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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선요셉장학회 순례자들과 롤롬보이 본당의 천주교 수원교구 성 안드레아 수녀들 |
‘고아들을 위한 기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어려움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외롭고 가련한 고아들을/불쌍히 여기시어,/그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주님을 믿으며/꿋꿋하게 살아가도록 해 주소서./또한 우리 모두/비록 작은 것이라도/서로 나눌 줄 아는/넉넉한 마음을 지니게 해 주시고/외로움으로/사랑을 목말라하는 고아들을/위로와 사랑으로 감싸주게 해 주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고아, 소년소녀 가장, 조손가정 자녀 중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에게 21년째 장학금을 지급해온 오기선 요셉장학회(회장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가 2월23일부터 28일까지 필리핀 세부와 마닐라, 김대건 신부의 성지 롤롬보이와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가 고아들을 돌보고 있는 마닐라 사랑의 집을 방문해 물품과 후원금을 전달하고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 성지순례에는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를 단장으로 이도재 바오로, 문병주 스테파노, 윤정수 안나, 오수영 세실리아, 박종태 빈첸시오, 장덕분 아녜스, 양은순 모니카, 정락정 크리스티나, 정락원 소화데레사, 현홍자 카타리나, 윤종태 라우렌시아, 유정희 마리아, 차억순 엘리사벳, 박영희 헬레나, 윤각의 세례자요한, 최정선 루시아, 박숙분 율리아, 박숙희 카타리나, 차옥순 소피아, 이순목 비르짓다, 전선옥 마르타, 아이엘디트래벌 (주) 송정순 오틸리아 사장이 참석했다. 5박6일간의 성지순례 과정을 지면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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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 집전하는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 |
<필리핀의 가톨릭 역사>
필리핀은 인구 약 1억 2000만 명 가운데 80%가 가톨릭 신자이자 동양 최대의 가톨릭 국가이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배 영향을 크게 받은 나라이고, 7000 여 개의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인종도 에스파냐, 중국, 미국 혼혈계와 토착민으로 이루어져 있다. 필리핀의 가톨릭은 1565년 스페인이 세부섬을 정복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필리핀이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톨릭 신앙이 필리핀의 고유문화와 어우러지면서 필리핀만의 특징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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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순례자들 |
▲세부[Cebu]
필리핀 중남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 세부는 1512년 포르투갈의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처음으로 도착해 발견한 곳이다. 마젤란이 이 섬에 상륙하여 통치자와 족장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이후 마젤란은 세부섬 가까이 있는 막탄섬에서 살해되었고, 세부시티에는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유물들이 있다. 북쪽으로는 비사얀해, 서쪽으로는 타논 해협, 남동쪽으로는 보홀 해협, 동쪽으로는 카모테스 해에 면해 있다 보니 비사얀 세부의 중심지로 음악, 의상, 느긋한 생활방식 등에 스페인의 전통이 깊이 남아 있다. 연속되는 낮은 화산성 구릉들을 사이에 두고 양분되며 상업적 사탕수수 재배지인 북단의 보고 평원을 제외하면 평지가 거의 없다. 항만시설이 거의 없고 주거지는 농경에 바탕을 둔 수많은 소규모 촌락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제조업은 주로 식품가공에 제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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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니뇨 대성당 앞에서 순례자들 |
<랑곱동굴성당(Langob Shrine of Our Lady of Guadalupe)>
필리핀 세부 막탄 섬의 카달루페 카루나산 중턱 성모마리아 대성당에 위치한 성모발현지이자 순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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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곱동굴에서 미사를 드린 순례자들 |
마젤란이 1521년 선교 시 가지고 온 성모상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동굴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사람들의 추측으로 마젤란이 처음 선교하기 시작하다 막탄섬의 추장 라푸라푸에 의해 처형된 다음 가톨릭 박해가 시작되면서 신자들이 산으로 피신하여 동굴 속에서 미사를 지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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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굽동굴의 성모상 |
마젤란이 세부에 상륙할 때 이 지역 사람에게 아기 예수 상(산토니뇨)을 선물로 주어 산토니뇨 대성당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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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니뇨 대성당에서 미사 드린후 순례자들 |
<과달루페 성모성당(Basilica of Our Lady of Guadalupe)>
