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황금 칠한 떡 보시와 실상사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황금 칠한 떡 보시와 실상사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승인 2020-09-14 14:59
  • 신문게재 2020-09-15 19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그리스신화에 의하면 태양의 신 아폴론을 사랑한 물의 요정 클리티에가 해바라기가 되었다지요. 올봄 해바라기를 파종해놓고 근사한 여름을 기대하였으나 긴 장마와 잦은 비로 멀대같이 제키만 키운 해바라기가 꽃을 피운 건 손가락을 꼽을 만큼 낭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헛헛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까짓 해바라기꽃이 피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재난(disaster)은 그리스어로 '별(aster)'이 없는 (dis)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과거 별을 보고 항로를 찾던 선원들에게 별이 사라진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지요. 우리 사회가 지금 그런 사회적 자연적 재난으로 무척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계절이 네 번 바뀌는 동안에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설상가상으로 태풍 '바비' '마이삭' '하이선'이 지나간 자연재해의 현장까지 하루에도 수천 명의 자영업자들이 폐업하고 재난지원금, 공공의료정책, 주택문제들의 양극화로 정의와 공정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9월은 아무도 몰래 사랑했던 사람처럼 다정한 가을햇살로 다가왔습니다.

한 달 전 '백석 시인의 삶과 사랑'이란 강좌가 있다길래 왕복 4시간의 거리를 마다않고 다녀왔지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 백석과 그의 연인 자야(子夜)의 사랑이야기를 우리 문단사에 최초로 끄집어낸 전 영남대 국문학과 이동순(李東洵, 1950~ ) 교수는 1987년 월북작가 해금이 되자 그해 9월 ‘백석 시선집(창작과비평사)’을 출간했는데 한 달 뒤 그 시집을 본 할머니 진향(眞香)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곧장 서울로 와서 만나게 되었답니다. 모던보이 백석과 자야의 사랑이야기에 '함흥시절에 쓴 백석 시의 애틋함과 고뇌와 갈등 따위가 일시에 정돈된 풍경으로 다가왔다'며 이 교수는 '백석,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자야 또한 이 교수의 권유로 백석과 보낸 3년의 이야기를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으로 출간하여 두 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 만도 못해'라며 평생 백석을 그리워하다 1995년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고, 1977년 창작과비평사에 2억원을 출연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한 것은 자야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 사랑이 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들은 마지막사랑이기를 바란다는 사랑의 소유에 대한 성찰의 면죄부를 요구하지 않는지 모릅니다.



자야는 사실 평생 백석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어요. 1940년까지 만주에 있는 백석에게 옷가지를 보내기도 했지만 그 후에는 정계의 고관대작들과 교제한 여장부로 자식도 둘이나 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흰 바람벽이 있어'의 주인공으로 살아왔다는 자야의 고백을 믿을 수밖에요. 이렇듯 사랑 자체는 삶의 순간이 아니라 전부일 수도 있어 사랑의 설화는 탄생되어지는 것입니다. 창조의 원동력은 가난과 절실함이겠지만 로맨스가 창의력을 낳는다는 '피카소효과'는 모든 예술과 문학의 기저로 사람들은 사랑의 절망에서 미친 듯이 시를 씁니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한번쯤 읊조리는 릴케의 '가을날'이나 일흔이 넘은 괴테가 열일곱의 올리케를 사랑한 연애시 '마리엔바트의 비가'도 그렇게 탄생되었지요.

그래도 자야가 길상사를 법정에게 시주한 인연의 스토리는 궁금증을 더하고 길상사를 시주받은 법정스님은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는 애매모호한 경계의 화두로 크게 버리는 사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무소유의 역리(逆理)를 실행한 것은 아닌지요. 자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십여 년간 애간장을 태우다 대원각 기생들의 연회에 기자들을 대동하고 황금 칠을 한 떡을 보시하였다는 이 교수의 씁쓸한 말이 내 전두엽에 이명(耳鳴)을 내고 있었습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조국혁신당 세종시당, '내홍' 뚫고 정상화 시동
  2. 2025 K-축제의 세계화 원년...날아오른 국내 축제는
  3. 충남도의회 "학교급식 종사자 체계적 검진 지원"
  4. [기획] ㈜아라 성공적인 글로벌화 "충남경제진흥원 글로벌강소기업1000+ 덕분"
  5. 대전 특성화고 지원자 100% 넘었다… 협약형 특성화고 효과 톡톡
  1. [사설] 특성화고 '인기', 교육 내실화 이어지나
  2.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3. "대전하천 홍수량 5~8% 늘어"vs"3년 만에 과도한 상향 아닌가" 갈등
  4. '성찰 다이어리'와 '21일 좋은 습관 만들기'에 쑥쑥… 대전동문초 인성교육 호평
  5. 학교 밖 청소년들이 만든 따뜻한 한포기, 지역사회로 전하다

헤드라인 뉴스


이대통령 "위대한 용기, 12월 3일 `국민주권의 날`로 정할 것"

이대통령 "위대한 용기, 12월 3일 '국민주권의 날'로 정할 것"

이재명 대통령은 3일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국민주권정부는 우리 국민의 위대한 용기와 행동을 기리기 위해 12월 3일을 '국민주권의 날'로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1년을 맞은 이날 오전 대통령실 특별성명, ‘빛의 혁명 1주년을 맞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지켜낸 것을 함께 기념하고 더 굳건한 민주주의를 다짐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21세기 들어 대한민국과 비슷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친위 쿠데타가 발생한 것..

[12·3 비상계엄 1년] 우원식 “사회상과 국민 요구 담을 개헌 필요”
[12·3 비상계엄 1년] 우원식 “사회상과 국민 요구 담을 개헌 필요”

우원식 국회의장은 3일 “권력의 과도한 집중과 승자독식을 완화하고 변화된 사회상과 국민적 요구를 담아내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이날 오전 12·3 비상계엄 해제 1주년 공동학술대회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는 헌법에 적힌 절차와 원칙에 따라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모범사례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구조적 방벽을 세우는 일은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이 시대에 조응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는 개헌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국회만의 일이 아니라 시민과 학계, 언론, 시민사회가 함께..

[기획] `인삼의 고장` 금산의 지방소멸 위기 해법 `아토피 자연치유마을`
[기획] '인삼의 고장' 금산의 지방소멸 위기 해법 '아토피 자연치유마을'

지방소멸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충남 금산군이 '아토피자연치유마을'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전국 인삼의 80%가 모이며 인구 12만 명이 넘던 금산군은 산업구조 변화와 고령화, 저출산의 가속화로 현재는 인구 5만 명 선이 무너진 상황이다. 금산군은 지방소멸 위기를 '치유와 힐링'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아토피자연치유마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아토피·천식안심학교' 상곡초등학교를 중심으로 금산에 정착하고 있는'아토피자연치유마을' 통해 지방소멸의 해법의 가능성을 진단해 본..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강추위에 맞선 출근길 강추위에 맞선 출근길

  • 고사리 손으로 ‘쏙’…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고사리 손으로 ‘쏙’…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 대전도시철도 1호선 식장산역 착공…첫 지상 역사 대전도시철도 1호선 식장산역 착공…첫 지상 역사

  • 대전서 개최된 전 세계 미용인의 축제 대전서 개최된 전 세계 미용인의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