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기록-45] ‘미션’처럼 들렸던 전화기 너머 그의 한마디 ‘이금복’

[10년간의 취재기록-45] ‘미션’처럼 들렸던 전화기 너머 그의 한마디 ‘이금복’

낮선 인물이 알려준 이름 석자 ‘이금복’, 속수승평계 넘버2 후손이었다
‘메주 씻기’ 공동작업 위해 도화리 주민들, 한곳에 모두 모여
‘기회는 이때다’…“이금복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중 한명, “알고 있다”

  • 승인 2022-03-15 11:26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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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청풍면 '도화리(桃花里)' 마을 주민들…도화리는 복숭아 꽃이 활짝 핀다는 마을로 유명하다. 복숭아 만큼 유명한 게 바로 '메주'다. 주민들이 메주를 씻기 위해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현장에 답이 있었다'

한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제보자로부터 한 개의 전화번호를 건네받았다. 휴대전화 번호가 아닌, 일반 유선 전화번호였다. 제보자는 "제천 대규모 국악단체를 알고 있을만한 인물"이라며 전화번호를 필자에게 건네 준 것이다. 그가 건네 준 전화번호는 지역번호 '043'으로 시작된다. 충북지역이다. 그가 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연결 음만 울렸다. 제보자와 처음 통화한 이후부터 이틀간 '전화 걸기'는 계속됐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지난달 8일 오전 9시쯤. 필자는 또다시, '043~' 시작된 유선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여보세요"라며 수화기를 들었다. 무척 반가웠다. 그가 실제로 제천 대규모 국악단체 청풍승평계(1893년)·속수승평계(1918년) 단원의 직계 후손(後孫)을 알고 있을까. 그가 후손을 알고 있다면 처음으로 밝혀지는 것이다. 반신반의였다.

그런데, 그와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전화는 이미 끊어졌다. 걸린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그와 다시, 통화했다. 그는 "바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와 짧은 시간 통화에서 인상적인 한마디는 이름 '이금복' 이다. 이금복이라는 이름만 알려준 것이다. 이금복이라는 사람이 청풍승평계 단원의 후손이라는 게 60대 여성의 주장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금복 인물이 128년 전 어느 단원의 후손인지, 생존하는지 또는 사망했는지, 현재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이금복이라는 인물을 머릿속에 새긴 뒤, 필자의 루틴(routine)은 계속됐다. 필자의 루틴은 하루에 한번, 이틀에 한번 꼴로 제천시 청풍지역을 둘러보고, 마을 주민들과 대화하는 일이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현장에 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필자는 지난해 가을부터 현재까지 제천 대규모 국악단체 청풍승평계(1893년)·속수승평계(1918년) 단원의 직계 후손(後孫)을 추적해 왔다.

60대 여성과 통화를 한 뒤, 그날 오후 제천시 청풍면 도화리 마을을 찾았다. 마을 한켠에 우뚝 선 나무아래는 청풍호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나무아래서 청풍호를 한참 바라보니 물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마저 생겼다. 128년 전 마을이 물속 아래에 그대로 잠겨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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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시 청풍면 '도화리(桃花里)' 마을 주민들…도화리는 복숭아 꽃이 활짝 핀다는 마을로 유명하다. 개복숭아 만큼 유명한 게 바로 '메주'다. 주민들이 메주를 씻기 위해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사실 도화리 마을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수시로 이 마을을 찾아 청풍호를 바라보고, 마을사람들과 이야기해 왔다. 이유는 단 하나다. 국악단체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을주민들에게 듣거나 단원의 후손 정보를 알기 위해서다. 그동안 마을의 여러 주민들과 이야기를 해 왔다. 그러나 국악단체와 관련된 정보는 얻지 못했다. 그래도 지속적으로 이 마을을 찾아왔다.

60대 여성과 통화한 날 찾은 마을 분위기는 평소보다 남달랐다. 평소 경로당과 마을 길 위에서 마을 주민들을 가끔 만나왔지만, 이날은 무슨 일인지 경로당 인근에 마을 주민들이 모두 모였다. 왜, 주민들이 모두 모인 것일까. 주민들이 메주를 씻고, 말리기 위해서 한곳에 모인 것인데, 자주 모이는 것은 아니다. 마을 주민들은 한 곳에 모여, 공동으로 메주를 만들고 판매를 한다고 한다.

'도화리(桃花里)' 마을을 잠시 소개하면 이렇다. 도화리는 복숭아 꽃이 활짝 핀다는 마을이다. 이름 그대로 지천에 개복숭아가 이 마을에 자생한다. 이 마을은 매년 5월 말, 개복숭아 축제를 연다.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을 찾을 정도로 유명하다. 개복숭아 만큼 유명한 게 또 있다. 바로 '메주'다. 지난해 말, 중앙 방송국 등이 이 마을 메주를 소개할 정도다. 실제 도화리 메주는 전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필자는 마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 것을 기회로 봤다. 일일이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볼 기회를 한번에 물어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셈이다.

"이금복을 아십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주민들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이금복은 실존 인물이었을까. 실존 인물이었다면 마을 사람들은 이금복을 기억하고 있을까. 대부분 마을 주민들은 'NO'라고 대답했다. 그때, 70대 어른이 "이금복을 왜 찾으려 하냐"며 말을 걸었다. 어른은 "이금복 이라는 사람은 사망했다. 그런데 이금복 가족은 알고 있다. 가족은 4촌 관계쯤 된다"며 휴대전화 번호를 건네 줬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유선 전화기 너머로 알려준 60대 여성의 이야기가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70대 어른에게 건네받은 휴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 참 후. 전화기 너머로 60대 중반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고, 60대 중반 여성은 "이금복은 자신의 아버지"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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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대규모 국악단체인 청풍승평계(1893년) 단원이자, 속수승평계(1918년) 단원 43명 중 서열 2위였던 '이태흥(李泰興·1871~1940년) 4대 후손(後孫)인 증손녀 이화연 선생.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필자는 60대 중반 여성에게 "이금복의 할아버지는 누구이고, 또 당신의 증조할아버지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족보(전의 이씨 족보)를 찾아본 뒤 다시 연락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몇시간 후. 그가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60대 중반 여성은 "족보를 봤더니, 아버지 이금복은 '이장세'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이근하'로 돼 있다. 그런데 이근하 옆 칸에 자(字)는 악삼(樂三), 호(號)는 태흥(泰興)으로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60대 중반 여성이 불러준 내용을 제천군지 기록과 대조했다. 제천군지 '태흥'과 전의 이씨 족보의 '태흥'이 일치했다. 심장이 멈추는 듯 했다.

'이태흥(1871~1940년)'. 그는 속수승평계 43명 중, 서열 2위인 간부급 단원이었다. 추적 수개월만에 속수승평계 간부 단원 3명 중 '넘버2'를 찾은 것이다. 60대 중반 여성은 이태흥의 증손녀다. 증손녀는 '이태흥' 직계 4대 후손인 이화연(여·67) 선생이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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