세부 과달루페에 있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과달루페 대교구 성지로, 이곳에는 세부시와 주의 수호성인인 과달루페 성모의 기적의 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세부 사람들의 과달루페 성모 신앙은 1880년부터이다. 성모상은 콜레라 전염병에 도움을 주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폭격과 화재에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고, 일본군 습격 때마다 산 언덕을 뛰어다니는 여인의 환영이 과달루페 성모라고 믿으며 신앙심은 더욱 깊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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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달루페 성모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후 순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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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젤란 십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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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젤란 십자가와 천장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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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젤란 십자가와 천장화 |
<마젤란 십자가(Magellan’s Cross)>
필리핀 최초의 세례가 이루어진 장소이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 일주를 하던 중, 1521년 필리핀 세부에 도착해 제작을 지시한 3m 높이의 십자가이다. 필리핀 최초로 세례를 받은 세부의 추장 ‘라자 후마본’과 그 일족의 세례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배당(팔각정) 천장에는 당시 왕족과 세부 시민의 세례 의식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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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가 미사집전하고 있다. |
<산토니뇨 대성당(Basilica Minore del Sto. Nino de Cebu)>
'아기 예수'를 의미하는 산토니뇨(Sto. Nino)상이 수호신으로 보관되어 있는 성당으로 1500년대 스페인 총독인 레가스피에 의해 건축된 필리핀 최초의 성당이다. 194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현지인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성당이다. 매년 1월 셋째 주 일요일에 개최되는 세부 최대의 축제인 시눌룩 축제의 장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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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니뇨 대성당 앞에서 순례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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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니뇨 대성당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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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토니뇨 대성당 전경 |
시눌룩 축제(Sinulog Festival)는 마젤란이 필리핀에 가져온 가장 큰 유산 중 하나인 산토니뇨(아기예수상)를 기념하는 필리핀 최대의 종교·문화 축제이다. ‘시눌룩’은 세부어로 ‘강물처럼 흐른다’는 뜻이다. 축제의 상징인 독특한 춤 동작에서 유래했는데 두 걸음 전진, 한 걸음 후퇴의 리듬감 있는 스텝은 강물의 물결을 형상화한 것이다. 축제 내내 울려 퍼지는 ‘핏 세뇨르’는 ‘아기 예수님, 저희를 돌보소서’라는 의미의 기도를 담고 있다. 1521년 마젤란이 추장 부인에게 세례 선물로 준 아기 예수상이 그 시초이다. 이후 스페인 군대가 세부를 다시 점령했을 때 불타버린 마을에서 이 아기 예수상만은 기적적으로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현지인들은 이를 신성하게 여겨 수호신으로 모시기 시작했고, 오늘날의 거대한 축제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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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들은 마닐라 사랑의집에 치약. 치솔 등 생필품을 후원하고 격려금도 전달했다. |
<산페드로 요새(Fort San Pedro)>
세부 막탄 섬 항구 옆에 위치한 산 페드로 요새는 마젤란이 막탄의 지도자인 라푸라푸에게 피살당하고, 그의 부하들이 스페인으로 돌아간 후 44년 뒤 원정군이 돌아와서 이슬람 등 외부 해적 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해 1738년 경 (스페인 통치 시절)에 건축되었다. 이후 미국 식민지 시절에는 미군의 군 막사로 이용되었으며, 일본 식민지 시절에는 필리핀 포로군 수용소로도 이용되었다. 산 페드로 요새 내부에는 세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작은 박물관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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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어거스틴 대성당에서 순례자들 |
<마젤란 기념비(Magellan Marker)>
세부 라푸라푸에 위치한 마젤란 성지(Magellan Shrine)는 유럽에서 처음 필리핀에 온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을 기념하는 곳으로, 막탄 전투에서 사망한 장소가 표시되어 있다.
근처에는 마젤란을 이긴 원주민 족장 라푸라푸의 동상도 있는데 검과 방패를 든 긴 머리의 근육질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그의 군대는 막탄 전투에서 스페인 침입자들을 격파했고, 라푸라푸는 식민 지배에 저항한 첫 번째 필리핀 원주민으로 여겨지고 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마젤란은 가톨릭 국가에 기독교를 가져온 것에 존경을 표하기도 하지만 식민지 개척자이자 국가적 영웅을 격파한 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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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
▲마닐라[Manila]
루손섬 남서부에 있는 필리핀의 수도이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만으로 일컬어지는 마닐라만(灣)에 임한 항구도시로 시가지는 파시그 강을 끼고 남북으로 펼쳐진다. 북쪽에는 비옥한 중부 루손 평야를, 남쪽에 남부 루손의 화산성 저지를 끼고 있다. 1571년 에스파냐 총독 레가스피가 점령한 이후 에스파냐의 식민지 지배의 근거지가 되었고, 그 후 19세기 중엽까지 마닐라의 '동양의 진주'로서 에스파냐의 대 아시아무역 거점이 되고 극동에서의 가톨릭 권력의 중추가 되기도 하였다.
