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105-서울 강남 부촌에 자리 잡은 '압구정 공주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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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105-서울 강남 부촌에 자리 잡은 '압구정 공주떡'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 승인 2026-04-20 16:47
  • 수정 2026-04-20 20:20
  • 신문게재 2026-04-21 8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대전 용문동에서 시작된 '공주떡'은 창업자 박옥분 여사가 고향 공주의 특산물을 활용해 개발한 영양떡으로, 낱개 포장 혁신과 철저한 품질 관리를 통해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후 서울 압구정으로 진출하여 흑임자인절미 등을 히트시키며 정·재계와 외교가에서도 사랑받는 고급 떡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현재는 사위와 외손자로 이어지는 3대 경영을 통해 전통의 맛을 계승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떡집으로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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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 위치한 대전 공주 떡집. (사진= 김영복 연구가)
대한민국 떡의 성지(聖地)라면 공주(公州)가 아닌가 생각된다.

인조대왕(仁祖大王)에 얽힌 인절미 이야기외에도 1937년 12월 23일 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공주읍(公州邑) 대화정(大和町 : 현 중학동)177번지에 김휘연(金輝淵 당시 70세) 옹이 떡전을 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역사적인 바탕을 중심으로 공주에는 '원조공주떡집, 부자떡집' 등 29곳의 많은 떡집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다양한 떡 맛을 보려면 공주에 오라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공주가 아닌 대전과 서울 강남의 핫한 압구정동에서'공주떡'이라는 상호로 이름을 날리는 떡집이 있다.

이번 맛 기행은 대전 용문동의 '대전 공주떡'과 서울 강남의 '압구정공주떡'을 찾아 가 보기로 한다.

대전의 공주떡집은 한국전쟁 후 보릿고개가 한창이던 시절 가난을 떨쳐 내야겠다는 절박한 몸부림에서 탄생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장원리(長院里) 출신인 대전 용문동 공주떡집 창업자 박옥분(84세)여사는 반포면 마암1리 배태희(87세) 씨에게 스물넷에 시집을 왔다. 이곳은 성주 배씨 집성촌으로 농지가 넉넉한 곳이 아니었다.

농사지을 농지는 변변치 않고 시부모님에 시동생 여섯이랑 살았는데 도저히 먹고살 길이 막막해 젊은 새댁이 장에 나가 옷감 장사를 했다. 그래서 장에 옷감 내다 판 돈을 남편한테 주고 "그 돈으로 서울이든, 대전이든, 부산이든 어디 큰 도시에 자리 잡고 부르라고"했다.이렇게 등 떠밀려 집을 나선 남편 배태희씨는 정확히 보름 만에 부인을 대전으로 불렀다.

벽돌공장에서 막일을 해 번 돈으로 용문동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고 나서다. 젊은 부부는 국수를 팔고 쌀을 배달해가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러던 중에 방앗간을 싸게 내놓는다는 사람이 있어 공주에서 시부모가 소 팔아 보내준 돈 10만 원에 그동안 모아두었던 3만 원을 보태 방앗간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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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주경현 배미숙 부부 주현우 아들. (사진= 김영복 연구가 촬영)
당시 용문동은 서대전 사거리에서 유성 방면으로 계룡육교를 건너 유등천을 가로지르는 수침교 건너 용문동 사거리 좌우로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유등천 제방 및 밭에는 딸기 농사와 고추. 깨 등 작물들을 재배하였고, 넓은 들녘에는 벼농사가 한창이었다.

당시 작은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종업원을 두기는 부담이 되어 부부가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어 2남 2녀의 장녀로 태여난 큰 딸 배미숙(60세)은 자라면서 부모님들이 힘들어 하면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초등학교 때부터 짐 자전거를 배워 학교 갔다 오면 부모님 대신 배달일을 하게 된다.

이 당시 대전에 별도의 떡집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대부분 고춧가루를 빻거나 기름을 짜는 방앗간에서 가래떡이나 시루떡 가루를 빻고 고물을 삶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점점 용문동의 주택이 늘어나고 대신 농지가 줄어들어 도시화 되면서 방앗간 일이 줄어들어 대안을 찾게 된 것이 떡집이었다.

