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내일] 중간층이 살아야 균형 잡힌 사회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내일] 중간층이 살아야 균형 잡힌 사회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 승인 2025-08-31 16:20
  • 신문게재 2025-09-01 23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김덕균균
김덕균 소장
지금은 많이 달라진 환경이지만, 어렵던 시절 노동자들 사이에선 "먹는 것은 돼지보다 적지만 일은 소보다 많이 해야 하고, 잠은 개보다 늦게 자지만 닭보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짐승만도 못한 힘겨운 삶을 풍자한 말이다. 사회적 불만은 '부익부빈익빈'의 불균형에 기인한다. 불균형은 사회적 불만을 야기하고 국가적 안정을 해친다.

중국 고전 『안자춘추』에 '날씨 춘운 줄 모른다.'는 의미의 '부지천한(不知天寒)'이란 말이 있다. 한겨울 엄동설한에 북풍이 몰아치고 함박눈이 며칠 동안이나 계속 내리면서 그칠 줄 몰랐다. 제나라 경공 때의 일이다. 백성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울부짖으며 여기저기서 얼어 죽고 굶어 죽은 시체가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경공은 가볍고 포근한 여우털 옷을 두르고 따뜻한 누각에 앉아 춤과 노래를 즐기는 일에 빠져 있었다. 연회 차림 상에는 온갖 산해진미와 향기로운 술이 가득했다. 마침 온 몸에 흰 눈을 뒤집어쓰고 들어오는 안영을 보고는 경공이 말했다. "올해는 참으로 이상하도다. 큰 눈이 며칠씩이나 계속 내리는데도 조금도 추운 줄 모르겠노라." 그러자 안영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옛날에 어진 왕들은 배가 부르면 백성이 주릴까 생각하고, 따뜻한 옷을 입으면 백성이 추울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경공의 호의호식을 은근히 빗댄 말이다.

전하는 말에 "내가 배부르면 종이 배고픈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환경이 다르고 신분과 처지가 다르면 상대방의 고충을 모른다는 뜻이다.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서민들의 고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불안정은 차이에 기인하지만, 서로의 고충을 모를 때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진다. 그래서 예로부터 지도자는 춥고 굶주린 백성들 가까이로 다가가서 그들과 고락을 함께 했다.

어느 해 제나라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우물은 마르고 풀과 나무가 말라 죽어갔다. 보다 못한 경공이 산신령께 기우제를 지내려 하자 안영이 기우제로 비를 오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비가 왔을 것이라며 반대했다. 푸석푸석 말라가는 산 속에 사는 산신령도 물이 필요했을 텐데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오겠냐는 합리적 판단이다.

실망한 경공이 이번엔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려 하자 또 안영이 말렸다. 용왕은 강에 살고 강도 말랐는데, 그에게 제사해서 비가 오겠냐는 것이다. 대신 백성과 고락을 같이 하는 것이야말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해결책이라고 건의했다. 경공은 안영의 말대로 궁궐 밖으로 나가 백성과 고락을 같이했다. 그러자 며칠 뒤 비가 내렸다.

사회 안정의 비결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고사다. 기우제는 흉흉한 민심을 달래고자하는 일종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다. 신비주의에 문제를 맡기는 것은 부질없는 허황된 생각으로 참된 문제 해결방식은 아니다. 오히려 함께 고통을 나누며 뜻을 같이 한다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교훈적 이야기다. 민심 안정의 방법은 함께 뜻과 행동을 같이하는데 있다. 한쪽에선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데, 한쪽에선 배불리 먹고 마신다면 문제는 커진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 함께 아파하고 나누는 것, 거기에 화해와 안정이 있다.

