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걸어가는 화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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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걸어가는 화살표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6-03-09 17:11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이승선 교수
이승선 교수
90대 어른 A. 직업 군인 출신이다. 의무 복무를 위해 군에 입대했다가 갑종 장교 시험을 거쳐 대령으로 예편했다. 장군 진급 심사를 앞두고 있을 때, 그는 대학의 학군단장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부정한 권력이 염치없이 물리력으로 대학 교정을 휘젓던 시절이었다. 그 권력이 학생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총학생회장을 잡아갔다. 누구나 그 부당함을 알았으나, 학생을 보호해야 할 대학의 보직자 중 누구도 따지려 들지 않았다. 대령 A만이 홀로 못된 권력에 대해, 학생 대표를 잡아간 것이 잘못된 것이라며 석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 인해 그의 장군 진급이 꺾였다는 소문이 났다. 그때는 물론, 그 후 A는 그의 부하와 제자들의 삶에서 한결같은 화살표가 되었다. 지휘관과 부하로 만난 시절 인연이 50년 이상 두텁고 굳건한 예가 얼마나 될까. 며칠 전, 어떤 행사에 초대된 A에게 부하들이 감사의 마음을 봉투에 담아 건넸다. A는 오히려 당신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더니, 행사에 보태쓰라며 부하들에게 전했다. 노인이라고 누구나 그러지 않는다.

80대 어른 B. 판사 출신으로 헌법재판소와 미디어 기관에서 큰일을 맡았다. 명예훼손 법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기념비적인 판결 이론을 구축했다. 20대에 법조인이 된 이후 60여 년 간 학술 논문과 전문 서적 저술에 힘을 쏟았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명예훼손법 분야에서 그의 저술은 태백산맥처럼 우뚝하다. 80대에 접어든 후에도 그의 학업은 여전하다.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투고하고, 익명의 젊은 연구자들의 심사를 감당한다. 지난해 '신명예훼손법'이라는 책을 출판한 뒤, 자신이 책에서 주장한 이론을 격의 없이 비판하라며 전문가들의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정기적이다. 면전에서 자신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새파랗게 어린' 연구자의 육성을 '허허'하며 듣거나, 불끈불끈 붉어지며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그렇다면 내 책의 어디를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까"라고 되묻는다. 충만함에도 자기 지식 앞에 겸손하다.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면서, 토론회의 비용 일체를 부담하고 그날의 발제자에게 연구비를 건넨다. 전문직에 종사했던 노인이라고 누구나 그러지 않는다.

70대 어른 C. 검사 출신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다. 검사 시절 그의 수사 역량, 책임감, 리더십은 조직은 물론,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시사 종합 월간지 '신동아'는 2010년 한국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특수 및 형사 분야 전문 변호사 11인에 그를 꼽았다. 변호사로서 30여 년 간 일하며, 처음의 다짐을 굳건히 지킨다. 변호할 이유가 있는 사건을 변호하고, 의뢰인에게 헛되이 거짓말하지 않으며, 서류를 직접 작성하고, 몇 번이 되었든, 어디에 있든 직접 교도소로 의뢰인을 찾아가 그를 면담한다. 결과와 관계없이 의뢰인으로부터 신뢰와 감사를 받는 이유다. 그의 독서량은 추적을 불허해 가늠하기 어렵다. 쉼 없이 읽고 익힌다. 어려운 주변을 섬기고 베푸는 일은, 소리가 없어 시간이 한참 지나야 겨우 그 흔적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를 영입하려는 정치권의 유혹이 컸을 터인데, 오롯이 법조인의 삶을 산다. 70대를 노인이라고 부르기 민망하지만, 좋은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곧은 화살표 법조인을 둔 사회는 든든하다.

60대 D.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헌법학 전공 교수다. 20년 전 뛰어난 연구 저술을 인정받아 큰 학술상을 받았다. 언론사에서 법조팀장을 역임한 뒤, 미국에 유학해 헌법학자가 되었다. 언론기관의 책임자와 공영방송사 이사, 큰 학회의 학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정도의 이력을 갖추면 적지 않은 학자들이 학술 활동을 접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일관되게 연구 질문을 던지고, 동료들과 밤새 토론하며, 논문을 쓰고, 전문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60대는 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어른임이 분명하다.

한 달여 정도, 오로지 길가의 화살표만 보고 이국의 이천리를 걸었다. 화살표가 선명해 새벽이건 밤이건, 비가 오든 눈보라가 치든 길을 잃을 염려가 없었다. 화살표의 힘은 컸다. 따라가기만 하면 길이 되었다. 앞서 걷는다고 하여 모두가 뒤에 오는 이들의 화살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화살표만 보고 걷는 순례자들처럼,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자신의 뒷모습을 화살표 삼는 삶을 사는 어른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부디 정치와 법과 언론과 상업적 광고가 화살표 어른이 될 사람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염원한다./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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