막상 방앗간에서 떡집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니 무슨 떡을 해야할 지가 막막했다. 마침 동네에서 행사를 하면 증편을 해주던 이가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가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런던 어느날 그 집에 쌀을 대는 방앗간에 찾아가 몇 날 며칠 앉아 있었더니 안주인이 자기는 필요 없다면서 쪽지를 하나 내밀었다. 쪽지에는 증편을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당시는 증편을 만들 때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막걸리를 이용해 만들었다.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비슷하게 흉내를 낼 수 있게 될 때쯤 방앗간에서 떡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노력 끝에 기주떡, 바람떡, 찰떡 등 메뉴도 한 가지씩 늘었고, 공주에 있던 시부모까지 대전으로 모셨다. 그런대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박옥분 여사는 고민에 빠졌다.결혼식이 있으면 예식장에 가서 찰떡을 도마에 놓고 직접 썰어 주는데 자꾸 떡이 달라붙어서 먹기가 너무 불편했다. 고민 끝에 비닐을 잘라 떡을 한 개씩 포장했다. 사람들이 편하게 떡을 집어 먹는 것을 보고 아예 모든 떡을 낱개로 포장했다. 개별 포장은 커녕 떡이라면 으레 큰 시루를 먼저 떠올리던 1980년대였다.

박옥분 여사의 시도는 계속 됐다.

남들 다 하는 메뉴로는 살아남기 어렵겠다 싶어 영양떡을 개발해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가 1995년이다.

영양떡은 찰떡에 자신의 고향인 공주 정안밤, 대추, 잣 등 각종 견과류를 넣은 떡을 개발했다. 이 영양떡은 쑥, 호박, 흑미, 팥앙금, 깨 등 주재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식사 대용으로 인기가 많았다.

박옥분 여사는 이 떡 이름을'공주떡'이라 명명했다. 공주떡 하면 영양떡, 영양떡하면 공주떡으로 그야말로 브랜드화에 성공한 것이다. 쌀이든 다른 곡물이든 무조건 최상급을 요구하는 박옥분여사에게 쌀집 주인이 "나도 좀 살자"고 아무리 하소연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쑥은 여수에서, 밤은 공주 정안에서 가져오고 호박은 단호박만 쓴다.

소금은 직접 구매해 3년 동안 쓸 양을 저장해 놓고 쓴다. 박옥분여사는 또 재료를 외부에서 조달하지 않고 직접 챙긴다. 팥을 직접 볶고 쑥도 직접 찐다. 인공색소나 방부제를 넣는 것은 꿈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방부제를 넣으면 최소 하루는 더 팔 수 있지만 '내 손자에게 먹이는' 떡에 해로운 짓을 할 수 없다는 게 신념처럼 하는 말이다. 떡은 냉동실에서 1~2시간 전에 꺼내 놓으면 찌지 않아도 원래 맛 그대로 먹을 수 있다. 이른바 '박옥분표 특허상품'인 셈이다. 그야말로 팔 수 있는 유효기간이 아니라 맛이 가장 좋은 '상미(上味)기간'에만 떡을 팔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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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공주떡. (사진= 압구정 공주떡 홈페이지)
그날 남은 떡은 몇 군데 단체에 기증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준다. 공주가 고향인 박옥분 여사가 창업해 50년이 넘은 전통의 떡집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되고, 공주떡은 1997년, 98년 외환위기 때도 주문이 쇄도해 오히려 외환위기 때가 제일 호황이었다. 급기야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홍선기 당시 대전시장이 가져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공주떡이 올라간 뒤로 전국적인 명성이 자자해지게 된다.

