아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가 다 아는 일이다. 2011년 4월 성암 선생의 묘갈명이 세워지고 2012년 4월 묘정비가 국가보훈부와 공주시의 예산으로 건립되었다.

소싯적 조부 초당의 기억은 인자하고 엄정했지만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셨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과 용기가 나셨는지 모르지만 그것이 우리 집안의 DAN가 분명하다. 꼭 사법고시에 합격을 하고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연우 남서울대학교 특임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짜뉴스 3.0 시대 -민생과 시장 경제 보호 위한 대응전략
  2. [교정, 사회를 다시 잇다] 수용자 돌볼 의사 모집공고만 3번째…"치료와 재활이 곧 교정·교화인데"
  3. 충남대병원 공공부문, 공공보건의료 네트워크 활성화 세미나 개최
  4. 한국수자원공사, 2026 홍수기 맞춰 '댐 시설' 사전 점검
  5. 대전 공공재활병원 피해 부모들 “허위치료 전수조사해 책임 물어야"
  1. ‘인상 vs 동결’ 내일 4차 석유 최고가격제 향방 촉각
  2. "취지 빠진 정책, 출발선은 같아야"…서울대 '3개'만 만들기 논란 지속
  3. 대전 급식 파행 재현되나… 차질 우려에 교육감 후보 중재 나서기도
  4. 장기 정지 원전설비 부식 정도 정확히 측정한다… 원자력연 실증 완료
  5. 지방선거 전 행정수도법 통과 불발에 세종 정치권 '유감'

헤드라인 뉴스


정부 양자클러스터 공모 본격… 대전, 연구집적 경쟁력 통할까

정부 양자클러스터 공모 본격… 대전, 연구집적 경쟁력 통할까

대전시가 정부의 국가 양자클러스터 공모에 뛰어들 채비를 마치면서, 국내 최대 연구개발 집적지가 실제 산업 거점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정부가 국가 전략기술로 꼽히는 양자산업 육성에 본격 시동을 걸자 대전도 KAIST와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구축한 연구 인프라를 앞세워 유치전에 가세했다. 2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달 18일까지 국가 양자클러스터 지정 공모 신청을 받는다. 양자컴퓨팅·양자통신·양자센싱 등을 중심으로 지역 거점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기술 변화 속도와 산업 불확실성을 고려..

"지선 전 통과 불발" 세종 행정수도특별법, 앞으로 향방은
"지선 전 통과 불발" 세종 행정수도특별법, 앞으로 향방은

6월 지방선거 전 통과가 사실상 불발된 세종 행정수도특별법(이하 행정수도법)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앞서 '조속한 처리'를 내세웠던 여·야 지도부의 약속이 큰 실망감으로 돌아온 만큼, 앞으로의 처리 절차에 지역사회 여론이 더욱 집중되고 있는 모양새다. 23일 국회에 따르면 전날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행정수도 완성을 골자로 발의된 특별법 5건(황운하·강준현·김종민·김태년·엄태영·복기왕 등 대표 발의, 발의순)의 첫 논의를 시작했지만 심사를 보류한 뒤 공청회를 열기로 했다. 위헌 소지와 국민적 공감대 등을 두고 보완..

대전 `도마1동 행정복지센터`, 신생 핫플레이 상권으로 `주목`
대전 '도마1동 행정복지센터', 신생 핫플레이 상권으로 '주목'

대전지역 곳곳에서 신생 상권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평소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슈퍼마켓을 비롯해 채소·과일, 정육점 등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어서다. 기존 상권과 달리 신규 창업 점포가 눈에 띄게 눈에 띄게 확장되자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는다. 22일 소상공인 365 빅데이터가 추려낸 대전 신생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도마동에 위치한 '도마1동 행정복지센터' 인근이다. 신생 핫플레이스란, 상권이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장소로 최근 들어 급부상하는 곳을 뜻한다. 8만 8800..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꽃밭에서 펼치는 투표참여 캠페인 꽃밭에서 펼치는 투표참여 캠페인

  • ‘장애·비장애 경계 허물고’ ‘장애·비장애 경계 허물고’

  • ‘에너지 절약 동참해주세요’ ‘에너지 절약 동참해주세요’

  • 자연 속 힐링 요가 자연 속 힐링 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