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산고수장 단상

  • 오피니언
  • 여론광장

[홍키호테 世窓密視] 산고수장 단상

자원봉사와 영화의 함수관계

  • 승인 2021-12-18 12:0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오베'는 노인이다. 성격이 까칠하다. 사랑했던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날마다 아내의 묘소를 찾는다. 그리곤 다짐한다. "나도 곧 당신 곁으로 갈게."

오베는 온종일 자살만 떠올린다. 하지만 공교롭게 그가 자살만 기도하면 꼭 누군가가 나타나 훼방을 놓는다. 그는 푸념한다. "죽는 게 사는 것보다 힘들어!"

이 영화는 스웨덴의 한 블로거에서 전 세계를 사로잡은 초대형 작가가 된 프레드릭 배크만의 원작을 모티프로 했다. 데뷔작이자 첫 장편소설인 『오베라는 남자』는 그의 블로그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수많은 독자들이 '오베'라는 캐릭터에 반해 이야기를 더 써볼 것을 권했고, 그렇게 『오베라는 남자』가 탄생했다고 한다. 배크만은 2012년 이 소설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출간 즉시 굉장한 인기를 모았고, 인구 9백만의 스웨덴에서 84만 부 이상, 전 세계 28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미국 아마존 소설 분야 1위를 기록하며 77주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지켰고, 2017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의 자리에 올랐다.

44개국에 판권이 수출되며 독일, 영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 등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2016년에 영화화되어 스웨덴 영화제에서 다양한 부문의 상을 휩쓸었다.

'오베'는 젊었던 시절, 결혼하여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간다. 그러나 관광버스가 전복되어 임신 중이던 아내는 유산하고 두 다리까지 잃는다. 이로부터 아내 말고는 그 누구와도 말도 섞기 싫은 성격으로 바뀌었다.

툭하면 분노하고 이웃과도 담을 쌓고 지낸다. 그러니 따뜻한 정을 나누는 대상조차 전무하다. 하지만 막상 오베가 자살을 결심하고 결행할 때마다 각종의 에피소드가 발생하면서 그는 비로소 진정한 삶의 목적을 발견한다.

알고 보니 오베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진정 마음속까지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르는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동네의 대소사를 모두 챙긴다. 시나브로 동네 사람들은 그를 히어로(Hero)로 각인한다.

오베는 자살을 중단하고 이타적 삶에 더욱 몰입한다. 그가 자살이 아닌 자연사로 편안히 눈을 감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그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준다. 진심으로 애도하면서.

여기서 오베의 산고수장(山高水長) 마인드가 오버랩 되었다. '산고수장'은 산은 높이 솟고 강은 길게 흐른다는 뜻으로, 인자(仁者)나 군자의 덕행이 높고 한없이 오래 전하여 내려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정승 집 문지방이 닳아 없어지도록 문상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정승이 죽은 후에는 그에게 더는 잘 보일 필요가 없는 까닭에 조문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염량세태(炎凉世態)의 비정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세상이 그렇고 정치가 특히 더하다. 그렇지만 염량세태의 무풍지대가 없는 건 아니다. 최근 자원봉사 유공자들을 잇달아 취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보다는 남을, 개인보다는 사회를 보며 선행을 베풀었다. 겉으로 보기엔 퉁명스럽고 한 톨의 정이라도 주기 아까웠던 인물이 '오베'였다. 그러나 그도 알고 보면 이웃을 진정 사랑한 '자원봉사자'였다.

겨울이라서 날씨가 차갑다. 하나 아무리 강퍅한 동장군일지언정 사람의 따뜻한 정과 진솔한 배려, 나눔의 마음씨에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산고수장'의 아름다움을 우리 모두 배웠으면 좋겠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초경서반-홍경석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해 국·공립 산림휴양시설 10월 동시 개장
  2. 충남신보, 천안-아산 소상공인에 특례보증 지원
  3. 대전시 "선도지구 2차 선정 공모 또는 제안 방식으로"… 두 방식 차이점은?
  4. 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교장에 김도경 KAIST 명예교수 선임
  5. 대전중수청 '대전 이전' 속도… 행안부 차관 "내년 설계비 반영" 확답
  1. 세종시 교통신호, '내비게이션'으로 미리 본다
  2. '피지컬AI 1㎜ 에러를 잡아라' 대전창업포럼서 스타트업 '주목'
  3. 충남교육청, 학교 조리실 종사자에 방진마스크 지급 논란 확산… 정치권 "보여주기식 땜질 멈춰라"
  4. 대전보훈병원, 심평원 약제급여 적정성 평가 '1등급'
  5. 중장년 재취업을 향한 열기

헤드라인 뉴스


[기획] 시립 소극장 등 건립 하세월… 시민 `문화 갈증` 해소가 우선

[기획] 시립 소극장 등 건립 하세월… 시민 '문화 갈증' 해소가 우선

'문화예술 도시 세종'을 향한 청사진은 화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역 예술 꿈나무들은 설 무대를 찾지 못해 인근 타 도시로 향하고, 시민들은 문화공연을 즐길 시설이 부족해 문화 향유에 목말라 있다. 여기에 재정난으로 주요 문화시설 건립까지 지연되면서, 세종의 문화예술 인프라가 도시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은 언제쯤 행정수도를 넘어 시민 누구나 문화를 누리고 예술가가 지역에서 꿈을 펼칠 수 있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까. 세종 문화예술 인프라의 현주소와 과제를 3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

무수익여신 늘어나는 시중은행... 연체율 느는 대전 기업·가계대출도 적신호
무수익여신 늘어나는 시중은행... 연체율 느는 대전 기업·가계대출도 적신호

주요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이자를 내지 못하는 가계와 기업 비율이 코로나19 이후 최고 수준에 달하고 있다. 대전 시중은행에서도 기업·가계대출 연체율이 급격히 치솟고 있는데, 기준금리 인상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한계 차주들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 2분기 말 무수익여신 잔액은 총 6조 4108억원으로 집계됐다. 2025년 말(5조 65억원)보다 28.0% 증가했다. 이들 은행의 무수익여신 잔액이 6조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대 은행의 전체 여신에서..

4개국 신임 주한 상주대사, 이 대통령에 신임장 제출
4개국 신임 주한 상주대사, 이 대통령에 신임장 제출

미국과 포르투갈, 아랍에미리트, 아일랜드 신임 주한대사들이 12일 이재명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에서 신임 주한 상주대사 4명으로부터 신임장을 제출받았다. 신임장은 파견국의 국가 원수가 자국의 신임대사에게 수여한 것으로, 주재국 국가 원수에게 전달하는 문서다. 신임장을 제정한 대사는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와 반다 마리아 디아스 스텔제르 세케이라 주한 포르투갈대사, 자말 압둘라 모하메드 빈 압둘와합 알 수와이디 주한 아랍에미리트대사, 숀 호이 주한 아일랜드대사다. 이 대통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가장교 시멘트 떨어짐 현상…시민들 안전 ‘위협’ 대전 가장교 시멘트 떨어짐 현상…시민들 안전 ‘위협’

  • ‘무궁화 축제에서 나라사랑 의미 되새겨요’ ‘무궁화 축제에서 나라사랑 의미 되새겨요’

  • 폭염에 농작물도 피해 폭염에 농작물도 피해

  • 중장년 재취업을 향한 열기 중장년 재취업을 향한 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