당초에는 파사그강 하구 남안(南岸)에 건설된 성곽도시 인트라무로스를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 필리핀인·중국인이 취락을 형성했던 비교적 작은 도시로, 성벽 안에 총독부, 가톨릭 각파, 교단본부, 교회, 상관(商館) 등이 있고, 에스파냐인은 대개 그 안에서 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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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닐라 대성당 |
1834년 마닐라 항이 개항된 뒤 점차 국제무역이 성해지고, 시가지도 확정되어 19세기 말에는 인구 20만이 넘는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1898년 미국·에스파냐 전쟁의 결과로 미국령이 된 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거점으로서 항만 시설의 근대화, 도시계획의 실시, 전기, 가스, 수도 등의 시설이 이루어져 식민지 특유의 단일(單一) 거대도시로 발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일본군에 점령되어 시가지의 80%가 파괴되기도 하였으나 복구되었다. 필리핀이 독립한 뒤 1948년 북쪽에 인접한 케손시티로 수도가 옮겨졌으나 1975년 11월 마닐라·케손 등 수도권 4개의 시와 인접지역을 통합한 대(大) 마닐라시(Metropolitan Malina)가 발족하여 다시 수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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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닐라 대성당에서 미사를 마친후 순례자들 |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은 스페인이 필리핀 제도를 점령했을 때 발전했다. 인트라무로스는 300년 이상 필리핀에서 스페인 지배의 중심지였다. 성벽 안에 있는 이 도시는 요새 시설로 둘러싸여 있는 주택과 교회, 학교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시의 이름은 '성벽 안쪽'을 의미하는 라틴어 '인트라(intra)무로스(muros)'에서 유래했다.
인트라무로스는 파시그 강과 마닐라 만에 있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스페인 통치를 받기 전에 이 도시는 토착민 우두머리들과 말레이인 무슬림들의 권력의 중심지였다. 단지 내에는 총독의 궁전, 마닐라 대성당, 여러 개의 종교 학교와 대학 등 중요한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인트라무로스는 일본 점령군의 기지로 사용되었다.
마닐라 전투(1945) 때 인트라무로스는 거의 모든 부분이 파괴되었다. 1980년대에 인트라무로스 지역은 복원되었고 마닐라의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현대화의 영향을 입지 않은 모습으로 남아있다. 마닐라 대부분 지역과는 달리 인트라무로스는 아직 스페인 점령 시대에 설계된 면모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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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어거스틴 대성당앞에서 순례자들 |
<마닐라 대성당(Manila Cathedral)>
필리핀 마닐라의 인트라무노스(성벽도시) 내 로마광장에 있는 대주교좌성당이다. 가톨릭 포교의 중심지로서 에스파냐 식민지배시대인 1581년에 처음 건축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처음에는 니파(nipa) 야자나무와 대나무로 지었는데 태풍과 화재로 부서져, 1592년 석재로 다시 지었으나 1600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세 번째 건물은 1614년에 완공한 것으로 3개의 본당과 7개의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645년 마닐라를 휩쓴 지진으로 다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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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를 집전하는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 |
이후에도 지진과 전쟁 등으로 파괴된 것을 연이어 재건하였고 지금의 건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공격으로 완전히 부서진 것을 1945년에 다시 짓기 시작하여 1958년에 완성한 것이다. 필리핀 건축가 페르난도 오캄포(Fernando Ocampo)가 로마네스크-비잔틴 양식으로 설계하였고, 바티칸의 원조를 받아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다. 특히 필리핀 종교적 상징주의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대성당의 역사를 나타내고 있는 청동문이 유명하다.
