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人] 민중의 아픔을 칼끝으로 새겼다 판화가 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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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人] 민중의 아픔을 칼끝으로 새겼다 판화가 오윤

소설가 오영수의 장남으로 김지하로부터 사상 영향받아 선이 굵고 역동적인 모습을 통해 저항의 시대정신 새겨

  • 승인 2016-07-05 09:56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대한人] 18.오윤

예술가의 삶은 한마디로 정의되지 못합니다. 희극과 비극이라는 결론도 무의미하죠. 불꽃처럼 화려하고 남은 잿더미만큼 슬픈 것이 예술가의 삶. 어떤 장르라도 작가는 자신의 온 몸을 비집고 탄생되는 작품을 세상에 내 놓습니다. 세상에 쉽게, 허투루 만들어지는 것은 없지만 예술처럼 육체와 정신적인 노동의 결과물은 흔치 않습니다.

잘 말린 나무에 조각칼로 그림을 새깁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칼날이 헛나가 그동안의 수고가 물거품이 되고 말죠. 집중과 또 집중. 판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각칼을 다루는 스킬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생생하게 표현 내느냐에 달렸습니다.

판화가 오윤. 짧은 자신의 삶에 민중의 정서를 새긴 작가. 18번째 대한인 주인공입니다.


▲판화가 오윤.
▲판화가 오윤.

아버지는 소설가 오영수, 사상적 아버지는 김지하

1946년 부산에서 태어난 판화가 오윤은 소설가 오영수의 장남입니다. 오영수는『갯마을』과『황혼』등 서민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 본 소설가인데요. 작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던 걸까요, 오윤은 민중의 삶을 자신의 색으로 목판화에 새겼습니다.

부산에서 살다 서울로 올라온 오윤은 서울대 조소과에서 공부했습니다. 재학시절 김윤수, 김지하, 오경환, 임세택과 ‘현실동인전’을 준비했지만 보안당국의 검열로 무산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이렇듯 사회 비판적인 리얼리즘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친누나인 오숙희의 후배인 김지하와 인연을 맺으면서 시작됐습니다. 사상과 예술적인 영향을 크게 받은 오윤은 현실동인전이 무산되고 10년 후 ‘현실과 발언’이라는 민중 단체 활동으로 그동안 마음에 품었던 리얼리즘 미술을 펼쳐 보입니다.

언제부터였을지 짐작되지는 못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확실히 한국적인 것, 민중의 정서에 대한 애정이 싹터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오윤은 1976년 우이동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서민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노동자들과 주민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삶을 스케치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고판화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며 서서히 판화에 빠져듭니다. 사실 오윤은 조소를 전공했고 졸업 이후 학생들에게 조소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1970~1980년 시대정신을 보여주기에 판화가 더욱 적합했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또 고유한 하나의 작품이 아닌 복제가 가능한 판화를 택한 것은 그만큼 소통의 문을 열어 논 오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칼노래와 아라리오. 출처=연합뉴스
▲칼노래와 아라리오. 출처=연합뉴스

1980년 민중의 삶의 정점에 서 있다

오윤의 작품에는 다양한 서민들이 등장합니다. 고통 받는 여공과 북춤을 추는 사람, 아버지와 아들, 피로가 쌓인 남성, 지옥도, 탈춤, 대지, 할머니 등 참으로 서민적이고 토착적인 주제들이죠.

오윤은 “예술가라면 모두가 무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얼마나 우리를 울리고 감동시켜주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방식을 무속인에게 비유한 것이죠. 후대에 그의 작품은 한을 풀지 못한 혼을 위로하는 살풀이라 표현합니다. 물론 4차원적으로 해석된 작품 탓에 그를 리얼리즘 작가로 분류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는 1980년대 우리 시대가 가진 아픔을 공유하고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청춘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춤은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부산 동래 학춤 명무고 외삼촌도 학춤 예능 보유자였습니다. 외가의 피를 이어받은 오윤은 작품에 춤을 추는 사람들을 많이도 새겼죠. 춤은 아픔을 이겨내는 승화의 몸짓입니다. 그 춤을 누가 추든 아픔은 날려 보내고 억눌린 자아는 비로소 꿈틀대죠.


▲도깨비. 출처=연합뉴스
▲도깨비. 출처=연합뉴스

북춤, 징, 칼의 노래, 강쟁이 다리쟁이는 모두 춤에 대한 목판화입니다. 자세히 보세요. 매우 힘차고 역동적인 동작들에서 우리는 사회와 계급적인 모순에 대항할 힘과 에너지를 얻습니다. 인물을 중앙에 배치하고 배경은 최소화해 정중동이라는 한국적인 미학을 형성했습니다. 배경을 최소화했지만 오윤은 판화라는 장르에 말풍선과 꼬리표를 달아 해학적인 면에서도 완성도를 높였죠. 그는 작품에 민화에 나올법한 도깨비와 호랑이를 등장시키기도 했습니다.

오윤의 판화는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판화가 이토록 역동적이고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을까요. 늘 어둡게만 생각했던 1980년 대한민국. 역설적이게도 그의 판화에서 대한민국은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록 힘들고 고단한 삶이만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버텨내고 있다, 살아내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죠.


▲매일경제 1996.6.15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쳐
▲매일경제 1996.6.15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쳐

짧은 삶, 위대한 유산은 남았다

저항의 끝에서 오윤이 갈망했던 세상은 대동이었습니다. 신분과 성별, 부귀, 인종의 격차를 모두 뛰어넘은 평등과 상생의 삶이었죠. 그의 작품 ‘춘무인추무의’는 오윤의 이상적인 세계를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모든 세대가 고루 모여 풍물놀이패와 함께 신명나게 춤을 춥니다. 휘몰아치는 동선 안에서 조화롭게 모두가 흥겹죠.

오윤은 간경화로 40세로 요절합니다. 1985년 인생 첫 개인전이자 마지막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평소 자신의 작품을 내세우거나 특별히 공개하지 않았던 오윤이었기 때문에 인생작품이 모두 모였던 전시회였죠. 첫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오윤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납니다.

비록 40년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가 보여준 시대의 흐름만큼은 놀랍도록 구체적이었습니다. 해학과 민족의 정신을 담은 작품이 많지만 그 속에서 끄집어져 나오는 슬픔이 우리의 진짜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1998.4.29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쳐
▲경향신문 1998.4.29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쳐

2016년 7월5일은 오윤 판화가의 추모 30주기입니다.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가나아트센터는 30주기를 맞아 대규모 전시회를 엽니다. 작품은 대부분 오윤 작가의 유가족들이 소장해왔던 것으로 무려 250점이 모였습니다. 목판 원본 이외에도 드로잉과 유화, 조각 등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암울했던 시대를 품고 칼끝으로 새긴 오윤의 삶에서 우리는 예술가의 깊은 직업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날카로운 칼이 나무판과 만나 마치 무당처럼 춤을 춥니다. 그 안에 희노애락을 품은 우리들이 있습니다. /이해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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