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 세상 모든 일곱살에겐 슈퍼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 문화
  • 문화/출판

[맛있는 책] 세상 모든 일곱살에겐 슈퍼히어로가 있어야 한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 2016

  • 승인 2016-07-21 14:03
  • 신문게재 2016-07-22 12면
  • 이은희 안산평생학습도서관이은희 안산평생학습도서관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

▲ 이은희 안산평생학습도서관
▲ 이은희 안산평생학습도서관
눈썹이 하늘로 한껏 치켜 올라간 불퉁한 할아버지의 얼굴이 표지를 장식했던 '오베라는 남자'를 기억하는가? 그를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그의 신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표지의 파란 눈 여자아이를 보면, 나도 모르게 오베 할아버지의 얼굴이 겹쳐지며 프레드릭 베크만의 반어적인 위트가 그리워 책을 들게 되지 않을까 싶다.

▲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 2016
▲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 2016
전혀 7살 같지 않은 손녀 엘사와 결코 77살 같지 않은 할머니가 상상과 현실을 오고가는 프레임에 넣어버린 한없이 인간적인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엘사가 학교에서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가장 좋아하던 그린피도르 목도리가 찢어진 날 동물원의 담벼락을 넘는다. 엘사의 기억에서 그날이 찢어진 목도리가 아니고 할머니가 동물원에 무단침입을 하고, 경찰서에 잡혀가고, 병원에서 도망친 날로 남도록 하기 위해서. 너무 똑똑해서 친구들에게는 따돌림을 당하고 어른들에게도 이해를 받지 못했던 주인공은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깰락말락나라의 여섯 개 왕국을 넘나들며 사랑하고(미아마스), 슬퍼하고(미플로리스), 꿈꾸고(미레바스), 도전하고(미아우다카스), 춤추고(미모바스), 싸운다(미바탈로스).

여섯 개 왕국의 이름에 담긴 비유와 은유가 소설 전편에 흐르고, 판타지 왕국의 등장인물들은 할머니의 편지를 전달하며 현실세계와 이어진다. 할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손녀에게 남긴 과제는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하는 편지들이었다. 둘만이 알 수 있는 암호와 상징으로 전달할 사람을 찾고 그렇게 전달된 모든 편지에는 “미안하다”는 말과 엘사를 부탁하는 당부가 담겨 있다.

한 아파트에서 살며 자기 곁에 숨 쉬던 사람들이 할머니가 만들어 놓은 여섯 왕국의 주인공들로 탈바꿈하고,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그들의 아픔과 과거가 다가오며 소녀는 현실 속에서 사랑과 용서를 배운다.

젊은 시절 의사로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이어온 할머니의 선행은 죽은 후에도 사람들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여섯 번째 나라 '미바탈로스(싸운다)' 위에 새로 새워진 일곱 번째 왕국 '미파르도누스(용서한다)'는 어쩌면 할머니가 남긴 마지막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게는 슈퍼히어로가 있어야 하고 엘사에게는 할머니가 가장 특이한 슈퍼히어로였으며, 현재도 미래에도 엘사는 모든 특이한 아이들의 슈퍼히어로로 남으려고 한다.

평범하지 않지만 한편으론 지극히 평범한 8살이 곧 되려고 하는 엘사를 바라보며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슈퍼히어로를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다. 간접경험이나 대리만족, 정서적 치유라는 거창한 이야기를 떠나 훈훈한 소설을 읽는 시간은 훈훈하고, 달달한 소설을 읽는 시간은 달콤하며, 슬픈 소설을 읽는 시간은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소설은 촌철살인의 대사와 행간을 넘나드는 따스함이 있고,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음에도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아듣겠는 희한한 공감이 존재한다.

“완벽하게 사실주의적이지도 않고, 전적으로 가짜라고도 볼 수 없는 이야기가 가장 훌륭한 이야기이다”라는 지문처럼 말이다.

책에도 무게가 있고, 읽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창구에도 크기가 있듯이 내 몫으로 비워진 창구로 조그마하지만 밝은 한줄기 빛이 들어오게 하든, 넓게 퍼지는 안온한 빛이 들어오게 하든 그 선택은 언제나 독자들에게 있다. 모든 단어와 문맥에 의미를 파악하고 뒤에 숨은 뜻까지도 밝혀야 할 것처럼 교육받았던 관성에서 벗어나 그냥 술술 느낌 충만하게 읽어보기에 편한 책으로 권해본다.

이은희 안산평생학습도서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건양어린이집 원아들, 환우를 위한 힐링음악회
  3. 세종시체육회 '1처 2부 5팀' 조직개편...2026년 혁신 예고
  4. 코레일, 북극항로 개척... 물류망 구축 나서
  5. 대전 신탄진농협, 사랑의 김장김치 나눔행사 진행
  1.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2. [교단만필] 잊지 못할 작은 천사들의 하모니
  3. 충남 김, 글로벌 경쟁력 높인다
  4. 세종시 체육인의 밤, 2026년 작지만 강한 도약 나선다
  5. [아이 키우기 좋은 충남] “경력을 포기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수기업이 보여준 변화

헤드라인 뉴스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대통령 세종 집무실 완공 시기가 2030년에도 빠듯한 일정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재임 기간인 같은 해 6월까지도 쉽지 않아 사실상 '청와대→세종 집무실' 시대 전환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세종 집무실의 조속한 완공부터 '행정수도 완성' 공약을 했고, 이를 국정의 핵심 과제로도 채택한 바 있다. 이 같은 건립 현주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어진동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가진 2026년 행복청의 업무계획 보고회 과정에서 확인됐다. 강주엽 행복청장이 이날 내놓은 업무보고안..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세종시의원 2명 확대...본격 논의 단계 오르나

'지역구 18명+비례 2명'인 세종특별자치시 의원정수는 적정한가.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19+3' 안으로 확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인구수 증가와 행정수도 위상을 갖춰가고 있으나 의원정수는 2022년 지방선거 기준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16+2'로 적용했다. 이는 세종시특별법 제19조에 적용돼 있고, 정수 확대는 법안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12일 세종시의회를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명분은 의원 1인당 인구수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수는 2018년 29만 4309명, 2022년..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푸르게'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수상 4개 기관 '한뜻'

금강을 맑고 푸르게 지키는 일에 앞장선 시민과 단체, 기관을 찾아 시상하는 제22회 금강환경대상에서 환경과 시민안전을 새롭게 접목한 지자체부터 저온 플라즈마를 활용한 대청호 녹조 제거 신기술을 선보인 공공기관이 수상 기관에 이름을 올렸다.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과 중도일보가 공동주최한 '제22회 금강환경대상' 시상식이 11일 오후 2시 중도일보 4층 대회의실에서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과 신동인 금강유역환경청 유역관리국장, 정용래 유성구청장, 이명렬 천안시 농업환경국장 등 수상 기관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자전거 안장 젖지 않게’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