<성 어거스틴 대성당(Manila Saint Augustine Cathedral)>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스페인 풍으로 설계한 최초의 유럽식 석조건물이다. 마닐라시 인트라무로스 내에 위치한다. 스페인의 점령 시대인 1587년에 착공하여 1607년에 완성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인트라무로스(Intramuros)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이 곳만은 남아있었다. 또 건축된 이래로 여러 차례의 대진에도 파괴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기적의 교회'라고 불린다. 필리핀에 있는 세 개의 다른 교회와 함께 '필리핀의 바로크식 성당'으로 1993년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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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닐라 사랑의집에서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와 김정수 신부와 순례자들 |
<성 어거스틴 박물관(Manila Saint Augustine Museum)>
어거스틴 성당 안쪽 마당에는 1973년에 세워진 성 어거스틴 박물관이 있다. 본래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서 성당의 역사와 필리핀 가톨릭의 역사를 소개하는 자료와 소장품들을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내부에는 과거 성당을 장식했던 프레스코화, 유화, 성가대석, 예배복 등 성당과 관련된 17~18세기의 다양하고 진귀한 골동품이 전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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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가 성수를 들고 있다. |
<끼아포 성당(Qiuapo Church)>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성당으로 기적의 블랙 나자렛(Black Nazarene)이 모셔져 있는 성당이다. 블랙 나자렛은 1606년 멕시코의 한 조각가가 만든 예수상을 필리핀으로 운반하던 도중 배에 화재가 나 예수의 얼굴이 검게 변한 데서 그 명칭이 유래했다. 여기서 나자렛은 예수 그리스도가 자란 동네인 나자렛에서 비롯된 말로 나자렛 출신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이 조각상은 마닐라에 들어온 후에도 수 차례의 지진과 화재, 제2차 세계대전의 폭격 피해를 입었지만 훼손되지 않고 보전되어 기적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필리핀 사람들은 이 성상에 손을 대면 병이 치유되고 기적을 경험한다고 믿고 있다. 특히 매년 1월 9일에 블랙 나자렛을 선두로 시내 순례를 하는 축제를 하며 참가 인원이 필리핀 축제 중 가장 많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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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의 예수님상. |
마닐라에 도착한 뒤 지금의 리잘공원이 된 바굼바얀(Bagumbayan) 구역의 교회에 보관되었는데 당시 병든 사람이 조각상을 만지거나 그 앞에서 미사를 드리면 병이 나았다는 기적이 전해진다. 1650년 교황 인노첸시오 10세(Pope InnocentiusⅩ)는 블랙 나자렛을 통해 필리핀 사람들의 신앙심이 커지는 것을 인정하여 블랙 나자렛 성상 숭배를 공식 승인하였고, 이후 행진이 시작되었다. 1787년 마닐라 대주교의 지시에 따라 지금의 끼아포 성당으로 옮겨졌고 이후 리잘공원에서부터 끼아포 성당까지 행진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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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
끼아포 성당은 과거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33년에 재건하여 마닐라를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가 되었다. 바로크 양식에 크림색으로 건축되어 잔잔하면서 깔끔한 느낌을 주지만 차이나타운과 인접해 있는 관계로 항상 사람들로 넘쳐나며 북적북적한 거리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말라떼 성당(Malate Church)>
필리핀 마닐라 대교구에 속한 본당으로 430년 정도 되었다. 마닐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이며, 특히 유아세례와 혼배가 많이 이루어지는 본당이다. 말라떼 성당(Our Lady of Remedies Catholic Church)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리를 따르는 수도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1588년부터 1624년까지 건설된 성당이다. 이후 지진과 태풍, 전쟁 등을 거치며 여러 번 파괴되었다가 1680년 석조 건물로 재건축을 거치고, 1762년 구조를 바꾸어 영국군의 기지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의 필리핀 점령기에는 벽을 제외한 모든 구조물이 불타기도 하였다. 지금의 모습은 1950년에 재건축을 하면서 갖추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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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달루페 성모성당 앞에서 필자 |
말라떼 성당은 치유, 구제(救濟)의 성모를 모신다. 16세기 말에 지어진 말라떼 성당은 17세기 초 스페인에서 구제의 성모상을 모시고 와서 헌정되어 지금까지 모셔져 있다.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문구가 새겨진 피에타 조각상이 세워져 있으며 내부에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벽면과 아치형 천장 아래로 꽃들로 꾸며진 황금빛 제단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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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롬보이 본당에서 미사 드린후 순례자들 |
부활절에는 말라떼 성당에 헌정되어 있는 구제의 성모상을 모시고 거리를 순례하기도 한다.
김정수 신부는 아침미사 강론에서 “순교자들 은혜에 감사드리고,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린다”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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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가 인사말하고 있다. |
<리잘공원(Rizal Park)>
필리핀 마닐라 시내의 인트라무스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리잘공원은 독립운동가이자 의사, 언론인, 교육자였던 호세 리잘(Jose Rizal, 1861~1896)이 처형되었던 장소이다. 리잘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필리핀의 독립을 주장하며 '필리핀 민족 동맹'을 결성하였다. 시민 불복종 운동, 자치운동을 앞세워 평화적 혁명 운동을 진행하였으나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내란 음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공개 총살형을 당했다. 그의 죽음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독립 의지를 불태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리잘은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으며, 그가 죽은 12월 30일은 필리핀의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리잘의 모습은 필리핀 1페소 동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원 한쪽에 리잘의 처형 장면을 재현한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그의 유골이 안치된 기념비 앞에 24시간 4교대로 정부군 의장대 경비가 서 있다.
