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윤리의 본질적 목표는 연구의 대상이 되는 객체와 연구 수행자, 더 나아가 학문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가령 생명과학에서는 연구에 사용되는 생물 시료를 윤리적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정해져 있다. 네이처, 사이언스 등 유수의 학술지들 뿐 아니라 주요 대학들도 연구 성과를 연구자들끼리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안들을 공개하고 있다.
이러한 성문화된 기준과 각 연구자들의 도덕적 판단이 모두 조화를 이룰 때,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평가되며, 납득할 만한 기준에 의해 그 공로가 개개인에게 분배되는 건강한 학문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윤리가 중요한 만큼이나 연구부정 여부를 가리는 일은 매우 정교한 판단을 요구한다. 가령, 하버드 대학의 연구윤리 강령을 살펴 보면, 연구 성과물의 저자들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연구팀 사이의 긴밀한 토의를 거쳐서 수행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연구 책임자, 즉 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중재하며, 자신을 포함하여 가장 큰 기여를 한 연구자에게 제 1저자의 지위를 부여하고, 그 외의 연구자들에게 공동저자 및 교신저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등의 책임을 져야 한다.
2021년 사이언스 지에 출판된 칼럼에 따르면, 논문 저자 결정 방법에 대한 단일한 원칙은 없다. 왜냐하면 연구자의 학문 분야, 국가, 기관, 그리고 커리어 단계에 따라 수많은 다양한 상황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다양한 상황을 완전하게 아우를 수 있는 법칙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본질적인 대원칙은 존재한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연구자들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학문 생태계를 건강하게 지키고자 하는 목적 하에, 그 기여도의 정도에 따라 투명하고 정의롭게 저자가 결정되어야 한다. 이는 과학자 집단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사안이며, 이에 대해 마치 천편일률적인 원칙이 있는 것처럼 접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현재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연구윤리 논란은 연구부정행위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첫째, 제자의 학위논문이 추후 출간된 학술 논문과 유사하거나 일치한다는 의혹은 근거 없는 문제 제기이다. 가령 네이처 포트폴리오(Nature Portfolio) 출판사는 연구윤리 항목에 "대학의 석사 및 박사학위 논문의 일부를 원고로 투고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학위논문은 본질적으로 대학 내부에 갇혀 있는 '미출간 원고'인 것이며, 오히려 이를 전 세계의 학문장에 공개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아 게재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출판된 원고의 저자의 순서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연구팀이 자율성을 무시하는 처사일 수 있다. 많은 경우 학위논문의 지도교수는 '교신 저자'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지도교수가 논문 작성에 실질적으로 가장 큰 역할을 하였다면 연구팀의 숙고를 거쳐 제 1저자가 되는 사례도 매우 많다.
가령 202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캐롤린 버토지는 연구팀에서 출원한 미국 특허에 제 1저자로 수십 번 이름을 올렸고, 202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맥밀런도 2001년에 미국 화학회지 (Journal of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게재한 논문을 포함하여 수많은 주요 출간물과 특허 들에서 대학원생 대신 제 1저자의 위치를 차지했다.
셋째, 한국어로 작성한 한 논문이 AI를 활용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문제 제기 또한 신빙성이 떨어진다. 한국어로 쓰인 논문에 대해 AI가 얼마나 신빙성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 매우 불확실한 것이 기술적인 현실이며, 더 나아가 인공지능 특유의 환각현상이 논문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연구윤리는 연구자와 더불어 학술장 공동체를 공고하게 유지시키는 핵심적인 가치이다.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만큼 정교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타인의 논문을 인용하지 않고 그대로 복사하여 자신의 업적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는 등 그야말로 명백한 연구부정이 허다하다는 점은 씁쓸한 일이지만, 명확한 근거 없이 연구부정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애석한 일이다. 연구부정을 경계하는 것은 학술연구 역량, 더 나아가 국가의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부정확한 의혹으로 인해 정치권의 소모적인 논쟁이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할 때다.
전준/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