이후 특허 받은 공주떡은 낱개 포장된 떡으로 냉동시켰다가도 먹기 한두 시간 전에만 내놓으면 금세 말랑말랑해져 아침 식사대용으로도 좋다. 먹기 좋은 모양과 고급스러운 자태 덕분에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대단하다. 영양떡은 견과류와 팥앙금·섬쑥단호박·자미고구마·흑임자·흑미·뽕잎 등 7가지 종류로 늘려 나갔다.

대전 명물에서 전국 최고 도전 서울 압구정동에 부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되고, 정·재계 유명인사가 단골인 것은 물론 주한 외교사절 사이에서는 "이 집 떡을 맛봐야 제대로 한국을 아는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전국은 물론 서울에서도 주문이 계속되고 "대전은 너무 멀다"는 서울 단골손님들의 투정(?)에 강남 어디든 목 좋은 곳에 점포를 내자고 결심하게 된다. 1999년 겨울, 서울 반포동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박옥분 여사는 택시를 잡더니 다짜고짜 "기사 양반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는 곳으로 가자"고 외쳤다. 잠시 당황한 택시 기사는 물정 몰라 뵈는'시골 손님'을 강남으로 안내했다.

박옥분 여사는 택시를 타고 압구정·대치동을 돌며 창문 틈으로 보이는 부동산 중개업소 전화번호를 모두 적었다.

압구정이라는 부촌에 2000년 3월 드디어 대전 공주떡집이라는 상호로 큰 사위 주경현 사장과 딸 배미숙 부부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613-5 현 '깐부치킨'자리에 개업을 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이곳은 '망하는 자리'로 불렸다고 한다. 어느 업종이든 문을 여는 대로 몇 년을 버티지 못한 덕에 공주떡집은 권리금도 없이 입주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안 박옥분 여사는 장사가 활성화 될 때까지 매월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를 지원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주경현 배미숙 부부는 한 번도 지원받지 않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심지어 종업원들의 월급날이 되어 월급 줄 돈이 모자라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하루도 밀리지 않고 지급했다. 이러다 보니 창업 이후부터 20여 년 이상 근무하는 직원들이 가족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고, 이러한 직원들의 신뢰는 대전공주떡집이 법인전환을 하며 압구정공주떡으로 상호변경을 하고 현재의 자리 건물을 매입할 때 발휘된다. 가진 돈과 대출을 받아도 건물 살 돈이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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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공주떡. (사진= 압구정 공주떡 홈페이지)
이때 직원들이 개인 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며 지급한 퇴직금을 모아 건물 매입비용을 빌려준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 가운데도 '압구정공주떡'은 대한민국 서울의 부촌이라는 지역 특색에 맞춰 선택과 집중을 통해 떡의 고급화를 추구해 나갔다. 1981년부터 2000년까지 장모 박옥분 여사의 떡을 제조하는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전수 받은 사위 주경현 사장은 제품의 다양화 보다 '흑임자인절미'와 공주떡이라 불리는 '영양떡'에 전심전력을 쏟은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맞아 떨어져 압구정 일대는 물론 서울 전역과 전국으로 '압구정공주떡'의 소문이 퍼져 나가고 주문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압구정 공주떡집은 지금도 100% 맞춤 주문으로 떡을 생산한다.

전화로 주문을 받고 나서야 떡을 만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무실에는 '직원용' 떡뿐이다.

예전에 디자이너 고 앙드레 김이 생전에 들렀다가 고를 떡이 없어 실망해 돌아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압구정공주떡'은 매장에는 전화를 받으며 판매를 하는 직원 12명 포함 전체 80여 명이 일하는 일터로 성장하기에 이르렀고, 성수동에 떡제조 공장과 매장을 신축하려 설계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주떡집 창업자 박옥분 여사에 이어 사위 주경현 딸 배미숙으로 이어지는 공주떡은 외손자 주현우(30세)로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주현우 대리는 필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매장에서는 전화 받는 직원들이 전국에서 걸려 오는 주문 전화를 받고 매장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바쁘게 드나든다. 창업자 박옥분 2대 주경현 배미숙 3대 주현우로 넘어 오는 '공주떡'의 새로운 시작을 기대해 본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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