그가 처형되기 전에 남긴 '나의 마지막 작별(Mi Ultimo Adios)'이라는 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안녕히, 사랑하는 조국, 태양의 총애를 받는 땅이여, 동방 해상의 진주, 우리의 잃어버린 에덴동산이여! 나는 기쁘게 이 슬프고 우울한 삶을 그대에게 바치노니, 만일 그것이 더 빛나고, 더 신선하고, 더 꽃다웠을지라도, 나는 오직 그대의 안녕을 위해 그것을 바쳤으리라’
내부에 중국 정원을 비롯한 각종 테마 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필리핀 한국 우정의 탑도 있다. 공원 한쪽에 자리한 이 탑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필리핀 지역에 강제 동원되어 희생한 한국인들을 추모하고 만들어졌다. 한국과 필리핀 수교 60주년을 기념하고자 2010년에 세워졌으며 '추도와 평화 기원의 탑'으로 이름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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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가 축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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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페드로 요새 |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
필리핀 인트라무로스(Intramuros) 북서쪽에 위치한다. 에스파냐 초대 필리핀 총독인 레스가스(Miguel Lopez de Legazpi)를 위해 지어진 방어 요새이다. 에스파냐 군대의 본부였고 호세 리잘(Jose Rizal)이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되었던 곳이다. 파시그강(Pasig River)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전략적 요충지이며, 일본군 점령기 동안 수 많은 필리핀인들이 이 곳에 수감되었다가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었던 많은 부분을 1950년대에 복구해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특히 요새 입구의 성벽을 정교하게 복원하였다. 스페인 시대에는 필리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고, 오직 부역자들만이 낮 동안 성 안에서 노동을 강요당하다 저녁에 성문 밖으로 쫓겨나곤 하였다.
▲롤롬보이[Lolomboy]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40㎞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성 김대건 신부와 가경자(복자 전 단계, 시복 후계자) 최양업(토마스) 신부가 신학생 시절 마카오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마카오 신학교에서 필리핀으로 피신해 약 7개월간 머물렀던 곳이다. 신학생 최양업과 김대건은 1839년 4월 19일부터 11월 26일까지 필리핀에서 생활했으며, 그들은 스승인 칼르리, 데플레슈, 리브와 신부와 코친차이나(베트남 남부지역) 출신 신학생 3명과 함께 그해 4월 7일 마카오를 출항해 13일간의 항해 끝에 필리핀 마닐라에 도착했다. 최양업과 김대건 필리핀살이는 마닐라와 롤롬보이 시절로 구분할 수 있다.
5월 3일 참사회는 최양업, 김대건 일행에게 롤롬보이 수도원 농장에서 생활을 허락하면서 14일간의 마닐라 생활을 뒤로 하고 롤롬보이 수도원 농장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였다. 최양업과 김대건은 롤롬보이에서 원하는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데플레슈 신부는 매일 최양업과 김대건을 가르쳤다. 리브와 신부는 서늘한 밤에 조선 신학생들에게 교리 수업을 했고 수도원 농장 건물 안에 소성당이 있어서 미사를 봉헌할 수도 있었다.
