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 가시의 아름다운 역설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 가시의 아름다운 역설

  • 승인 2017-05-09 16:09
  • 신문게재 2017-05-10 22면
  • 김정숙 충남대 교수김정숙 충남대 교수
▲ 김정숙 충남대 교수
▲ 김정숙 충남대 교수
책장에서 책을 꺼내는데 검지손가락에 나무가시가 따갑게 박혔다. 가시를 빼낸 자리에 밴드를 붙인다. 오래된 책장이 코팅을 벗고 제 본성을 드러내고 싶은 것일까. 생각은 이어져, 어릴 적 탱자나무 가시에 가닿는다. 예쁘고 향기 나는 노란 탱자를 따려고 작은 손을 넣으면 가시에 손등이 찔려 피가 살짝 솟기도 했다. 조심해도 늘 가시에 찔리곤 했는데, 작은 새들은 가시나무를 무시로 드나들어도 어떻게 찔리지 않을까 신기해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니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로 시작하는 노래가사도 떠오른다. 켈트족 전설 속의 ‘가시나무새’는 평생 긴 가시나무를 찾아다니며 쉬지 않고 날다가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그곳에 앉아 가시에 심장이 찔리며 죽어간다고 한다. 죽기 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하여 생긴 비극적인 이야기는 소설, 영화, 드라마, 대중가요, 연극 등의 소재가 될 만큼 인생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가시는 상처내고 고통을 주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우리는 심하게 아프거나 힘들 때, 사랑하는 것들과 이별했을 때 가시에 찔렸다고 말한다. 가시 돋친 말을 하거나 눈엣가시의 시선으로 다른 이를 아프게 할 때도 있다. 마음이 불안하고 강퍅할수록 ‘찌르고, 박히고, 돋치는’ 단어를 만난 가시는 더 매서워진다. 뾰족한 가시는 통증의 감각을 불러온다. 가시는 때로 날카로운 칼이나 못으로도 비유되곤 한다. 가장 심할 경우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는 표현도 쓰인다. 살다보면 마음에서 자기도 모르게 못 같은 것이 삐죽 솟을 때가 있다. 이것은 남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결국 스스로를 상처 내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생각해 보면 가시를 세우는 일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남을 경계하거나 공격하는 본능과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식물이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가지나 잎이 뾰족하게 변태한 것처럼, 고슴도치의 가시나 장미의 가시도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다. 그러나 때로 가시의 말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황폐해진 스스로를 보며 더 큰 고통으로 의기소침해지고 자존감도 저하되어 자신까지 해치게 된다. 이럴 때 가시는 상처와 보호라는 이중성을 지닌다.

그 방향을 어디로 향하는가에 가시의 가치가 놓일 것이다. 나무들은 바람과 번개와 같은 것들이 만드는 상처들로 옹이가 생긴다. 그러면서 나무는 성장한다. 나이테는 상처의 훈장이다. 사람도 관계 안에서 상처를 받지 않으며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가시에 찔리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할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언제 어디서든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며 조금씩 강해질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가시가 왜 박혔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나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바로보아야 하고, 상대방은 왜 그랬는지 그의 입장에서 헤아리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시를 뺀 자리가 곪지 않도록 소독약을 바르고 치유를 해야 한다. 상처 없는 삶이 없듯이 상처 난 곳을 치유하는 힘도 우리에게는 있다.

내겐 인상 깊은 하나의 조각상이 있다.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콩고강 중앙아시아 예술’ 전시 중 ‘은카시 은콘디’가 그것이다. ‘은카시 은콘디’는 ‘강한 힘을 가진 조각상’이라는 의미인데, 이 부족은 조각상에 칼날이나 못을 박음으로써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강한 힘은 역설적으로 강한 자극이 있을 때 생겨난다. 지금 칼날 같은 상처를 느끼고 있다면 그것을 이겨낼 지혜도 있을 것이다. 부드러운 강함, 엷은 미소를 지닌 그 작은 조각상이 전해주는 주술의 힘은 고통으로부터 생성된 것이어서 더 공감했는지도 모른다.

5월 10일 새 대통령이 선출된다. 이 결과에 이르는 동안 생각과 관점이 달라 상처 내고 상처 받은 일이 많았을 것이다. 내가 건넨 선의와 걱정의 말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는 가시였을지도 모른다. 가시를 부드럽게 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내 몸을 뚫고 나오는 날카로운 것들을 다스리는 정성을 쏟는다면 가능할 것이다. 장미가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품을 수 있도록 본문을 다한 가시는 아름답다. 장미의 계절에 치러진 큰 ‘선택’[大選]이 큰 ‘선함’[大善]으로 향해가는 시작임을 믿는다. 가시가 우리의 모습을 성찰하는 시금석으로 쓰인다면, 아름답고 성숙한 인간다움은 더욱 향기롭게 꽃피울 것이다.

김정숙 충남대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세종시, 전국 최고 안전도시 자리매김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