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대중교통의 배려석, 양보가 아닌 시민의 약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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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대중교통의 배려석, 양보가 아닌 시민의 약속으로

박남구 대전시컨택센터협회장

  • 승인 2025-09-22 17:05
  • 신문게재 2025-09-23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박남구 회장
박남구 대전시컨택센터협회장
나는 가끔 아침 출근길 시내버스와 도시철도 1호선을 이용한다. 직장인과 학생으로 가득 찬 차 안에서 잠시 앉아 눈을 붙이는 일은 소소한 행운이다. 그러나 문득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다. 바로 버스 앞쪽과 지하철 양끝 칸에 마련된 배려석이다. 임산부, 노약자, 장애인, 어린이 동반자 등을 위해 비워둔 자리지만 실제로 이 자리가 제대로 기능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대전시도 임산부 배려석과 장애인과 노약자 전용 좌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배려석을 먼저 앉는 사람이 이용하는 자리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승객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앉아 있다가 양보를 주저하고 임산부나 노약자는 비어 있는 자리임에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서서 이동한다. 이런 풍경은 대전뿐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시민이 먼저 움직일 때 가장 빠르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도 바로 우리 지역이다. 배려석은 법적 강제력이 있는 자리는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시민의식이 중요하겠다.

특히 대전은 고령화 속도가 빠른 도시 중의 하나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전시 65세 이상 인구수는 27만여 명으로 대전시 전체인구의 약18.7%로 상승 중이다. 고령 승객이 늘어날수록 배려석의 필요성은 커지고 시민 모두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에서 양보 문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다.

임산부의 상황은 더 절실하다. 대전시가 운영하는 임산부 배려석은 지하철 전동차마다 설치돼 있지만, 임신 초기 여성은 배가 불러 있지 않아, 피곤하지만 앉지도 못하고, 양보해달라고 말도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임산부 배지(핑크 배지)에 대한 홍보도 미흡하지만, 착용률도 낮아 효과가 제한적이다. 결국 자리 양보는 제도보다 홍보를 통한 시민 개개인의 배려심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렇다면 대전은 어떻게 이 문화를 개선할 수 있을까. 첫째, 시민 캠페인을 활성화해야 한다. 단순히 안내문이나 스티커로는 행동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 대전도시철도공사와 버스운송사업조합이 함께 나서 배려석 비우기 캠페인 및 양보 실천 챌린지 등 참여형 캠페인을 정기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학생·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SNS 참여 이벤트도 좋은 방법이다. 둘째, 교육과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대전시청과 교육청이 연계해 초·중학교에서 대중교통 예절 교육을 정규 교육과정이나 체험학습으로 포함시킨다면, 어린 시절부터 배려 문화가 자연스럽게 습관화될 수 있다. 대전 도시철도 역사나 버스 차고지에서 모의 체험을 통해 실제로 양보하는 행동을 경험해보는 것도 효과적일 것이다. 셋째, 현실적인 제도 개선도 고려할 만하다. 예를 들어, 출퇴근 혼잡 시간대에만 배려석 이용을 제한하는 시간제 배려석을 도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일반 승객도 비혼잡 시간에는 자유롭게 앉을 수 있어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든다. 또한 임산부 배지 보급률을 높이고, 승객이 쉽게 배지를 신청·수령할 수 있는 온라인·모바일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배려석 문제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내가 잠시 불편해지는 것을 감수한다는 뜻이다. 좁은 공간에서 양보와 배려가 일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시민으로 거듭날 것이다. 배려석은 누구도 앉지 못하는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 필요할 때 언제든 앉을 수 있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전시의 모토는 시민이 행복한 도시이다. 그 행복은 거창한 개발 사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버스 한 칸, 지하철 한 칸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모여 행복이 시작될 것이다. 오늘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우리 모두가 배려석을 양보의 자리가 아닌 시민의 약속으로 만들 때, 대전은 한층 더 따뜻한 도시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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