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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환 대표 |
작은 기업조차 운영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주 쉬운 일도 벅찼고, 일상은 사는게 아니라 견뎌야 하는 도전의 시간이었다. 주변 사람들을 잘 만나 일본에서 재활을 권유받았다. 일본에서도 사업을 했고, 언젠가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별 생각 없이, 될 때로 되란 심정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인적이 드문 산골 마을에 자리 잡은 나는 시시때때로 헬기를 타고 재활을 위해 이곳저곳을 누볐다. 서서히 오른쪽 눈 시력이 돌아오고, 말이 또렷해졌다. 뒤죽박죽인 기억도 돌아왔다. 어느 날, 집 마당을 쓸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슨 수로 헬기를 타고 다닌거지?'
군수를 만날 일이 있었다. 단 면을 보자면 헬기를 유지하는 비용이 비쌀지 몰라도, 단 면을 생각하면 보건소를 유지하는 것보단 훨씬 이득이란 얘기를 들었다. 꼬리표 달린 예산으로 획기적 사업을 할 순 없는데. 고향납세를 통해 과감히 의료용 헬기를 도입한 셈이다.
예전에 드라마를 봤다. 동남권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으면, 엠뷸런스가 대형병원에 옮길 때 사망률이 너무 높았다. 헬기를 띄우고 싶은데, 한 번 띄울 때 비용이 비쌌다. 그런데, 사망한 유족들은 보통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당장은 헬기를 띄우는 게 비싸 보여도 장기적으로 노동자를 살리는 게 국가 재정 관점에선 이득이었다. 그런데, 꼬리표 달린 예산으론 이런 획기적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다. 이국종 교수가 작동하지 않는 무전기라며 성질을 내고 집어 던지는 쇼츠 영상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봤다. 그것도 마찬가지 상황이었을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강릉 산불 때 길거리에 나 앉은 할머니들이 가장 필요했던 건 슬리퍼였는데, 그걸 사줄 꼬리표 예산은 애석하게도 없었다. 노원문고 탁무권 대표님의 도움으로 동대문 시장에서 사이즈별 슬리퍼를 수백켤레 사가는 새벽 길에 우리 사회가 아무리 고도화해도 모세혈관처럼 모든 사각지대를 커버하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사랑기부제에 참여한다는 건, 직장인 입장에서 전액 세액공제와 답례품 때문이다. 그런데 경북 산불에 며칠 만에 수십 억의 기부금이 몰리고, 유기견 살처분 제로를 선언한 광주 동구나 장거리 통학을 하느라 아침밥을 거르는 중학생을 챙기는 경기 안성에 기부금이 몰린다. 혜택 때문에 참여하지만, 종국에는 꼬리표 달린 예산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효능감에 모두 공감한다.
우리는 경제 대국이다. 마음 먹으면 못하는 일은 없는 나라다. 재해가 터지면 굶지는 않지만, 슬리퍼를 사긴 어렵다. 유기견은 딱하지만 살처분한다. 장거리 통학하는 중학생은 아침을 굶는다. 누구에게는 세상 어떤 일보다 안타까운 일인데, 국가 재정 운용 관점에서 우선 순위가 되긴 어렵다.
국가 예산 700조 시대다. 지난해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액은 879억이다. 공제액을 상향해서 모세혈관처럼 사각지대를 해결해보는 품격 정도는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체감하고 싶다.지난 해, 일본 고향납세액은 12조원 가량이다. 1,000조원이 훌쩍 넘는 일본 정부 예산에서 푼 돈 일 수 있다. 그런데 그 돈이 해낸 일은 적어도 12조원 보다는 효능감이 있다고 모두가 말한다. 양 당이 지난 대선 때 냈던 고향사랑기부제 공약은 대동소이했다. 고향사랑기부제에 날개를 달아줘야 하는 이유다.
/고두환 사회적기업 ㈜공감만세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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