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사그러드는 아내를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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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그러드는 아내를 보며

김용복 / 극작가,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9-2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보시기에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더구나 병이 깊어 사그러드는 아내를 돌본다는 것은 안타까우면서도 행복에 겨운 일이다. 아직은 아내가 내 곁에서 숨을 쉬고 있기 때문이다.

난 내 아내 때문에 1년 365일 늘 행복하게 살아왔다. 옛말에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하면 3년간 행복하고, 부지런한 여자와 결혼하면 30년간 행복하지만, 현명한 여자와 결혼하면 3대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내 아내를 보니까 그 말이 딱 들어맞는 말인 것이다.

내 아내는 결혼 초 아름다움으로 나를 3년간 행복하게 해 주었고, 그 이후 47년간은 부지런하게 볼링이며, 배드민턴, 수영, 해외여행을 즐겨 나를 행복하게 해 주더니, 최근 5년 동안은 치매라는 병에 걸려 나를 아예 행복의 도가니에 푹 빠져 들게 하였다.

치매 4등급 환자들은 인지 능력이 거의 없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반찬 만들며, 약을 시간마다 챙겨 먹이는 일을 내가 해야 한다. 그래서 난 늘 바쁘고 앉아 쉴 틈도 없다. 그러나 계속 움직이는 일은 나에게 운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계속 움직이니까 80인 내가 언제나 건강하다. 당뇨도 없고, 혈압도 높지 않으며, 성인병도 일체 없을 뿐더러 눈도 밝아 승용차도 30년간 무사고로 끌고 다닌다.



아내를 위해 집안 살림하고, 대소변 치우는 일이 그렇게 행복하게 여겨질 수가 없다. 아내가 살아서 따뜻한 체온과 고마워하는 눈길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친구 월정은 나를 늘 부러워한다. 그의 아내는 3년 6개월 전 그에게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그 곁을 떠나갔고, 내 아우 남선생도 그 짝이 그렇게 훌쩍 떠났다. 짝 없이 홀로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니 내 아내가 그렇게 고마운 것이다.

나는 내 아내를 보살피는 일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에 초점을 맞춰 한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게 행동하는 일.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대소변을 실수하여 치우고 씻겨주는 일도 행복하고, 땀 흘리며 집안 청소하는 것도 행복하며, 아내 손잡고 유성시장엘 가서 쇼핑하는 것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내 아내가 없어졌다. 혼자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볼링장도 가 보고, 배드민턴장도 두리번거렸다. 기진해 집으로 돌아 왔다. 하나님도 원망해보고 '조금 덜 사랑할 걸' 후회도 했다. 아내 방문을 열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제 자리에 있는데. 오성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식탁 위에 아내 수저를 보는 순간 주간보호센터에 있는 내 아내 오성자가 내 마음속에서 웃고 있었다. "이 바보야, 어디 갔다 왔어?"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았다.

그런데 또 일이 생겼다. 아내를 돌보다가 내가 쓰러진 것이다. 할 수 없이 요양원에 맡겼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지 않아 요양병원으로 옮기게 됐고 콧줄로 음식을 넣어주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건강이 회복되자 코로나19가 덮친 것이다. 비대면 면회로 밖에 아내를 볼 수가 없다. 처음 얼마동안은 가족을 알아보더니 지금은 전혀 알아보지를 못한다. 그래도 아내가 살아있기에 먼저 보낸 다른 친구들보다는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서산 넘어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나는 울보가 된다. 아내가 신던 신발이나 옷을 보면 그렇고, 아내가 쓰던 방을 보면 더욱 울적해 진다. 그런데 카톡 문자가 날아왔다. 우리 가족들이 사용하는 단톡방으로 서울에 사는 막내딸이 보낸 문자였다.

"내 아버지, 막내인 내가 지키러 간다"는 문자였다.

그래 고맙다. 엄마가 추억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우리 가족끼리 서로 지키며 이 고통 이겨내자.

김용복 /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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