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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선 편집부장 |
궁금했어요. 사람들이 왜 나를 피하는지…. 지난번엔 택시를 타고 왔다는 말에 슬그머니 입을 가리고 손을 감추더군요.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들이 저 혼자만의 잘못만은 아닌데 말입니다.
반가운 빗방울과 함께 맨얼굴로 세상의 문을 열어봅니다.
굿바이 마스크. 아듀 메르스. 제발….
산과 들이 지독한 갈증에 열받았던 6월, 대한민국은 중동지역에서 습격한 메르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특히 대전에서는 첫 3차감염, 슈퍼 감염자 발생, 첫 부부사망 등 병원 학교 지자체 시민 모두 함께 고열을 앓았다.
사실 처음엔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가 일으키는 호흡기 질환은 누구나 한 두 번쯤 감염될 수 있는 흔한 바이러스라고 생각했다. 혹자는 메르스를 독감과 비교하며 두려움이 과장됐다고 말하고, 저명한 사회지도층이 나서서 건강한 사람은 감염돼도 죽지 않는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곧 특별한 질환이 없었던 40·60대 환자가 사망하거나 평소 건강했던 30대 의사와 경찰관이 위독한 상태에 이르는 것을 지켜보며 혼란에 빠지고 만다.
어떤 확진자도 '내가 메르스에 걸릴 것'이라 예상하지 않았으리라. '만약 재수가 없다면 이렇다 할 약이 없는 병에 내가 걸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는 백신 따위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참 속터지는 건, 손 댈 수 없이 빨리 퍼지는 무능과 불신의 바이러스다. 나쁜 건 너무 빨리 옮는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데 10년이 걸린다면 미움을 전달하는 건 5초면 충분하다.
안이한 대응으로 조기 진압의 기회를 날린 정부와 보건당국은 확진자 수가 50명을 넘어설 때까지 병원 이름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사이 퍼져나간 근거 없는 루머와 괴담에 '불신의 시대'가 찾아왔다.
빛의 속도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늘어났고 입과 코를 가린 사람들이 늘어선 거리는 마치 살아남기 위해 무능한 정부에 항의하는 전사들과 같았다. 각종 모임과 행사는 취소됐으며 지역경제는 시들어가는 꽃처럼 고개를 숙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메르스 포비아(Phobia·공포증)' 혹은 '불신 DNA'를 증식시켜 인간을 점령하려한 꼴이다.
오랜 가뭄 끝 내린 비처럼 메르스 확산세가 한 풀 꺾이나 싶었건만 '산발적 확진'에 보건당국은 메르스 진정세 판단을 유보했다. 대전에선 메르스 완치 환자의 퇴원과 함께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던 60대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으로 희비가 엇갈렸다.
이와함께 26일 0시을 기해 건양대병원과 대청병원이 '코호트(발생 병동을 의료진 등과 함께 폐쇄운영)격리'를 해제해 너무 빨리 안심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절망과 불안에 빠진 국민들이 대통령과 새로운 국무총리에 바라는 건 뭘까. 최후의 한명까지도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메르스 종식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책임감을 보여주길 바라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다가 국가재난으로까지 전염된 '바이러스의 역습'에서 얻은 교훈이 단 한개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손을 깨끗이 씻는 것 외에 무엇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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