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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철 변호사 |
법률이 아닌 관습으로써 범죄나 형벌을 규정할 수 없다는 관습형법 금지 원칙, 형벌법규가 시행된 이후의 행위에 대해서만 그 법규를 적용해야 한다는 소급효 금지원칙, 형법법규가 무엇이 범죄이고 그에 따른 형벌을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 법률에 규정이 없는 사항에 대하여 그와 유사한 성질의 법률을 적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유추해석 금지 원칙이 죄형법정주의의 주요 내용이고, 각각은 형법 해석의 중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2018년 수능시험 고사장 감독 업무를 수행하던 공무원 A가 수험생 B의 이름과 연락처 등이 적힌 응시 원서를 보고 "마음에 든다"는 메시지를 보내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다. 실제로 B는 이러한 연락을 받고 두려워 기존의 주거지를 떠나는 등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매우 부적절 하고 개인정보 취급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이에 대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1심은 그의 행위가 부적절하지만 수능 감독관인 A는 개인정보 취급자에 불과해 개인정보보호법에 근거해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행위 당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개인정보 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사람은 정보 주체로부터 별도 동의를 받거나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목적 외 용도로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에 대해서만 처벌규정이 있었다. 1심은 이 사건에서 개인정보 처리자는 교육부 또는 지방 교육청이기 때문에 A는 '개인정보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개인정보 취급자 A의 이용 행위는 처벌규정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2심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의 유죄를 선고하였다. 2심 재판부는 개인정보보호법 입법목적에 비춰볼 때 개인정보의 보호에 틈이 없도록 관련 규정을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A가 교육청으로부터 수능감독관으로 임명되어 시험감독업무 수행을 위해 개인정보처리자인 교육청으로부터 수험생들의 개인정보를 받은 것이므로 '개인정보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에 포섭된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다시 무죄 취지의 판결을 하였다. 대법원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처리자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는 지배·관리권을 이전받은 제3자인 서울특별시 교육청이지 A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A는 서울특별시 교육청 지휘·감독을 받으며 수험생 개인정보를 처리한 사람으로서 개인정보 취급자이며, 개인정보 처리자 업무 수행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받은 A같은 개인정보 취급자는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일반인의 법감정으로는 이러한 일련의 재판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법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는 우리 법체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근간이다. 특정한 행위나 사람의 처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 근간을 훼손할 수는 없다. 이후 개인정보보호법이 2023년 3월 개정되어 현재는 A와 같은 행위는 처벌대상이 되었다. 이렇듯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그것을 보완하는 차원의 입법이 필요하고, 이에 대해서도 범죄행위의 명확한 규정과 그에 따른 적절한 형벌을 정하는 것이 입법부의 역할과 책임이다.
/신동철 법무법인 유앤아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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