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신비스러운 현상'에 대한 단상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신비스러운 현상'에 대한 단상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19-06-24 10:06
  • 신문게재 2019-06-25 22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지난주 2박3일 동안 함께 공부하는 여성들 열 분과 함께 계룡산 주변을 여행했다. 여행은 '여신을 찾아서'의 저자인 김신명숙선생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계룡산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서악(西岳)으로 신성시되었다. 게다가 신라의 시조신인 서술성모의 별칭 중 하나가 '계룡'이므로, 같은 이름을 지닌 계룡산은 필시, 불교와 유교로 윤색되기 이전 오래된 여신민속신앙의 흔적을 지니고 있으리란 선생의 추측을 기반으로 기획된 여행이었다.

우리는 갑사 신흥암의 천진보탑, 공주 곰나루의 웅녀사당, 부여박물관, 부소산성의 궁녀사, 대전가오동의 고인돌, 옥천 안터의 거북모양 고인돌까지 둘러보았다.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신성시되었던 천진보탑의 영락없는 여근 모양에 탄복했고, 곰나루 백사장에 대자로 누워 유구한 금강과 하나 되었고, 사비백제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었다.



신비스러운 현상은 여행 마지막 날, 우리멤버 중 예술가 한 분의 몸에서 일어났다. 아침에 온천 목욕에서 돌아온 그 분의 몸에 아홉 개의 붉은 점이 생긴 것이다. 여덟 개의 동그란 점들이 원형을 이루고, 같은 크기의 점이 한가운데 찍힌 형상이었다. 벌레에 물린 자국도 아니고, 물집도 아니었다. 낙인이 찍힌 듯 일종의 화상 같은 흔적이었다. 누군가 재빨리 바로 전날 찍어두었던 사비백제 연꽃 기와 사진을 들이대고 몸의 흔적과 대조했다. 몸의 흔적은 영락없이 사진 속 연꽃모양과 똑같았다. 몸에 연꽃모양의 흔적이 나타난 것이다.

신기했다. 그런데 신기한 현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분은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신중하게 접근했다. 흔적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를 가졌던 나는 그것이 피부병이나 대상포진 같은 질병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눈에 보이는 몸만 보는 병원이라면 절대로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 처음부터 확신했다. 그런가 하면, 함께 여행한 멤버는 아니지만, 또 다른 분은 이 신기한 현상을 '신의 강림'으로 해석했다.



'신'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우리의 지식 범위 안에서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을 만날 때, 우리는 흔히 '신'이란 개념을 들여온다. 도저히 설명할 길 없는 복잡함, 오묘함, 우연, 신기함에 직면해서, 신은 그런 현상의 기원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한 방식이다. 알 수 없는 모종의 힘과 에너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가 '신'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면, 연꽃문양의 신비로운 출현이 알 수 없는 에너지의 현현, 이름하여 '신의 강림'이라 해석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의 강림'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고, 설명 가능한 부분까지 자칫 신비화시켜버리는 경향이 있다. 물론 모든 현상의 전체를 속속들이 설명할 수 있다는 만용은 금물이다. 그렇더라도 설명을 처음부터 포기할 필요는 없다.

내 해석은 이렇다. 연꽃문양이 몸에 나타난 그분은 부여 박물관에서 연꽃 문양을 보았을 때 "혼절할 정도"로 "황홀"했었다고 후에 고백했다. 예술가들은 대개 나와 타자들 간에 경계가 야트막하고 엷어서, 사람이든 물체든 바깥의 것들과 쉽게 감응하고 습합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술가적 민감성과 직관력과 연관될 것이다. 강력한 감동은 몸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분은 몸에 흔적을 남길 정도로 강력한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다. 기분이 좋으면 힘든 일도 쉽다. 그런 숱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에서 마음과 몸이 연결되어 있음을 너무도 잘 잊어버린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을 너무 손쉽게, 알 수 없는 '신'의 작용으로 뭉뚱그리고 만다. 물론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것 천지다.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그럴지라도 당장 설명 가능한 것에까지 무작정 '신'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비지성적이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월요논단]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이번에는 대전이다
  2. 김동연 경기지사, 반도체특화단지 ‘안성 동신일반산단’ 방문
  3.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영상포함)
  4. 갑천습지 보호지역서 57만㎥ 모래 준설계획…환경단체 "금강청 부동의하라"
  5. [2025 보문산 걷기대회] 보문산에서 만난 늦가을, '2025 보문산 행복숲 둘레산길 걷기대회' 성황
  1. '교육부→복지부' 이관, 국립대병원 교수들 반발 왜?
  2. 12·3 계엄 1년 … K-민주주의 지킨 지방자치
  3. 쿠팡 개인정보 유출 2차 피해 주의보… 과기정통부 "스미싱·피싱 주의 필요"
  4. [기고] '우리 시대 관계와 소통'에 대한 생각
  5. [인터뷰] 이동진 건양사이버대 총장 "책임교육 통해 학생들의 나침반·든든한 동반자 될 것"

헤드라인 뉴스


내포 농생명 클러스터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 지정

내포 농생명 클러스터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 지정

내포 농생명 융·복합산업 클러스터가 농림축산식품부의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지구'에 1일 자로 최종 지정·고시됐다. 충남도에 따르면 이번 지정은 농식품부가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해 추진한 것으로, 전국 11개 시도가 신청했고 최종 7곳이 선정됐다. 육성지구로 지정되면 국비 기반 공모사업 참여 자격과 기업 지원사업 가점 부여, 지자체 부지 활용 특례 등의 혜택을 받는다. 위치는 예산군 삽교읍 삽교리·상성리 일원 내포 농생명 융·복합산업 클러스터 부지로 지정 면적은 134만 2976㎡(40만 평) 규모이며, 오는 2030년 2028년까지..

`안전 지식왕`은 바로 나… 지난해 이어 2연패 퀴즈왕에 이목집중
'안전 지식왕'은 바로 나… 지난해 이어 2연패 퀴즈왕에 이목집중

충남 안전골든벨 왕중왕전을 향한 마지막 지역 예선전인 '2025 논산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논산 퀴즈왕은 지난해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한 학생이 차지하면서 참가학생과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논산시와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논산계룡교육지원청, 논산경찰서·소방서가 후원한 '2025 논산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27일 논산 동성초 강당에서 개최됐다. 본격적인 퀴즈 대결에 앞서 참가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본격적인 문제풀이에 돌입하자 침착함을 되찾고 집중력을 발휘해 퀴즈왕을 향한 치열한 접전이..

대통령실 “대통령 사칭 SNS 계정 확인… 단호히 대응”
대통령실 “대통령 사칭 SNS 계정 확인… 단호히 대응”

SNS에 대통령을 사칭한 가짜 계정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 정황이 확인돼 대통령실이 각별한 주의를 요청했다. 전은수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최근 틱톡(TikTok), 엑스(X) 등 SNS 플랫폼에서 제21대 대통령을 사칭하는 가짜 계정이 확인돼 국민 여러분께 각별한 주의를 요청드린다”고 전했다. 가짜 계정들은 프로필에 '제21대 대통령'이라는 직함과 성명을 기재하고 대통령 공식 계정의 사진·영상을 무단 도용하고 있으며, 단순 사칭을 넘어 금품을 요구하는 등 범죄 정황도 포착됐다고 전은수 부대변인은 설명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 ‘사랑의 온도를 올려주세요’ ‘사랑의 온도를 올려주세요’

  •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

  •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