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등용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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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등용과 정리

양동길/시인, 수필가

  • 승인 2025-07-18 00:00
  • 수정 2025-07-20 11:27
  • 신문게재 2025-07-21 1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중국 춘추시대 범려(范?)는 그가 모시던 구천이 패권을 차지하자 권부에서 슬며시 떠나 버린다. 구천의 성품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추천한 문종(文種)에게 보낸 편지에 잘 나타난다.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창고에 넣어두고, 교활한 토끼가 잡히면 사냥개는 삶아진다. 월왕의 사람됨이 목이 길고 새부리 모양이라,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하기 어렵다. 어찌 떠나지 않으리오." 복수에 불타던 구천이 모든 것을 이루고 나면, 자신의 치욕스런 과거를 아는 신하들을 죽일 것이라 예상한 것이다. 범려의 이 글에서 토사구팽(원문, 狡兎死 走狗烹)이란 사자성어가 연유한다.

그것은 구천 개인만의 성품이 아니라 권력의 속성일지 모른다. 휘하가 자신보다 일면 뛰어나다거나, 본인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부담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간적 신뢰, 신의까지 깨면서 무리한 제거에 나선다. 지나쳐서 부정적 방법과 수단이 동원되다보니 비난의 대상이 된다.

역사를 들추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자주 눈에 띈다. 기원전 202년 중국 한나라 건국 무렵에도 등장한다. 한고조 유방(劉邦)의 휘하에 훗날 한초삼걸이라 불리는 걸출한 신하, 장량(張良), 한신(韓信), 소하(蕭何)가 있었다. 유방도 황제 즉위식에서 스스로 소하의 행정력, 장량의 계책, 한신의 전술전략을 치하한다.

소하는 행정의 달인으로, 전쟁에서 인사관리와 보급의 중요성을 일깨운 중국사의 대표적 명재상이다. 전면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인 인구, 생산, 병력과 물자 관리로 군수보급과 지원에 만전을 기하여 전투능력을 배가시킨다. 장량은 당대뿐 아니라 중국사 대표 책사로 꼽힌다. 천리 밖의 승패도 한 눈에 들여다본다. 우리가 흔히 모사 또는 참모의 대명사로 일컫는 '장자방'의 '자방'이 바로 그의 자이다. 지략뿐만 아니라 인품도 빼어나고 학식도 뛰어나다. 유방은 대국적인 것부터 개인 대소사까지 장량의 의견에 따른다. 절대적으로 신임한 것이다. 한신은 어려서 건달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마을 조롱거리가 된 것으로 유명하다. 능력 못지않게 큰 뜻을 잃지 않은 그는, 소하의 추천으로 유방의 대장군이 된다. 수많은 공을 세워 통일 대업에 기여한다. 세 사람의 공이 하나라도 없었다면 천하통일은 생각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운명은 천차만별이다. 무엇이 그렇게 갈랐을까?



천하가 평정되고 통일대업이 이루어지자 논공행상이 있다. 공 다툼이 심하여 일 년 넘게 혼란을 겪는다. 소하는 차후(?侯)에 봉해져, 개국 공신 중 가장 많은 식읍을 하사 받는다. 위기 때마다 탁월한 처세술로 모면한다. 의심받는 것 같으면 최전방에 있는 유방 곁으로 가족을 보내기도하고, 식읍 추가나 호위대 하사를 적절히 사양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시험하는 유방에게 모든 가산을 털어 군비로 사용하게 한다. 명성이 엄청나지자 일부러 만든 비리로 명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덕분에 권부에서 천수를 누린다. 후손 대대로 작위를 잇는다.

장량은 본인에게 최고수준인 제나라 3만호 식읍 선택의 포상이 있었으나 정중히 사양한다. 자신의 공은 미미하다며 고조를 처음만난 유(留) 땅을 달라하여 유후가 된다. 권력에 욕심이 없음을 드러내며 몸을 낮춘다. 나아가,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관직에서 물러나 신선술을 배우겠다며, 춘추시대 범려처럼 아예 권부에서 떠나버린다. 중국 장가계로 숨는다. 여태후가 반란이라 모함하여 유방이 공격해왔으나, 천하 요새 장가계가 정벌될 리 만무하다. 유방 사후 8년 뒤, 세상을 등지고 그곳에 묻혔다 전한다.

막강한 군사력과 뛰어난 지략의 소지자 한신은 오히려 경계의 대상이 된다. 스스로 왕이라 칭하질 않나, 권력 분점의 야심을 드러낸다. 초나라 왕으로 임명한지 9개월 만에 반란죄라며 체포한다. 체포된 한신은 상기한 토사구팽을 인용, '적국이 파하니 지혜로운 신하가 죽고,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팽되는 것은 당연하다.' 자조하며 울분을 토한다. 범죄가 입증되지 않아 풀려났으나, 병을 핑계 삼아 조정에 나가지 않는다. 그를 추천했던 소하가 궁으로 유인하여 포박한다. 기어코 한신이 살해되고 그의 가솔은 삼족을 멸하는 형에 처해진다. 한신뿐만 아니라 창업공신 대부분이 주살된다.

훌륭한 리더는 본인 능력의 탁월함보다 주변 인재의 적절한 활용으로 성공을 이끌어낸다. 활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적절한 시기에 정리할 줄 아는 것이다. 비난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공신의 득세로 다시 망가지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인재등용 못지않게 정리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공신의 입장에서 보면 올바른 처세 및 진로가 중요하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양동길-최종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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