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상인 대덕대 총장 |
티찌아노 테르짜니가 죽음을 앞두고 아들과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책 『네 마음껏 살아라』를 읽었다. 말기암으로, 아쉬울 수도 있는 66세에 인생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는 티찌아노에게, 부인이 “누가 10년을 더 살 수 있는 약을 준다면 받겠어요?”라고 물으니 “아니! 나는 그런 약 안 먹는다. 10년이나 더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자연을 봐라. 숲에서 지저귀는 뻐꾸기 소리, 나뭇잎 사이를 파고드는 바람소리… 독특한 생명으로 가득 찬 협주곡이지!”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죽음과 더불어 잃어버릴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착각했던 것들, 즉 교수, 총장, 변호사 등 우리의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고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들이 모두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최진석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의 삶은 과거의 성인이나 관습이 만들어 놓은 보편적 이념이나 윤리기준에 맞추어 살지 말고 개별적 주체로서 내 스스로가 되겠다는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미국사업가가 멕시코에 있는 조그만 어촌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항구로 들어온 작은 고깃배에서 다랑어 몇 마리를 든 젊은 어부가 걸어 나오자 사업가가 물었다. “물고기 잡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소?” 서너 시간 남짓 걸렸다는 답변에 몇 시간 더 하면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을 텐데요 하니, 어부 왈, “이것으로도 우리가족에게 충분해요.” 사업가가 정색을 하고 말한다. “그럼 하루 서너 시간 일하고 남는 시간엔 뭘 하오?”라고 물으니, “아이들이랑 놀아 주고, 늦잠도 자고, 마을에 나가서 친구들과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하지요”라고 답한다. “아니, 그렇게 귀중한 시간을 낭비한단 말이요. 나는 하버드대학에서 MBA공부를 했는데 당신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도록 도와주겠소. 우선 매일 고기 잡는 시간을 몇 시간 더 늘리시오. 그래서 돈을 모아 더 큰 배를 사고, 잡은 고기들을 중개상에게 팔지 말고, 직접 통조림 공장을 만들어 당신이 잡은 물고기는 물론 주민들이 잡은 물고기까지 가공해서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요.” 어부가 조심스럽게,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얼마쯤 걸리나요?” 하니 “한 20년 아니 운이 좋으면 15년 내에도 가능하겠지요.” “그러면 그 돈은 어디에 쓰나요?” 사업가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은퇴해서 경치 좋은 해안가 마을에 별장을 짓고 살면서, 손주들과 놀아 주기도 하고 늦잠도 자고, 마을에 나가서 술도 한잔하고 노래도 할 수 있지요.” 어부 왈, “그런 거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니요?”
지금 이 나이에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인생을 고민하는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간디처럼 “내 삶이 곧 내 메시지이다”라고 감히 이야기할 자신은 없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가슴 한켠에 감추어 두었던 묵은 화두 “나는 누구이며,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늘 참구해 오며 내 나름대로는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있다. 작년까지 33년 동안 공직자로 그리고 지금은 대학의 총장으로 일해 오면서, 이것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인가라는 회의가 들 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진실로 열정을 쏟아 가꾸려고 노력했던 것은 나의 삶 자체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주어진 이념과 가치에 목숨을 걸지 않고, 나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좋게 바꾸어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 티찌아노가 아들 풀코에게 건네는 마지막 조언이다. “너는 네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단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지.”
김상인 대덕대 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