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산에서 자라는 아이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산에서 자라는 아이들

홍성 홍남초 김명중 교사

  • 승인 2025-10-30 16:35
  • 신문게재 2025-10-31 18면
  • 오현민 기자오현민 기자
20251030_홍성 홍남초등학교 교사 김명중
홍성 홍남초 김명중 교사.
"선생님, 저 가정체험학습 내면 안 돼요?", "저 산에 가본 적 없어요."

"어차피 내려올 건데 왜 올라가요?", "산에 가서 다치면 선생님이 책임질 거예요?"

이곳저곳에서 아이들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내일은 용봉산으로 떠나는 체험학습이 있는 날이다. 요즘은 안전 문제로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도 쉽게 가지 않는 분위기라, '산을 가는 체험학습'이라는 말에 의아해하는 분들도 많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매년 동네 아이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를 떠난다. 원래는 6학년 수학여행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마을 등산학교로 이어지고 있다. 벌써 3기째다. 올해 우리 반 아이들과도 지리산은 아니지만, 지역에 있는 용봉산을 함께 오르기로 계획을 세웠다.



혼자 인솔하기는 어려워 양육자들께 도움을 요청드렸고, 다행히 한 분이 함께 해주셨다. 그렇게 산행 아침, 우리는 산 아래 용봉초에 도착해 용도사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자 아이들의 투정이 쏟아졌다. 체격이 큰 아이들도 등산 경험이 거의 없어 금세 힘들어했다.

용도사에서 잠시 쉬며 물을 마셨다.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됐다. 다시 한번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어떻게 산을 오르면 좋은지 설명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거북이처럼 천천히, 꾸준히 올라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체력이 된다고 생각해 빠르게 오르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금세 지쳐 뒤처지는 경우가 많았다.

산길을 오르며 다양한 아이들 모습을 발견한다. 힘들다며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도 있지만, 묵묵히 오르는 아이, 조잘대며 쉼 없이 이야기 하는 아이, 친구를 도와주는 아이들도 있다. 용봉산은 높지 않아 천천히, 여유 있게 오를 수 있다. 힘들어도 친구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웃는 모습들이 정겹다. 조금씩 산을 오르자 산 아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짜증을 내던 아이들도 "와~" 하며 감탄한다.

"와, 이건 진짜 멋있다."

"선생님, 힘든 건 맞는데 풍경은 좀 괜찮네요."

말은 툴툴대도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들 대부분이 이런 전망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 그 자체로 소중한 순간이다. 두 시간 남짓 걸어 도착한 정상. 아이들은 생각보다 덜 힘들었다며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정상에서 만난 어른들께서 어느 학교냐고 물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말 한마디에 아이들의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산에서 어른들에게 받는 칭찬은 아이들 자존감을 쑥쑥 자라게 한다.

정상 아래 공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꺼내 들고 아이들이 둘러앉는다. 부모님이 정성껏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며 애쓰셨을 부모님 마음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아이들은 더 힘이 난다.

노래도 부르고, 시원한 바람과 싱그러운 나무 냄새를 맡으며 하산길에 나섰다. 대부분 아파트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겐 이런 자연 속 경험이 결코 쉽지 않다. 자연을 만나는 일은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배움이다. 산을 오르며 친구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협동심과 문제해결 능력도 키울 수 있다.

무사히 산 아래로 내려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자, "선생님, 또 가요!"라는 외침이 들려온다. 정말 가고 싶은 건지,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들은 산에서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배운다. 나도, 아이들도 산에서 쑥쑥 자라고 싶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금강 세종보' 철거 VS 가동'...시민 여론 향배는 어디로
  2. 한화 이글스 반격 시작했다…한국시리즈 3차전 LG 트윈스에 7-3 승리
  3. 신탄진역 '아가씨' 성상품화 거리 대응 시민들 31일 집결
  4. [썰] 전문학, 내년 지선서 감산 예외 '특례' 적용?
  5. 국민의힘 대전시당 신임 위원장에 이은권 선출
  1. 충남대, 제2회 'CNU 혁신포럼’…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정책 대응 논의
  2. '수능약?' 전문의약품을 불안해소 오남용 여전…"호흡발작과 천식까지 부작용"
  3. [세상읽기] 변화의 계절, 대전형 라이즈의 내일을 상상하며
  4. "사업비 교부 늦어 과제 수행 지연…" 라이즈 수행 대학 예산불용 우려
  5. 한남대, 조원휘 대전시의장 초청 ‘공공리더십 특강’

헤드라인 뉴스


`빛 바랜 와이스의 완벽 투구`…한화, 한국시리즈 4차전 LG에 역전패

'빛 바랜 와이스의 완벽 투구'…한화, 한국시리즈 4차전 LG에 역전패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30일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KS, 7판 4선승제) 4차전을 4-7로 패배하며 벼랑 끝에 몰렸다. LG는 이날 경기 결과로 시리즈 전적을 3승으로 만들며 우승까지 한 걸음만을 남겼다. 한화는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LG를 맞아 4-7로 패배했다. 먼저 득점을 낸 건 한화다. 4회 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오른 황영묵은 번트로 1사 2, 3루 기회를 만들었고, 다음 순서로 나선 하주석이 적시타를 쳐내며 선취점을 만들었다. 한화..

대전시, 상장사 성장 지원 본격화… 전 주기 지원체계 가동
대전시, 상장사 성장 지원 본격화… 전 주기 지원체계 가동

'일류경제도시 대전'이 상장기업 육성에 속도를 내며 명실상부한 비수도권 상장 허브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전시는 지역 기업의 상장(IPO) 준비부터 사후관리까지 전 주기 지원체계를 구축해 기업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2022년 48개이던 상장기업이 2025년 66개로 늘어나며 전국 광역시 중 세 번째로 많은 상장사를 보유하고 있다. 시는 이러한 성장세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시민 인식 제고를 병행해 '상장 100개 시대'를 앞당긴다는 목표다. 2025년 '대전기업상장지원센터 운영..

한화 김경문 감독 "김서현, 감독 못지 않은 스트레스 받았을 것"
한화 김경문 감독 "김서현, 감독 못지 않은 스트레스 받았을 것"

"감독 못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친구다. 감독이 포옹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은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LG 트윈스와의 4차전을 앞두고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전날 구원 투수로 활약을 펼친 김서현 선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심우준이 9번에 다시 들어왔다. 어제 큰 힘이 되는 안타를 친 만큼, 오늘도 기운을 이어주길 바란다"라며 전날 경기 MVP를 따낸 심우준 선수를 다시 기용하게 된 배경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