최양업은 건강했지만 김대건은 마카오에서부터 앓아온 가슴 통증과 위통, 두통, 요통으로 고생했고, 약을 먹어도 좀처럼 통증이 가시지 않았다. 얼마나 아팠으면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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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피나 원장 수녀가 김대건 신부 성지 롤롬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최양업과 김대건은 8월 초 1839년 3월 10일에 북경에서 써서 보내 온 편지 한 통을 받게 된다. 편지에는 가족들의 편지와 북경에서 최방제의 사망소식, 조선에서의 작은 박해 등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받은 지 한 달 후 조선교회는 기해박해(己亥迫害)로 풍비박산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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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건 신부 성지안에 있는 최양업 신부 동상. |
3명의 조선 선교사는 물론 최양업과 김대건의 아버지인 최경환(프란치스코)과 김제준(이냐시오)이 순교했고,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마리아) 역시 1840년 1월에 순교하였다. 이러한 참사가 일어난지도 모른 채 최양업과 김대건 일행은 "마카오로 돌아오라"는 마카오 극동대표부 르그레즈와 신부의 편지를 받고 11월에 마닐라에서 라파엘라호를 타고, 11월 하순 마카오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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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롬보이에서 천주교 수원교구 성 안드레아 수녀회 수녀들과 김정수 신부와 필자 |
<김정수 신부에게 듣는 롤롬보이 성지 이야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중국 마카오에서 신학 공부를 하다가 중국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필리핀 마닐라로 와서 성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원에서 신학 공부를 계속하던 곳이다. 그 당시 농장이었던 이 자리를 발굴하기 위해 저의 대부 오기선 신부님은 오랫동안, 17차례나 이곳에 와서 조사하고 마을 사람들로부터 증언도 듣고 철저히 조사하여 이 자리를 성지로 조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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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선 요셉 신부 동상 앞에서 대부 신부 오기선 요셉 신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 |
이 자리에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을 세우려고 땅의 지주인 멘도사 여사를 설득시키는 데도 몇 년이 걸렸는데 결국 동상을 세워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내어 1986년 5월 22일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필리핀, 이 지역 말롤로스 교구장인 알마리오 주교의 주례로 지역주민들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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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롱보이 김대건 신부 성지 안에 있는 김대건 신부 동상 |
그 당시 오기선 신부님은 말롤로스 교구장 알마리오 주교에게 성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을 잘 관리해 달라고 하면서 현금 5000 불을 기부했다. 또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성당'을 한국의 새남터성당과 자매결연도 맺어주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을 세우도록 허락한 땅 주인인 멘도사 여사가 그 당시 94세였는데 16년이 흐른 후 멘도사 여사가 죽자 그의 아들이 이 땅을 팔겠다며 동상을 치우라고 하자 동상을 없애면 어렵게 조성해 놓은 성지가 없어지게 되므로, 2002년 수원교구 성 안드레아 수녀회가 이 곳을 거액을 주고 사들여 개발하기 시작했다. 성지를 개발할 때 원장 수녀님(김화숙 수녀)의 언니 되는 김정숙 데레사 회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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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의 김대건 신부 초상화 |
김정숙 회장은 김영걸 감독(차억순 엘리사벳 오기선요셉장학회 서울회장 남편)의 요청(오기선 요셉 신부님의 흉상 건립 요청)을 받아들여 2004년 2월 10일 오기선 신부의 흉상을 건립하게 됐다. 김대건 신학생이 망고나무 아래 앉아 고향에서 온 편지를 읽으며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을 하며 눈물짓기도 했던 망고나무는 우리가 2004년 2월 10일, 오기선 신부님의 흉상을 건립하러 왔을 때만 해도 나무가 왕성했고, 망고나무 아래에서 사진도 찍고 했는데 그 나무가 죽었다고 하여 매우 섭섭했다. 그래도 수녀님들로부터 그 망고나무로 독서대도 만들고 십자가도 만들고 여러 가지 성물을 만들었다며, 성당 안에 있는 독서대와 십자가, 성물 등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망고나무가 없어져 매우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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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전 안드레아 사제 성당에서 미사 후 순례자들 |
<김정수 신부에게 듣는 김대건 신부 이야기>
한국 최초의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는 한국 천주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다. 202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될 만큼 그 업적과 정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1. 생애와 사제 서품
김대건 신부는 충남 당진의 솔뫼성지에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증조부부터 아버지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순교자의 가문'이었다.
* 마카오 유학: 15세의 나이에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프랑스 신부들의 인도로 마카오로 건너가 서구 학문과 신학을 공부했다.
* 최초의 신부: 1845년 상하이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신품 성사를 받아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가 되었다.
* 귀국과 활동: 사제가 된 후 라파엘호를 타고 서해를 건너 귀국하여, 비밀리에 포교 활동을 펼치고 선교사들의 입국 통로를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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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가 요세피나 원장 수녀에게 금일봉을 전달하고 있다. |
2. 순교와 마지막 유언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들을 위한 해로를 취재하던 중 체포되었다. 당시 조선 조정은 그의 박학다식함과 외국어 실력에 감탄하여 회유하려 했으나, 그는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 새남터 순교: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25세의 젊은 나이에 군문효수형(군대에서 목을 베어 매달던 형벌)으로 순교했다.
