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우리 시대의 도전과 응전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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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우리 시대의 도전과 응전에 관한 단상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 승인 2025-11-04 10:12
  • 신문게재 2025-11-05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유재일 대표님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가을과 겨울이 맞닿은 11월은 뭔가 애매하고 모호한 느낌을 준다. 낙엽이 흩날리고 안개가 자욱이 깔린 풍경 때문인지 멜랑꼴리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이는 가을의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생'(1894) 첫 구절인 "인생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를 부질없이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이는 그리스 작곡가인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1967)에 나오는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라는 가사를 속절없이 되뇌인다.

물론 아주 드물게 어떤 이는 11월의 짙은 안개가 자신의 욕망과 음모를 감춰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일탈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역사 속에서도 그런 이들이 있었다. 1799년 11월 9일 군사쿠데타로 프랑스 민주정을 쓰러뜨린 나폴레옹과 1915년 11월 20일 친위쿠데타로 중화민국 공화제를 붕괴시킨 위안스카이가 대표적이지 아닐까 본다. 아마도 윤석열 전 대통령도 지난해 12·3 내란 책동을 11월 하순 안개 낀 어느 날 확정지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지난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세계의 이목 속에서 숨가쁘게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세계정치경제의 차원에서 보면, 미·중 정상회담이 가장 큰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출중심의 경제구조와 한·미동맹의 안보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이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과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최대 난제였던 관세 협상을 타결하여 '관세·안보 분야 공동 팩트시트'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팩트시트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는데, 한국이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국방비를 크게 늘리는 내용이 핵심이라는 보도가 잇따른다. 이번 합의는 한국 정부가 나름 선방했다는 국내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미·중 균형외교가 미국 편입외교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과 한국의 구조적 저성장이 국내 투자·고용의 위축으로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어 충격이 적지 않다.



국제관계에서 "힘은 곧 정의다"라는 테제는 부정하고 싶더라도 만고의 진리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약소국의 중립은 희구 되지만, 대부분 허망으로 귀결된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인 투퀴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수많은 사례로 이 같은 이치를 통찰했다. 이 가운데 가장 회자되는 사례는 민주정체를 지닌 아테네의 동맹 요구를 거절한 섬나라인 멜로스의 처연한 파멸 이야기다. 멜로스는 그 대가로 성인 남성은 모두 죽임을 당했고, 여성과 아이는 노예로 내다 팔렸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미국의 중동 및 카리브해 연안 폭격 사태를 보면, 역사는 여전히 그 패턴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일방주의로 경제와 안보의 자율성이 제한되고 있는 냉혹한 현실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선택지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미국과 비대칭적인 합의를 한 이재명 정부에게 책임을 묻거나, 반패권주의적 글로벌 연대를 통해 미국에 저항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태의 원인이 외세에 있고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에 몰두한 상황에서, 이는 자중지란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효적이지 못하다.

간혹 어려울 때 "궁하면 통한다"라는 속담에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 이 말은 '주역'에 나오는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위기 돌파의 해법은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러한 지혜를 오늘에 적용한다면, 미증유의 도전에 직면한 한국이 어떻게 응전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창조적 파괴와 국민적 합심으로 새 길을 여는 것이다. 비효율 경제는 혁신되어야 하며, 분열 정치와 차별 사회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들은 관용적인 성찰과 대승적인 협력에 나서야 한다.

사람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도 갖고 있으며, 자유와 평등뿐만 아니라 우애도 추구한다. 비관과 낙관이 교차하는 시국을 맞아 가까운 친구나 뜻이 통하는 지인과 함께 기가 막히게 맛있는 치맥이나, 그리스 술로 물을 타면 은은한 안개빛이 나는 우조를 한잔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유재일 사회공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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