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개판(開飯) 오 분 전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개판(開飯) 오 분 전

  • 승인 2021-10-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선진사회는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를 의미하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소득 및 고도의 문화와 문명을 소유한 사회이기도 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를 도모한다. 느리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진화해간다. 지금 우리가 과거를 바라보는 것처럼, 훗날 돌이켜 보면 어떻게 저러한 속에서 살았을까 하는 일도 많을 것이다.

작게는 우리 자신의 삶부터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회상하다 보면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 많다. 공중도덕이나 질서의식도 눈에 띄는 하나다. 퍽 무질서했던 기억이다. 하다못해 버스를 타더라도 서로 먼저 타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였다. 교통수단이 부족하고 더 많은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였을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좌석표가 없었다. 먼저 타는 사람이 임자다. 나아가 짐으로 자리를 선점해 놓고, 창문으로 가방을 들여놓기도 했다. 심지어 창문으로 올라타기도 했다. 이런 경우를 일컬어 '개판 오 분 전'이라고 한다. 무질서하고 엉망진창인 행태를 만나면 곧잘 사용하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도 다르지 않아, "상태,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 온당치 못하거나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황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우리 말에서 접두사 '개'는 '참'과 대응한다. 진짜나 좋은 것이 아니고, 함부로 된 것을 말할 때 쓰인다. 부정적이거나 정도가 심한 것을 의미한다. 개나리, 개미나리, 개비름, 개살구, 개떡 등과 같이 야생 상태나 '흡사하지만 다른' 의미로 쓰인다. 헛되다, 쓸데없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개꿈, 개나발, 개수작, 개죽음 등이 그것이다. 개망나니, 개잡놈 등과 같이 부정적 뜻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요즈음은 신조어도 많이 들린다. 개같다, 개구리다, 개매너, 개덥다, 개이득, 개좋다, 개짜증 등이다. 본래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반대, 또는 강조할 때 붙여 사용한다. 오랜 언어습관임에도 짐승 '개'로 오인하고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욕설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개판 오 분 전'도 오해하고 사용하는 말 중 하나다. 짐승 개가 놀고 나면, 그 현장이 어지러워지고 엉망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개판은 짐승 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함에도 개가 판치는 것을 떠올리며 사용한다. 뜬금없이 개가 비난 대상이 된다. 개 입장에서는 무척 억울할 듯하기도 하다.

<우리말의 유래> 등을 종합해보면, 사정은 이렇다. 동족상잔이 벌어진 6.25 초기 전선이 밀려 영남 일부만 남았다. 특히 부산지역은 피난민이 몰려 아수라장이 되었다. 먹는 것이 제일 문제였다. 가마솥에 밥을 지어 나누었는데, 뚜껑 열기 오 분 전이면 높은 곳에 올라 꽹과리를 치며 "개판 오 분 전이오!"라고 알렸다. 개판은, 나무로 된 뚜껑(板)을 연다는 말이다. 개(犬)가 아니라 개(開)인 것이다. 앞다투어 밀려드는 사람들로 혼잡이 극에 달했다. 장기간 지속하다 보니 일상이 되고, 그 광경과 말이 그대로 전파되었다 한다. 의미는 다르지 않지만, 속내는 우리네 애잔한 슬픔과 아픔이 담겨있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 때만 되면, 왜 폭로전이 이어지고 중상모략과 흑색선전이 판을 칠까? 자신의 장점과 정책 알리는 것이 먼저 아닐까? 거짓은 어떻게든 엄단 해야 한다.

반면에 아직도 개판 오 분 전이란 생각도 인다. 우리 사회도, 우리의 삶도. 숨겨졌던 그늘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성찰과 공부가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미숙한 삶의 과정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누군들 꽃길만 걸어왔으며, 곧은 길, 바른길만 걸었으랴.

<중용>에 전하는 말이다. "하늘이 내린 천성을 성이라 하고, 그 천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하며, 도에 따라 수신하는 것을 배움이라 한다. 도는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되고, 떠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더욱 신중하고,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더욱 경외한다. 숨겨도 보이고 미세해도 드러나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도 신중해야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숨겨도 보이고 미세해도 드러난다는 것은, 숨겨진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게 없으며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옛말이 틀리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떠올려 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기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강성삼 하남시의원, '미사강변도시 5성급 호텔 유치' 직격탄
  2. 대전시, 6대 전략 산업으로 미래 산업지도 그린다
  3. [특집]대전역세권개발로 새로운 미래 도약
  4. 대전시와 5개구, 대덕세무서 추가 신설 등 주민 밀접행정 협력
  5. 대전 출입국·외국인사무소, 사회통합 자원봉사위원 위촉식 개최
  1. 대전시 '제60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선수단 해단'
  2. 충남대·한밭대, 교육부 양성평등 평가 '최하위'
  3. 9개 국립대병원 "복지부 이관 전 토론과 협의부터" 공개 요구
  4. 대전경찰, 고령운전자에게 '면허 자진반납·가속페달 안전장치' 홍보 나선다
  5. [종합]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차세대중형위성 3호 양방향 교신 확인

헤드라인 뉴스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환경·휴양 인프라 사업은 단순히 시설 하나가 늘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시민이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 전체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조성이 완료된 곳은 이미 동선과 생활 패턴을 바꿔놓고 있고, 앞으로 조성이 진행될 곳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단계에 있다. 도시 전체가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갑천호수공원 개장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사례다. 기존에는 갑천을 따라 걷는 단순한 산책이 대부분이었다면, 공원 개장 이후에는 시민들이 한 번쯤 들어가 보고 머무..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의 자연·휴양 인프라 확장, 일상의 지도를 바꾼다

대전 곳곳에서 진행 중인 환경·휴양 인프라 사업은 단순히 시설 하나가 늘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시민이 도시를 사용하는 방식 전체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조성이 완료된 곳은 이미 동선과 생활 패턴을 바꿔놓고 있고, 앞으로 조성이 진행될 곳은 어떻게 달라질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단계에 있다. 도시 전체가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재편되고 있는 셈이다. 갑천호수공원 개장은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사례다. 기존에는 갑천을 따라 걷는 단순한 산책이 대부분이었다면, 공원 개장 이후에는 시민들이 한 번쯤 들어가 보고 머무..

‘줄어드는 적십자회비’… 시도지사협의회 모금 동참 호소
‘줄어드는 적십자회비’… 시도지사협의회 모금 동참 호소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나누기 위한 적십자회비가 매년 감소하자,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회장 유정복 인천시장)가 27일 2026년 대국민 모금 동참 공동담화문을 발표했다. 국내외 재난 구호와 취약계층 지원, 긴급 지원 등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 대한 인도주의적 활동에 사용하는 적십자회비는 최근 2022년 427억원에서 2023년 418억원, 2024년 406억원으로 줄었다. 올해도 현재까지 406억원 모금에 그쳤다. 협의회는 공동담화문을 통해 “최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적십자회비 모금 참여가 감소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채비 ‘완료’

  •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가을비와 바람에 떨어진 낙엽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행복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