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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미선 편집부장 |
'용비어천가의 첫 구절속에 나오는 육룡은 세종위의 6대선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을 뜻하는데 부패한 고려를 버리고 조선을 건국하게 된다….' 사실 아이가 써온 글에는 드라마 줄거리와 출처불명의 내용들이 심하게 섞여 있어 실제 역사와의 괴리를 설명해 주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권력을 잡기 위해 신진사대부 세력의 수장인 정몽주를 살해하고 아버지인 태조를 위협하며, 형제들을 살해해 왕위에 오른 인물이 태종이야”라는 설명에 아이가 되묻는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드라마 주인공이 될 수 있나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일이라면 어떠한 악역도 마다하지 않았던 태종 이방원으로 인해 조선은 탄탄한 기반위에 출발할 수 있었고 뒤를 이은 세종은 덕분에 강력한 왕권을 지닌 왕이 된다. 역사는 어쩔 수 없는 승리의 기록인가. 결국 승리한 자가 역사를 만들 수 밖에 없는거겠지….
설명이 어렵다. 부모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2015년 10월. 이상한 이념 전쟁터에서 국민들은 찬성과 반대를 외치며 치고 받고 있다. 바로 '국정 역사교과서' 논쟁이다. 다양성이냐 단일화냐를 넘어 왼쪽이냐 오른쪽이냐, 말도 안되는 색깔논쟁으로 변질돼버린 상황속에 진보와 보수 모두 스스로가 만든 프레임에 갖혀 허우적 거리는 꼴이다.
논쟁에 참여하기에 앞서 역사 교과서를 왜 바꾸자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반대하는 측의 이유는 무엇인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국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부와 여당측 입장은 이러하다. 일부 교과서의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한 찬양적 서술, 좌파 역사학계의 이념편향이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나와 있는 8종의 역사교과서 중 어차피 학교별로 하나만 채택되기 때문에 8종이든 80종이든 학생입장에서는 단 하나의 교과서로 배우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정화로 인한 '다양성 파괴' 주장에 반박하고 있다.
반면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간단하다. 전세계 주요 선진국, 정의와 도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에서는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지 않는다는 점, 사실 그대로의 팩트를 강조한다. 교육부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가운데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국가는 터키, 그리스, 아이슬란드 등 3개국 뿐이라고 밝힌바가 있다.
정치적 의도는 버리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은 그냥 생긴말이 아니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의 친일 행적을 지우고 유신정권과 독재 그리고 쿠데타를 미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사 왜곡이나 미화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정연설에도 불구하고 많은 교사들과 학자, 학부모들이 왜 국정화 결정에 반대하는지 새누리당과 대통령은 곰곰이 헤아려 보아야 할 것이다.
472년이라는 단일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 실록'이 후세들에게 정확성과 객관성이 매우 뛰어난 기록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기억하자.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진실만을 쓰도록 했으며 임금이라고 해도 절대 열람 할 수 없었던 기록, 사관(史館)들이 권력에 휘둘려 내용을 누설하거나 수정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형벌을 적용하기도 했다. 역사는 세월이 검증하고 기억하는 것이지 정부나 정치인이 주무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꺼지지 않는 불인냥 논란은 갈수록 뜨거워 지고 있는데, 정부와 여당은 2017년 중·고등학교 한국사 국정화를 밀어붙일 모양이다. 이대로라면 이름대로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된다.
고미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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