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화양소제고적보존회와 그 후예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 화양소제고적보존회와 그 후예들

정재관 대전시 문화유산과장

  • 승인 2020-06-18 08:23
  • 신문게재 2020-06-05 18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정재관(프로필사진)
정재관 과장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중반 대전에서는 '화양소제고적보존회(華陽蘇堤古蹟保存會)'라는 단체가 결성됐다. 우암 송시열 선생의 유적과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지역 유지들, 특히 유림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였다.

오늘날로 치면 국민유산신탁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효시인 셈이다.



대전에서 결성됐지만, 우암의 위상을 보여주듯 전국적인 연락망을 갖추었으며,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개화파의 거두 박영효는 물론 민병석 같은 중앙의 거물급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많은 이들에게 잊혀졌지만 자랑스러운 대전의 문화재보존운동의 시초였던 화양소제고적보존회의 본부가 있었던 곳이 바로 지금의 대전역 뒤편의 있는 작은 마을 '소제동'이었다.



파란만장했던 정치생활을 접고 낙향한 우암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집을 짓고 후학들을 키웠던 기국정과 남간정사가 있었던 곳이 바로 소제호 주변이었기 때문이다. 우암이 사랑했고, 그 우암을 흠모했던 이들이 모여들었던 소제동은 현재 일제강점기 조성된 철도관사촌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멋진 카페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100년의 시간을 거슬러 다시 소제동은 보존과 개발의 뜨거운 현장이 되었다. 화양소제고적보존회의 결성 배경에는 대전천의 치수사업을 위해 계획된 소제호의 매립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우암의 유적들을 보존하고자 하는 이들의 안타까운 마음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소제호 위에 세워진 그 관사들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열망이 그곳에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 그렇게 본다면 어쩌면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낸 지난 역사의 주인공들이 다시금 시작되는 시간의 한 페이지에 그 자리를 내어주는 것 또한 역사적인 일일 것이다. 문제는 그 사라짐의 이유와 속도가 과연 우리가 납득할만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지금 우리 세대가 과거 세대에 비해 얼마나 문화와 정신의 진보, 다양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다.

대전시에서는 '도시기억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올 한해 문화재 보존의 역사와 철학, 이해충돌의 현장이 된 소제동과 인근 삼성동 재개개발지역에 대한 문화재조사와 기록화사업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예술인들이 하나의 팀을 이루었다.

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공존할 수 없을 거 같은 보존과 개발의 문제 역시 화양소제고적보존회의 존재가 보여주듯 자연스러운 하나의 역사이다. 이 문제를 우리 세대가 어떻게 풀어갈지는 아직 남겨진 문제이나 분명한 것이 있다. 지금 여기서에서의 '기록'이 가장 중요한 역사이며, 실천이라는 사실이다.

/정재관 대전광역시 문화유산과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중도초대석] 임정주 충남경찰청장 "상호존중과 배려의 리더십으로 작은 변화부터 이끌 것"
  2. "내년 대전 부동산 시장 지역 양극화 심화될 듯"
  3. [풍경소리] 토의를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는 아름다운 사회
  4. 대전·세종·충남 11월 수출 두 자릿수 증가세… 국내수출 7000억불 달성 견인할까
  5. SM F&C 김윤선 대표, 초록우산 산타원정대 후원 참여
  1. 코레일, 철도노조 파업 대비 비상수송체계 돌입
  2. 대전 신세계, 누적 매출 1조원 돌파... 중부권 백화점 역사 새로 쓴다
  3. 대전 학교급식 공동구매 친환경 기준 후퇴 논란
  4. LH, 미분양 주택 매입 실적…대전·울산·강원 '0건'
  5. 대전 한우리·산호·개나리, 수정타운아파트 등 통합 재건축 준비 본격

헤드라인 뉴스


충남도, 18개 기업과 투자협약… 6개 시군에 공장 신·증설

충남도, 18개 기업과 투자협약… 6개 시군에 공장 신·증설

국내외 기업 투자 유치를 핵심 과제로 추진 중인 충남도가 이번엔 18개 기업으로부터 4355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끌어냈다. 김태흠 지사는 23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김석필 천안시장권한대행 등 6개 시군 단체장 또는 부단체장, 박윤수 제이디테크 대표이사 등 18개 기업 대표 등과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18개 기업은 2030년까지 6개 시군 산업단지 등 28만 9360㎡의 부지에 총 4355억 원을 투자해 생산시설을 신증설하거나 이전한다. 구체적으로 자동차 기계부품 업체인 이화다이케스팅은 350억 원을 투자해 평택에서..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기획] 백마강 물길 위에 다시 피어난 공예의 시간, 부여 규암마을 이야기

백마강을 휘감아 도는 물길 위로 백제대교가 놓여 있다. 그 아래, 수북정과 자온대가 강변을 내려다본다. 자온대는 머리만 살짝 내민 바위 형상이 마치 엿보는 듯하다 하여 '규암(窺岩)'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 바위 아래 자리 잡은 규암나루는 조선 후기부터 전라도와 서울을 잇는 금강 수운의 중심지였다. 강경장, 홍산장, 은산장 등 인근 장터의 물자들이 규암 나루를 통해 서울까지 올라갔고, 나루터 주변에는 수많은 상점과 상인들이 오고 가는 번화가였다. 그러나 1968년 백제대교가 개통하며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생활권이 부여읍으로 바..

이춘희 전 세종시장,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시사
이춘희 전 세종시장,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시사

이춘희 전 세종시장이 23일 시청 기자실을 찾아 2026년 지방선거 재도전 의사를 내비쳤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경 보람동 시청 2층 기자실을 방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입장을 공식화했다. 당 안팎에선 출마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가 이어졌고, 이 전 시장 스스로도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 내 시장 경선 구도는 이 전 시장을 비롯한 '고준일 전 시의회의장 vs 김수현 더민주혁신회의 세종 대표 vs 조상호 전 경제부시장 vs 홍순식 충남대 국제학부 겸임부교수'까지 다각화되고 있다. 그는 이날 "출마 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크리스마스 분위기 고조시키는 대형 트리와 장식물

  •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6·25 전사자 발굴유해 11위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

  •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동지 팥죽 새알 만들어요’

  • 신나는 스케이트 신나는 스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