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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
스물 대여섯가지의 개선 및 협의사항이라 적혔던 그 내용들은 이미 완료한 설계의 세세한 마감에 대한 변경이었다. 건물주변 바닥의 깨끗한 화강석은 싸디 싼 고압블록으로, 계단실의 목재 손스침이 있는 철제난간과 옥외 발코니의 기다란 강화유리 난간은 볼품없는 스테인리스 기성품으로, 옥외 테라스가 있는 최상층의 공간감을 위한 층고는 일반층의 층고와 같게 낮추자는 등의 내용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주변에서 보아 온 일반 상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시공사가 이렇게 개선사항을 제시한 이유가 '건축주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옹색한 답변 속에 담겨 있는 건축에 대한 무지함이 필자를 당황함을 넘어 슬프게 만든 것이다.
건축에는 일상적인 규모의 씀씀이를 넘어서는 자금이 필요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건축주는 자금준비에 부담을 갖는 경우가 많아 언뜻 보면 시공사의 제안에 감사한 마음으로 쉽게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건축주는 자신의 건축물의 수준을 떨어뜨리면서 공사비를 낮추는 것이고, 시공사는 공사비가 낮아질 뿐 가져가는 이윤의 폭은 그대로인 것이다. 그러면 시공사는 왜 이런 제안을 하게 되었을까?
필자는 크게 두가지의 이유로 분석하게 되었다.
첫째는 시공의 용이성이다. 수십 채의 건축경력을 자랑했지만 대표작은 무엇일지, 일상적인 마감에 대한 익숙함이 새로운 마감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건축에 대한 심미안의 부족일 듯 싶다. 단순 경제적 논리 속에 묻혀있는 '아름답고, 멋진' 건축물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건축은 단순한 재테크이거나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다.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담아야 하고, 그 삶을 반영하는 공간의 구성을 통해 자신만의 공간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공간의 위상과 제한을 통해 안과 밖을 들여다보고 내다보며 주변의 환경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장치여야 한다. 더 나아가 그 지역의 질서에 순응하거나 새로운 질서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은 싫증나면 버릴 수 있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기에 더욱 신중한 접근과 철저한 분석을 통해 다듬어지고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함께 하는 건축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다. 건축은 관광하면서 느끼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내 삶이 담겨있는 내 집, 내 직장, 내 동네, 내 도시가 그 대상이며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 건축과 도시는 그 정체성을 갖게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대전광역시건축사회와 유성구청이 지역사회의 발전과 교육 진흥을 위해 인적·물적 자원의 공유를 위한 업무 협약식을 체결했다.
우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아름다운 건축물 탐방을 진행해 청소년들의 진로 탐색 활동을 지원하고, 미래의 건축주이며 건축사가 될 어린이들을 위한 창의 건축교실과 소외 계층에 대한 무료 집수리봉사, 저소득층 모범학생 장학금 지원 등의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건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지역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며, 결국 사람의 행위는 사람을 위한 것임을 자각케하여 서로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알파고가 가져온 충격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는 것은 '인간적인' 것들을 잃지 않고 유지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느껴며,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만끽해야 할 것이다. 자, 가족의 손을 잡고 봄 햇살을 받으며 건축산책을 해 보시는 것이 어떨지 권해본다.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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