세계제국 로마와 원나라가 망한 것은 국력이 약해서가 아니다. A.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제국이 무너질 때 그들의 군사력은 여전히 최고를 자랑했다. 망국의 원인은 불평등, 양극화가 심화된 탓이다. 중간 계층은 사라지고 특권 귀족과 빈민 노예층만 남았다. 중간의 완충지대가 사라지자 양자의 갈등은 증폭됐다. 결국 제국은 외부의 적에 의한 충격보다 내부 분란에 의한 충격이 심했다. 분란을 감내하지 못하고 나라가 망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완충지대에 해당하는 경제적 중산층과 정치 사회적 중도층의 목소리가 묻히는데 있다. 사회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는 우리 사회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중간지대를 유지할 중산층, 사회적 균형을 갖춘 중도 층의 소리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단독]단양수중보 3억6000만원 소송…관리책임 갈등 다시 법정으로
  2. 괴산고추축제에 32만2천명 찾아···건고추 완판 12억 원 판매
  3. 외딴섬 '집현동'이 뜨겁다… 9월엔 세종 '공동캠퍼스' 축제로
  4. 대전 선도지구 구역들, 주민대표단 신청 분주한데 승인 지연돼 '발 동동'
  5. 목요경마 신설, 평일 온라인 수요 키웠나…마권 매출로 성과 검증
  1. 지역경제계 2차 공공기관 대전·충남 우선배치 요구 힘받나
  2. [중도초대석]복수경 충남대병원장 "사람중심 의료혁신, 새병원 건립·AI전환 착수"
  3. [제일학원] 9월 모평 가채점 충남대 의예 281점·심리 229점 지원 가능
  4. 한밭대 총장 후보 3인, ‘100년 대학’ 미래전략 놓고 열띤 공방
  5. 대전교육청 결산자료 '부실' 지적…조직 효율성·예산 집행도 도마

헤드라인 뉴스


허태정 대전시장 "대전역세권 복합2구역 사업 무산 대비해라"

허태정 대전시장 "대전역세권 복합2구역 사업 무산 대비해라"

허태정 대전시장이 추진 무산위기에 놓인 대전역세권 복합2-1구역 사업에 대해 사업자 측에 정상화를 촉구하는 한편 무산 시 대응 전략 마련을 주문했다. 허 시장은 8일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시민들에게 이런(대전역세권 복합2-1구역 사업 무산 위기) 흐름이 알려진 건 최근이지만, 이미 시장 취임 전부터 사업이 진척되지 않아 무산될 위기라는 점을 감지했다"면서 "시가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 시장은 "한화컨소시엄 측에도 명확히 시 입장과 시민 목소리를 전달하고, 사업이 책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

"태안 안면도 관광개발 연내 결단"…박수현 지사, 지역현안 적극 지원 약속
"태안 안면도 관광개발 연내 결단"…박수현 지사, 지역현안 적극 지원 약속

충남도가 석탄화력발전소 단계적 폐쇄로 심각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한 태안군의 미래 발전과 체질 개선을 위해 전방위 지원에 나선다. 박수현 충남지사는 8일 태안군을 방문해 민선 9기 시·군 방문 브랜드인 '충남통(通)행' 두 번째 일정을 소화하며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유치, 가로림만 해상교량 재도전, 안면도 관광지 개발 연내 결단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박 지사는 이날 태안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군민과의 대화 행사를 통해 태안을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의 위기를 넘어 '서해안 대전환의 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한 총리 "중앙행정기관·공공기관 이전계획 수립, 만전 기해달라"
한 총리 "중앙행정기관·공공기관 이전계획 수립, 만전 기해달라"

한성숙 국무총리는 8일 최근 발표한 중앙행정기관과 공공기관 이전과 관련, "관련 부처는 대상기관 확정 등 연내에 발표할 추진계획 수립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이날 오전 해외 순방 중인 이재명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제39회 국무회의에서 "국가균형발전과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시대적 과제"라며 이같이 지시했다. 한 총리는 "물론 이전 대상 기관에는 결코 쉽지 않은 변화일 것"이라면서도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었음을 이해하고 함께해 주실 거라 굳게 믿는다. 정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나눔의 의미도 배우고 책도 읽고’ ‘나눔의 의미도 배우고 책도 읽고’

  • 충남대학교와 국립공주대학교 통합 찬반 투표 시작 충남대학교와 국립공주대학교 통합 찬반 투표 시작

  • ‘고장난 전자기기 고쳐드려요’ ‘고장난 전자기기 고쳐드려요’

  • 가을 문턱…탐스럽게 익어가는 도깨비 박 가을 문턱…탐스럽게 익어가는 도깨비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