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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선 편집부장 |
딸이 뱃속에 있던 그해 여름.
어머니는 지독한 임신중독과 선천적 혈액부족으로 치열한 '삼복더위 만삭'을 보내야만 했다. 그 때문일까. 아직도 여름만 되면 '이유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곤 하신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죽음의 문턱'. 그것은 바로 생명을 만드는 산고의 시간이다.
시간이 꽤 흘렀건만 딸의 생일날이면 해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기다리시는 어머니, 언제부터인가 소화제를 챙겨 먹어야만 했다.
먹고살기 힘들다는 핑계아래 제대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불효 때문인지, 혹은 어머니의 생일 밥상 만큼은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거꾸로 시간여행을 하듯 어른이 된 딸도 푹푹찌는 8월에 딸을 낳았다. 그리고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산고와 기다림의 모정을 배우고, 같은 마음으로 자식의 생일 밥상을 차린다.
무자식이 상팔자라 했던가? 365일중에 364일이 그러할지도 모르겠다. 허나 단 하루만큼은 태어나 가장 잘 한 일이 '부모'가 된 것이라 생각해 본다.
1972년 8월, 만삭의 어머니가 기억하는 여름은 어땠을까. 대홍수의 참변을 겪었던 서울은 60년이래 최악의 수마로 치명상을 입었고 충주댐이며 대청댐 인근 저지대 주민들은 고도를 높여 이사를 해야만 했다.
막 찜통더위가 시작되던 그해 7월 4일엔 분단 반세기 만에 외세의 간섭 없는 자주적 해결, 평화적 방법의 통일, 민족적 대단결을 원칙으로 하는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43년이 지난 2015년 8월, 제 15호 태풍 고니가 강풍과 비를 한반도 전역에 뿌려대며 동해안으로 빠져나갔고 북한의 지뢰 도발과 한국의 대북 심리전 방송으로 전쟁위기까지 몰렸던 남북관계가 고위급 회담의 극적 합의로 '남북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며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43년전으로 또 다른 타임머신을 탄 듯 비슷한 이슈들,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그 속에서 역사는 되풀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며칠 후 9월 1일이면 중도일보의 64번째 생일이 돌아온다.
1951년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새 생명을 키운 중도일보는 광복의 기쁨과 함께 창간된 지역 대표신문이다. 통폐합과 휴간의 아픔을 겪고 자리잡은 중도일보의 구성원으로서 기특하고 장하다는 다소 낯간지러운 칭찬과 함께 자부심을 가져본다.
또한 365일중에 364일이 고단한 기자생활이지만, 단 하루만큼은 태어나 가장 잘 한일이 중도일보의 기자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어머니의 딸로 그리고 내 딸의 어머니로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노력하듯, 10년 아니 100년후의 후배들 또한 같은 마음으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소망해 본다.
아침일찍, 모처럼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감사와 배려가 가져오는 무한대의 기쁨을 배우는 하루. 이제야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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