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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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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추웠던 12월, 그래도 견딜 수 있었던 건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아침, 머리맡에 찍혀있던 큼지막한 발자국이 산타할아버지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 그날부터 부모님은 더 이상 딸의 선물을 준비하지 않으셨다.
시간이 흘러 또다시 성탄절이 돌아왔다.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기독탄생일 이라는 빨간날은 그닥 설레거나 흥겹지 않은게 사실이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간간히 들리는 캐럴송도 예전처럼 요란하지 않다.
2015 세밑,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성탄절의 추억따윈 결코 응답하지 않는다.
심화되는 취업난 속 3포세대, 5포세대를 넘어 특정 숫자가 정해지지 않고 여러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지금, 20대 신입사원에게 명퇴하라며 구조조정의 칼날을 들이대는 대기업 이야기를 듣게 된다. 끝 모를 침체일로의 길을 걷는 한국경제가 무섭다.
젊은 청춘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들은 10년, 20년을 내다보며 미래를 설계하고 싶지만 회사와 윗 사람들은 단 1~2년간의 성과만을 들이대며 비정규직과 같은 마인드를 강요하고 있다”고 말이다.
죽을만큼 열심히 일했지만 활짝 웃지 못하는 현실에 많이 갑갑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맘때쯤이면 가슴 따뜻해지는 스토리도 있다. 먹고살기도 어렵다고 입을 모으는 불황의 시대, 불신과 냉소로 가득한 세상을 녹이는 기부천사들의 선행이 그것이다. 얼마 전 난민가정 출신의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 CEO이자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딸에게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하기 위해' 52조 원에 달하는 페이스북 지분 99%를 기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스케일 부터 다른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에 마음이 말랑말랑해 졌다.
사랑 나눔은 덧셈이 아닌 곱셈 효과를 가져 온다고 하지 않는가.
대전에서도 구세군 냄비에 1000만 원짜리 봉투를 넣고 사라진 익명의 60대, 그리고 며칠후엔 얼굴없는 천사가 대전공동모금회에 2000만원을 기탁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선행을 베푸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아직은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국내 대표적인 고액 기부자 모임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중 익명 기부자가 13%에 달해 전문직과 함께 두 번째로 비중이 크다고 한다. 아무도 모르게 나눔의 기쁨을 누리겠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고액기부의 사실이 알려지면 지역사회와 언론들의 관심이 집중돼 '나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이 밀려든다고….
역시, 좋은일은 쉽지 않다. 선행조차 숨겨야 하는 '복면천사'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며 고개가 끄떡여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기 어려운 암울한 때일 수록 지갑이 아닌 마음을 여는 행위가 필요하다.
늘 추운 12월, 또 다시 돌아온 성탄절.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마법과 같은 시간, 기적이라 말하고 싶은 순간, 떠들썩한 웃음과 붐비는 거리, 감사가 넘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따뜻한 체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하루가 되길 소망해 본다.
모두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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