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존엄사를 준비하자

  • 오피니언
  • 의창(醫窓)

[의창] 존엄사를 준비하자

  • 승인 2015-10-12 14:25
  • 신문게재 2015-10-13 22면
  • 김호택 금산 연세소아과병원장김호택 금산 연세소아과병원장
▲ 김호택 금산 연세소아과병원장
▲ 김호택 금산 연세소아과병원장
송전무 원장은 나에게 아버지와 같은 분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폐를 수술할 수 있는 흉부외과 의사였고, 금산 유일의 미국 유학과 대학교수 경력을 가진 개원의이자 교회 장로였으며, 나에게는 대학 대선배였다. 50년 전에 금산로타리클럽을 만들며 초대회장을 역임하셨고, 나를 로타리의 길로 이끌어주신 어른이었다.

95세까지 매일 테니스를 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가졌지만 세월을 이길 수는 없어 96세부터 심장이 약해지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셨다. 심장이 피를 돌게 할 힘이 빠져 몸이 붓고 숨이 차오르면 입원해서 치료하다가 좋아져 집에 돌아오면 다시 숨이 차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병마에 지친 송원장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그만 나를 보내줘.” 그 때 모습이 떠오르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선배님 쾌유하시라'며 정성을 다해 주신 김희수 총장과 건양대병원 의료진에 감사드린다.

며칠 전에 어릴 적부터 친구인 신화식 사장의 어머니 정혜자 여사가 돌아가셨다. 10여년 간 많은 지병으로 고생하셨지만 결국 폐렴으로 돌아가셨고, 마지막 2주 정도는 숨이 많이 차는 고통을 겪으셨다고 한다. 인공호흡기는 달지 않겠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산소를 입으로 1분 당 15씩 투입하며 견디셨다고 하니 그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족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송전무 원장과 정혜자 여사의 마지막 고통을 덜어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행 법규는 생명의 존속 여부에 대해서는 당사자 아닌 그 누구의 의사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10여 년 전에 일어난 소위 '보라매병원 사건'이 법적인 판단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보라매병원 사건이란 치료비가 없어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남편을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겠다는 부인을 용인한 의사에게 실형을 내린 일을 말한다.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집으로 보낸 것은 '살인행위'라는 것이 검사의 기소 이유였다. '각서'를 받은 것도 법정에서 용인되지 않았고, 결국 집행유예로 결말을 맺었지만 법은 본인의 의사가 없다면 누구도 생명을 빼앗을 권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살 때 잘 살고 싶은 것만큼이나 죽을 때에도 잘 죽고 싶다.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살아온 인생을 회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멋진 한 마디와 함께 '슬퍼하지 말라'는 위로의 말을 거꾸로 하면서 죽고 싶다.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기가 매우 어렵다. 많은 고통 속에서 숨을 거두거나 '자고 나니 돌아가셨더라'는 아쉬움을 토로하는 가족들을 수도 없이 보게 된다. 돌볼 가족의 손이 부족해 요양병원에 모시면서 가족 간 불화가 생기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외국에서는 '존엄사'를 인정하는 사례가 제법 있다고 한다.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제도다. 회생의 기미가 없는 환자가 자신이 선택한 시간에 보고 싶었지만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 얼굴들을 보면서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뜻은 잘 알지만 시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는 소지가 다분히 있다는 우려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머리를 맞대고 중의(衆意)를 모으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연구하다보면 우리 실정에 맞는 방법도 생길 것이다.

사는 방식과 살아온 길에 따라 누구나 다른 생각을 하며 사는 세상이지만 '죽는 일'만은 평등하고 동등한 문제이기에 얼마든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잘 죽고 싶다. 존엄사를 허(許)하라!

김호택 금산 연세소아과병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가원학교 건물 흔들림 현상에 학생·교사 대피…경찰 조사 중
  2. [기고] 충청도 정신의 영원한 정치지도자 JP!
  3. [종합] 과밀 특수학교 가원학교, 건물 흔들림으로 학생 대피 후 귀가
  4. 항우연·천문연 경남 사천 이전? 연구자들 "말도 안 되는 소리"
  5. 장마철 앞두고 적십자사 구호물품 준비…‘유비무환’
  1. [사설] '해수부 결의안' 채택 못한 세종시의회
  2. [사설] 대전영화대전, 지역 영화 생태계 마중물 되나
  3. 수능 전 마지막 모의평가 9월 3일 시행… N수생도 응시 가능
  4. 대전문화재단 ‘AI&문화예술’ 포럼 개최… “AI, 예술 창작의 미래를 열다”
  5. [시작된 장마, 준비는?] 금강 홍수취약 227곳 전국 최다…"지역협의체로 보완"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집권초 격랑빠진 충청… 흔들리는 행정·과학수도

李정부 집권초 격랑빠진 충청… 흔들리는 행정·과학수도

이재명 정부 집권 초기 충청권 미래성장 동력인 세종 행정수도와 대전 과학수도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부 차원의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추진에 더해 대덕연구개발특구내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천문연구원을 경남 사천으로 빼내 가려는 PK 정치권 일각의 움직임까지 표면화되면서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셈법이 깔린 격랑에 충청권이 휩싸이는 모양새인데 지역 핵심 자원을 지키기 위한 총력 대응이 시급하다. 국민의힘 서천호(경남 남해·사천·하동) 의원은 17일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항우연과 천문연을 경남 사천으로 이전하도록 하는 '우주항공청..

코스피 3000선 코앞인데…숨 고르는 지역 상장사
코스피 3000선 코앞인데…숨 고르는 지역 상장사

3년 5개월 만에 2900선을 돌파한 코스피 지수가 3000선 문턱에서 일주일 째 숨을 고르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악재도 있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자본이 국내 시장에 지속 유입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 신호로 보인다. 코스닥 시장에 많이 분포한 지역 상장사들의 주가도 현재는 단기 급등에 따른 피로감을 일부 해소하는 분위기다. 18일 코스피 지수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0.74%포인트 오른 2970.40으로 집계됐다. 오전 거래 시간 2980선까지 오르며 기대를 모았지만, 3000선 돌파는 다음으로 미뤘다. 새 정부 출범에..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39. 대전 서구 관저동 일대 치킨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39. 대전 서구 관저동 일대 치킨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영면 하소서’ 6·25 전사자 발굴유해 합동안장식…‘영면 하소서’

  • 전기차 화재 대응 ‘하부 관통형 소화장비’ 시연 전기차 화재 대응 ‘하부 관통형 소화장비’ 시연

  • 장마철 앞두고 적십자사 구호물품 준비…‘유비무환’ 장마철 앞두고 적십자사 구호물품 준비…‘유비무환’

  • 여름철 해충 퇴치 여름철 해충 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