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변화의 크기와 속도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변화의 크기와 속도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4-06-07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6.25 이후 70년의 변화가 그 이전의 전체역사시대 보다 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빠른 속도로 문화와 문명이 무량하게 바뀌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다분히 느낌에서 오는 것이리라. 그런 느낌은 옛 사람도 가졌을 법하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桑田碧海) 하지 않았는가.

'헛살았다'고 푸념하는 어르신 말이 무슨 뜻인지 예전엔 헤아리지 못했다. 실생활에서 조차, 수시로 모르는 것에 부닥뜨리다보니 나오는 자조 섞인 말 아니랴.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듯, 나이 먹을수록 부족한 것이 많아진다. 변화가 따라가기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시간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옛 사람도 그러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스스로 변화를 주도하는 것 아니랴. 그러면서 그를 낯설어한다. 예나 지금이나 시간의 흐름은 동일하다. 당대 사람이 느끼는 변화의 속도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다만 집단의식의 무게에 따라 대하는 태도에 경중이 있을 뿐이다.

김은신 작가의 <여러분이시여 기쁜 소식이 왔습니다>를 만났다. 2008년에 출판되었으니 꽤 오래된 책이다. 소홀하게 다뤄온, 19세기 말 경성시대부터 20세기 초 일제 강점기의 연예사이다. 급변하는 시대의 문화 충격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책 제목도 제2의 광무대 개관 공연 광고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읽으면서, 조사와 자료수집에 공들인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일었다.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안목의 폭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몇 가지만 소개한다.

타의에 의해 봉건사회가 해체되었지만, 우리 연예사에 획기적 변화가 휘몰아친다. 전통연희가 대중 상대의 연예로 바뀌는 과도기가 된 것이다. 관아에 묶여있던 악공, 기생들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일부에서만 즐기던 기예가 일반화되는 것이다.

조선시대엔 마당이나 판에서 공연했다. 실내 공연장이 만들어진다. 실체는 알 수 없으나, 있었다는 흔적이 보인다. 저자가 기사 등 많은 자료를 들춰 찾아냈다. 실내 공연장이 생긴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이요, 일대 사건이다. 그로부터 무대예술의 틀이 다져지고, 관람료, 출연료 같은 것이 발생한다. 드디어 1902년 국가가 세운 공연장이 등장한다. 수용인원은 500명 안팎이었으며,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행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희대(戱臺)'라고 불렀다. 11월에 관리기관인 협률사(協律司)로부터 독립하며 협률사(協律社)가 되었다.

기생 또한 무대에 서게 된다. 기생하면, 무심히 잔치나 술자리에서 갖가지 기예와 풍류로 흥을 돋우는 정도로 생각했다. 실은 전문, 종합 예인이었으나 마음으로부터 홀대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음악은 물론 시서화도 익혔으며 사서삼경도 읽었다. 경성시대엔 전문적인 양성기관도 있었는데, 기생서재, 기생학교, 음악강습소, 권번으로 빠르게 바뀐다. 현대의 연예기획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 것이다. 1921년 평양기생학교의 규칙에 의하면 수업연한이 4년 이상이며, 수업과목도 조선어, 일본어, 기악, 성악, 무용, 조선 예법은 필수 과목이었고, 서화는 택1로 되어있다. 재봉, 서양춤 등 신문물을 교육한 곳도 있다. 대단한 인기와 수입이 많아지자 교육기관 역시 번성하였다. 권번마다 재학생이 수백 명씩에 이르렀다.

수준차가 있어, 분류하기도 했는데 일패는 왕실 행사에 참여하는 기생이요, 이패는 다시 문무백관을 상대하는 관기와 양반을 상대하는 민기로 나뉜다. 삼패는 평민을 상대로 하며 매춘도 병행했으나, 기예가 주였기 때문에 매춘이 전업인 유녀와는 다르다.

그에 따라 활동무대도 서로 달랐으나, 공연장, 요리집, 라디오, 유성기 등 폭넓게 대중과 만났다. 수준 높은 공연과 뛰어난 자태에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기생을 소개하는 『조선미인보감』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으며, 기생들이 잡지 「장한長恨」을 펴내기도 했다.