* 마지막 편지: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부디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며 주님께서 우리를 가련히 여기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라는 절절한 당부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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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롬보이 본당 전경 |
3. 역사적 평가와 의의
김대건 신부는 단순한 종교인을 넘어, 근대적 사고를 지닌 지식인이기도 했다. 언어의 천재로서 라틴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에 능통하여 동서양 문화의 가교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 지명을 라틴어로 표기한 '조선전도'를 제작하여 서구 사회에 조선을 알렸고, 독도가 한국 땅임을 명기했다. 또 신분제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을 실천했다.
4. 유네스코 세계 기념 인물
2021년, 유네스코는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를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이는 그가 남긴 '인류애'와 '평등 정신', 그리고 교육과 학술에 기여한 공로가 특정 종교를 넘어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대건 신부와 관련된 유적지로 당진 솔뫼성지와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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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건 신부 동상 앞에서 순례자들 |
<롤롬보이 본당(Bulacan's Korean Temple(Shrine of Saint Andrew Kim Tae-gon)>
천주교 수원교구의 성 안드레아 수녀회에서 2002년 8월에 인수한 한국인 수녀님들이 운영하고 있는 성당이다. 이 성당은 실제로 김대건 신부님이 머무셨다는 성지로 요세피나 원장 수녀를 비롯한 한국인 수녀님과 필리핀 수녀님이 계신다. 롤롬보이 본당에는 수녀님들이 머무는 공간과 침묵 기도를 위한 장소, 봉헌소, 7층탑, 필리핀으로 성지순례 오시는 분들을 위한 피정의 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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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피나 원장수녀가 롤롬보이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본래 도미니코회의 농장부지가 20세기 들어 방치되면서 흉물스러운 지역으로 변해버렸는데 어느 순간부터 동네 개들이 농장 부지를 향해 낮이고 밤이고 짖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이 곳 인근에 위치한 지역 유지 멘도자(Mendoza) 가문의 여성 고용인이 집의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커서 확인 차 대문을 열었을 때 목이 잘린 하얀 도포를 입은 유령을 목격하고 졸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낮에도 목이 잘린 하얀 도포를 입은 유령이 부지에 출몰하면서 지역 주민들은 이사를 가고 폐허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러던 이 곳을 故 김수환 추기경과 김정수 신부의 대부인 故 오기선 요셉 신부님이 오랜 시간 추적 끝에 찾아내어 고국의 형제, 자매들의 도움을 받아 기념성지를 조성하게 되었다. 오기선 신부님이 축성을 드리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기념동상을 옮겨오면서 개들이 짖는 것을 멈추었다고 한다.
이후 오기선 신부님의 선교와 사목 활동으로 목 잘린 하얀 도포를 입은 유령이 사실은 순교한 한국의 성인이라는 믿음이 이 곳 롤롬보이 주민들에게도 받아들여지면서 괴담은 사라지고 이국적인 공원 느낌으로 탈바꿈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망향의 망고나무'도 볼 수 있다. 김대건 성인이 망고나무 아래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눈물을 흘리며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했다고 알려진 망고나무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 곳에서 5분 거리에 떨어진 곳에 김대건 신부를 주보로 모시고 있는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이 있다.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The Parish of Sto. Cristo and St. Andrew Kim Tae-gon New Church)
맥도날드 사거리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새로 지은 성당은 필리핀 신부님이 김대건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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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의 김대건 신부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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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 앞의 예수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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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 앞마당의 예수 동상 |
이 성당은 2017년에 새로 지어졌고, 지금도 공사 중이다. 내부에 들어가면 김대건 신부님이 필리핀에 올 때 이용했음직한 커다란 배 모형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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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
롤롬보이 본당에서는 미사를 매주 첫째 주 토요일 오전만 진행하고 있어 본당 수녀님들도 이 성당에서 미사를 보신다고 한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를 주보로 모시는 필리핀의 불라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교구 성지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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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 입구 |
교구 성지 승격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한국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20년 11월 29일부터 2021년 11월 27일까지 이어지는 희년을 선포하고 유네스코에서 기념행사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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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건 신부 성지 롤롬보이 본당 앞에서 필자 |
<마닐라 사랑의 집>
음성에 있는 꽃동네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필리핀 마닐라 타그기(Taguig)시티의 보육원인 '사랑의 집'은 1996년 봉헌되어 현재까지 30년 동안 155명의 아이들이 거쳐 갔다. 현재는 예수의 꽃동네형제회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가 올해로 16년째 26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다. 사랑의 집에 온 아이들은 부모가 없거나 오갈 데가 없어 거리에서 노숙과 구걸을 하며 끼니를 때우며 살았다. 힘든 어린 시절을 겪은 아이들은 안드레아 수사의 보살핌 속에 살아가고 있다.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는 21살 때 여느 대학생처럼 대학 생활을 즐기며 군 입대를 앞둔 무렵,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진단 받아 삶아 6개월 밖에 안 남았다는 시한부를 선고 받는다. 눈앞에 닥쳐온 죽음을 느끼며 옆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무섭고 두려웠던 그는 매일 신에게 기도했다.
