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상처의 기억과 주체적 서사의 구축 '세계의 주인'

  • 오피니언
  • 김선생의 시네레터

[김선생의 시네레터] 상처의 기억과 주체적 서사의 구축 '세계의 주인'

  • 승인 2025-11-27 17:07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KakaoTalk_20251126_163002662
영화 '세계의 주인' 포스터.
'결정적 장면' 혹은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사진가가 남긴 것입니다. 인위적으로 꾸며낸 사진이 아니라 연속된 삶이나 사건의 현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한 장면을 포착해 낸다는 뜻입니다. 이 결정적 장면이 관객에게 주는 충격과 깨달음은 심대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결정적 순간을 부인합니다. 근친으로부터 당한 성폭행 피해가 잊히거나 치유되기 어렵다 해도 그것이 그 사람 인생의 전부를 좌우한다는 관점을 거부합니다. 본인에게도 물론 충격이겠지만 타인들에 의해 해석되고 평가되는 사건은 자칫 과도한 의미 부여 끝에 포르노그래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삶 전체가 아닌 국부적 요소가 전면화될 때 당사자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타자로 존재하게 됩니다. 이 영화와 주인공 주인은 바로 이것을 거부합니다.



주인을 자신의 삶과 세계 속에서 주체로 서게 하기 위해 영화가 취하는 방식은 촘촘한 서사의 구축입니다. 학교와 집과 체육관, 봉사 모임 등의 장소에서 주인의 일상은 매우 꼼꼼하고 세밀합니다. 엄마인 태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할 것 없는 사건과 별스럽지 않은 말들이 실은 삶의 연속성을 구체화합니다. 삶에서 의미와 상징이 두드러지는 점도 분명하지만 그것 역시 오래도록 지속되는 전체의 일부일 뿐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성폭력 피해로 인생 전부가 망가진다는 반 친구 수호의 서명 운동 문구에 주인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폭력 피해의 기억은 주인의 삶에 때때로 균열을 일으킵니다. 이제껏 자기 자신과 가족들, 봉사 모임 사람들 등 소수의 관계 속에서만 알고 지냈던 상처의 기억이 더 넓은 사회에 노출되면서 주인은 폭발합니다. 하지만 세밀하고 촘촘하게 구축된 서사는 균열의 순간 표출되는 감정의 과잉을 충격적으로 만듦과 아울러 다시 보통의 시간으로 돌아오는 영화 속 인물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게 합니다.



더불어 영화는 세상에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님을 보여줍니다. 친구들, 선생님, 엄마, 체육관 관장, 봉사 모임 사람들 그리고 동생이 주인의 마음과 삶을 지탱하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나아가 주인의 당당하고 용기 있는 주체 되기의 선택에 여러 친구들이 쪽지로 호응합니다. 이 영화 속 울림은 이제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곳곳의 관객들에게 퍼져 가고 있습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의정부시, 시민 김지민 씨 저소득층에 성금 100만 원 전달
  2. 김해시, 2026년 노인일자리 7275명 확대 모집
  3. "철도 폐선은 곧 지역소멸, 대전서도 관심을" 일본 와카사철도 임원 찾아
  4. 전기차단·절연 없이 서두른 작업에 국정자원 화재…원장 등 10명 입건
  5. 30일 불꽃쇼 엑스포로 차량 전면통제
  1. <인사>대전시
  2. 대전을지대병원, 바른성장지원사업 연말 보고회 개최
  3. 충남대-대전시 등 10개 기관, ‘반려동물 산업 인재 양성 업무협약’
  4. 김태흠 충남지사, 천안아산 돔구장 건립 필요성·추진 의지 거듭 강조
  5. 대전시 제2기 지방시대위원회 출범

헤드라인 뉴스


`K-스틸법` 국회 본회의 통과… 대한민국 철강산업 재도약 발판

'K-스틸법' 국회 본회의 통과… 대한민국 철강산업 재도약 발판

침체를 겪는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이른바, ‘K-스틸법’이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국가 경제의 탄탄한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충청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여러 민생법안들도 국회 문턱을 넘었으며, 여야 갈등의 정점인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 체포동의안도 국회 가결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장에서 여야 합의로 상정된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K-스틸법)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 결과, 재석 의원 255명 중 찬성 245명, 반대 5명, 기권 5명으로 가결했다고 밝혔다. K-스틸..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환경·휴양 인프라 사업은 단순히 시설 하나가 늘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시민이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 전체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조성이 완료된 곳은 이미 동선과 생활 패턴을 바꿔놓고 있고, 앞으로 조성이 진행될 곳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단계에 있다. 도시 전체가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갑천호수공원 개장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사례다. 기존에는 갑천을 따라 걷는 단순한 산책이 대부분이었다면, 공원 개장 이후에는 시민들이 한 번쯤 들어가 보고 머무..

‘줄어드는 적십자회비’… 시도지사협의회 모금 동참 호소
‘줄어드는 적십자회비’… 시도지사협의회 모금 동참 호소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나누기 위한 적십자회비가 매년 감소하자,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회장 유정복 인천시장)가 27일 2026년 대국민 모금 동참 공동담화문을 발표했다. 국내외 재난 구호와 취약계층 지원, 긴급 지원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 대한 인도주의적 활동에 사용하는 적십자회비는 최근 2022년 427억원에서 2023년 418억원, 2024년 406억원으로 줄었다. 올해도 현재까지 406억원 모금에 그쳤다. 협의회는 공동담화문을 통해 “최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적십자회비 모금 참여가 감소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 대전시의회 방문한 호치민시 인민회의 대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