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상처의 기억과 주체적 서사의 구축 '세계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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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상처의 기억과 주체적 서사의 구축 '세계의 주인'

  • 승인 2025-11-27 17:07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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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계의 주인' 포스터.
'결정적 장면' 혹은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사진가가 남긴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꾸며낸 사진이 아니라 연속된 삶이나 사건의 현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을 포착해 낸다는 뜻입니다. 이 결정적 장면이 관객에게 주는 충격과 깨달음은 심대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결정적 순간을 부인합니다. 근친으로부터 당한 성폭행 피해가 잊히거나 치유되기 어렵다 해도 그것이 그 사람 인생의 전부를 좌우한다는 관점을 거부합니다. 본인에게도 물론 충격이겠지만 타인들에 의해 해석되고 평가되는 사건은 자칫 과도한 의미 부여 끝에 포르노그래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삶 전체가 아닌 국부적 요소가 전면화될 때 당사자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타자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 영화와 주인공 주인은 바로 이것을 거부합니다.

주인을 자신의 삶과 세계 속에서 주체로 서게 하기 위해 영화가 취하는 방식은 촘촘한 서사의 구축입니다. 학교와 집과 체육관, 봉사 모임 등의 장소에서 주인의 일상은 매우 꼼꼼하고 세밀합니다. 엄마인 태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사건과 별스럽지 않은 말들이 실은 삶의 연속성을 구체화합니다. 삶에서 의미와 상징이 두드러지는 점도 분명하지만 그것 역시 오래도록 지속되는 전체의 일부일 뿐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성폭력 피해로 인생 전부가 망가진다는 반 친구 수호의 서명 운동 문구에 주인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의 기억은 주인의 삶에 때때로 균열을 일으킵니다. 이제껏 자기 자신과 가족들, 봉사 모임 사람들 등 소수의 관계 속에서만 알고 지냈던 상처의 기억이 더 넓은 사회에 노출되면서 주인은 폭발합니다. 하지만 세밀하고 촘촘하게 구축된 서사는 균열의 순간 표출되는 감정의 과잉을 충격적으로 만듦과 아울러 다시 보통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영화 속 인물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합니다.

더불어 영화는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님을 보여줍니다. 친구들, 선생님, 엄마, 체육관 관장, 봉사 모임 사람들 그리고 동생이 주인의 마음과 삶을 지탱하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주인의 당당하고 용기 있는 주체 되기의 선택에 여러 친구들이 쪽지로 호응합니다. 이 영화 속 울림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곳곳의 관객들에게 퍼져 가고 있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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