협률사에 이어 광무대와 단성사, 연흥사, 장안사 등 사설극장이 속속 문을 연다. 당시엔 무대에서 하는 모든 것을 연극이라 불렀다. 극이 공연되면 막이 바뀌는 사이가 있다. 그 막 사이에 흥미를 돋우기 위해 촌극이나 만담이 이루어졌다. 나중엔 막간의 연희물이 더 인기가 있어,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활동사진, 유성기판, 레코드판, 라디오가 나오면서 연예계 역시 지속적인 변화가 온다. 처음 보는 이상한 기기에 놀라, 음반이나 라디오에 출연하면 마이크에 혼이 빨려 들어가 수명이 단축된다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다. 점차 일반화되면서 지금 이상의 대스타가 탄생되기도 한다. 박춘재, 신불출, 왕수복 같은 사람이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 역시 부단히 변한다. 변화를 창출해 간다. 우리가 읽는 과거의 변화가 신문화 창달에 일익이 되지 않으랴.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
양동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30조원대 '발전 공기업 5사' 통합 속도… 세종시 유치 가능성은
  2. 신고 30초 만에 경찰 등장… 대전서 8천만 원 보이스피싱범 현행범 체포
  3. 경찰, 이장우 시장 한화생명볼파크 스카이박스 사유화 의혹 수사
  4. 세종시 공공형 '스크린 파크골프장', 종촌종합사회복지관서 첫 선
  5. [현장취재]2026년 저출생 대응 대전지역연대 정기회의
  1. 8월 16일, 내 결혼식을 미리 본다
  2. 대한공업교육학회, '2026년 상반기 학술대회'
  3. 위기 임산부 가정 위해 두번째 백일 파티
  4. 대전시새마을회, '2026 시·구회장단 워크숍 및 남도문화 탐방'
  5. 어린이회관, 초등1학년 학생들에게 꿈돌이 호신용 경보기 보급

헤드라인 뉴스


불난 차에 뛰어든 천안 버스운전 승무원, 소화기로 화재진압

불난 차에 뛰어든 천안 버스운전 승무원, 소화기로 화재진압

천안의 한 시내버스 기사가 운행 중 차량 화재를 발견하고 신속히 초기 진화에 나서 대형사고를 막아내 화제다. 시에 따르면 24일 오후 12시 32분께 새천안교통 소속 승무원 차용준(56) 씨는 90번 노선버스 운행 중 백석현대아파트 정류장 인근에서 화재가 발생한 차를 발견했다. 차 씨는 즉시 버스를 정차한 뒤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버스에 비치돼 있던 소화기 2대를 이용해 초기 진화에 나섰다. 폭발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도 소방차가 도착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진화한 덕분에 화재는 13분 만에 완전히 완료됐으며, 추가 피해도 막을 수..

"민간인 학살 대전 골령골에 평화공원 늦출 수 없어" 합동위령제
"민간인 학살 대전 골령골에 평화공원 늦출 수 없어" 합동위령제

6·25전쟁 발발 사흘째 되는 날부터 대전형무소 수형자들이 법적 절차 없이 학살당한 사건의 76주기를 맞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평화예술제와 위령제가 개최됐다. 골령골의 진실을 정부 차원에서 규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진실과화해를위한진상조사위원회의 제3기 위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사)대전산내골령골희생자유족회는 27일 오전 10시 30분 동구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산내 골령골 학살사건의 76주기를 맞아 제27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를 개최했다. 이곳에서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20여 일간 법적 절차 없이 보도연맹..

방사광가속기 품은 ‘오창테크노폴리스’ 물류 동맥 뚫렸다
방사광가속기 품은 ‘오창테크노폴리스’ 물류 동맥 뚫렸다

청주 미래 경제의 핵심 심장이자 차세대 방사광가속기가 들어설 청원구 오창테크노폴리스 일반산업단지의 물류 이동 속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인근 주민들의 출퇴근길 숨통을 틔워줄 전용 진입도로망이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청주시는 오창테크노폴리스 일반산업단지 진입도로 개설 공사 과정에서 원활한 구조물 시공을 위해 그동안 우회 도로로 가동해 왔던 '지방도 507호선' 구간의 모든 공정을 마무리하고, 지난 26일부터 정상 개통과 함께 전면 통행을 전격 개시했다고 28일 밝혔다. 이번에 새롭게 뚫린 진입도로는 오창읍 가좌리와 후기리를 다이렉트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갈고닦은 기술의 향연 갈고닦은 기술의 향연

  • 대한민국 패배에 실망하는 축구팬…32강 진출 불투명 대한민국 패배에 실망하는 축구팬…32강 진출 불투명

  • 개원 준비로 분주한 대전시의회 개원 준비로 분주한 대전시의회

  • 여름 반기는 주황빛 능소화 여름 반기는 주황빛 능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