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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
RE100도 그렇다. RE100은 Renewable Energy(재생에너지) 100%의 줄임말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전기를 모두 재생에너지로 사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이 계약서에는 매일 운동하겠다는 조건이 있지 않다. 재생에너지를 시간 단위로 매칭하는 것이 아니라, 1년간 총량 기준으로 맞추면 된다는 점이다. 즉, 물리적으로는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끌어다 쓰더라도 재생에너지 전기를 샀다는 계약서나 인증서만 있으면 RE100을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넘어 진짜 무탄소 에너지를 쓰겠다는 움직임이 24/7 CFE(Carbon-Free Energy Compact)이다. 24/7 CFE는 2021년 유엔 에너지(UN Energy)를 중심으로 시작한 이니셔티브로 24시간 주 7일을 꾸준히 무탄소 에너지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RE100이 헬스장 1년 자유 이용권이라면 24/7 CFE는 매일 운동시간이 정해진 PT 수업이다. 들쭉날쭉한 운동이 아닌 매일 정해진 시간에 꾸준히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년 뒤 자유 이용권 회원은 운동을 제대로 했는지 장담할 수 없지만, PT 수업 회원은 가끔 결석은 있어도 대체로 80% 이상은 꾸준히 운동을 이어간다.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RE100이 가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 헬스장 회원권을 끊은 사람이 아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분명 더 나은 출발점이다. 단지, RE100만으로는 무탄소 사회로 가기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다. RE100을 주관하고 있는 더 클라이밋 그룹(The Climate Group)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24년부터 유사한 이름의 24/7 무탄소 연합(Carbon-Free Coalition)을 출범시켰다. RE100은 시작이고, 다음 단계로의 도약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2022년에는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24/7 CFE의 다음 단계인 CFE 이니셔티브를 제안해 국제적인 공감대와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기존의 RE100과 24/7 CFE는 전기에 국한되지만, 탄소중립의 큰 숙제는 바로 산업의 무탄소화다. 마치 헬스장 회원권과 PT 수업만으로는 건강해질 수 없고, 식단 관리까지 같이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철강과 석유화학을 비롯해 에너지를 많이 쓰는 중공업이 중심이어서 더욱 힘들다. 치킨과 피자를 야식으로 먹는 민족에게 닭가슴살 샐러드 식단이 유난히 더 힘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고온가스로다. 고온가스로는 차세대 원자로의 일종으로 기존처럼 물을 끓이는 대신 헬륨 기체를 데워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자로다. 물을 끓이는 원자로는 작동온도가 물의 끓는 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 액체가 아닌 기체를 데워 쓰는 원자로는 훨씬 더 높은 온도에서 작동할 수 있다. 높은 온도의 헬륨 가스를 전기 생산에 쓸 수도 있지만, 고온·고압의 증기 생산에 활용할 수 있다. 기존의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태워서 하던 공정을 무탄소 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이다. 산업 공정에 필요한 고온·고압의 증기를 대규모로,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무탄소 에너지원이 드문 상황에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고온가스로는 이제 실증에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고온가스로가 상용화되기까지는 경제성과 수용성 확보,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실증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산업 부문 탄소중립의 가장 큰 문을 열게 될 것이다. 탄소중립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당장의 선택이다. 고온가스로는 그 선택을 실현하는 현실적 도구다. 우리의 도전이 세계 산업계의 탄소중립 표준을 만드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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