"만약 한 번 더 삶이 주어진다면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통했던 것인지 기적처럼 두 번째 삶을 얻은 그는 '안드레아'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오늘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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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 |
안드레아 신부는 “음성 꽃동네 오웅진 신부님이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으셨을 때 상금으로 이 곳 사랑의 집을 지으셨다”며 “오웅진 신부님과 절친이신 김정수 신부님과 순례자들께서 이 곳 사랑의집에 오셔서 고아들을 위해 사랑의 물품을 기증해주시고 후원금을 주신 데 대해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주님의 은총에 감복하게 된다”고 말했다.
안드레아 신부는 “사랑의집은 올해 12월 설립 30주년을 맞게 된다”며 “부모 없는 아이들이 밖에서 마약과 폭력에 노출돼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이 곳 사랑의 집에 와서 보살핌을 받고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하는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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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가 안드레아 수사에게 성체를 건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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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바르나바 신부와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와 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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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와 심효보 안드레아 수사 |
▲팍상한 폭포[Pasangjan Falls]
필리핀 루손섬 남부 라구나주(州) 카빈티(Cavinti)의 카빈티강에 있는 폭포이다. 마그다피오 폭포(Magdapio Falls)라고도 한다. 소도시인 팍상한은 국유지에 위치하여 높이는 91m이다. 주도(州都)인 산타크루스에서 가까우며, 마닐라에서 남동쪽으로 100㎞ 떨어져 있다. 900m 아래쪽에 있는 탈라히브 폭포(Talahib Falls)에서 배를 타고 깊은 계곡을 지나 한 시간 정도 가면 나온다. 폭포 바로 뒤쪽에 있는 악마의 얼굴 모습을 한 악마동굴(Devil’s Cave)에 들어가면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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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팍상한 폭포에서 카누와 뗏목체험을 하고 있는 순례자들 |
팍상한 폭포가 마닐라에서 주요 관광지가 된 것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아시나요>의 촬영지로 소개되어 대중들의 눈도장을 찍고 나서다. 하지만 팍상한 폭포보다 더 흥미진진한 것은 강 하류에서 폭포까지 1시간 가량 카약을 타고 계곡을 역류해 가며 아름다운 야생 원시림을 감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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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가 강복하고 있다. |
▲오기선요셉장학회 필리핀 성지순례 지도신부 김정수 신부
오기선 요셉장학회 이름으로 필리핀 세부와 마닐라 성지와 김대건 신부 피난 성지 롤롬보이 성당 순례를 안전하게 마침에 감사드리고, 순례자들이 내주신 미사 예물로 김대건신부 성지 롤롬보이와 마닐라 꽃동네 사랑의집 아이들에게 치약, 칫솔, 세면비누 등을 전달하고 오기선요셉장학회 이름으로 후원금을 기탁하고 올 수 있었음에 감사드린다. 제 대부 신부님인 오기선 요셉 신부님이 성인품에 오르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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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 신부가 말라떼 성당 앞마당에서 미소 짓고 있다. |
순례 일정에 큰 도움을 주신 아이엘디 트레벌(주) 송정순 오틸리아 사장님과 사진으로 봉사해주신 이도재 바오로 형제님과 미사 전례를 맡아주신 윤안나 자매님을 비롯해 여러 봉사를 맡아주신 순례자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순례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함께 기도하고 협력하며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님과 한국순교 성인들께 영광을 올리고, 오기선 요셉 신부님의 크신 노력으로 성지가 된 롤롬보이 성지를 우리 오기선요셉장학회에서 2,3년에 한 번씩 방문해 잘 관리하고 보살펴 한국교회에 영광이 되길 희망하며 기도드릴 수 있음에 감사드린다.
오기선요셉장학회원들께서 이번 순례에 많은 도움을 주셔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외롭고 어려운 고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며, 공부하기를 원하는 고아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많은 은인들의 후원과 사랑을 부탁드린다.
필리핀 세부, 마닐라, 롤롬보이에서 한성일 편집위원(이사)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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