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훌륭한 선택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훌륭한 선택

  • 승인 2019-01-09 11:13
  • 수정 2019-01-09 13:46
  • 신문게재 2019-01-10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190109_094900624
새벽 5시 50분. 간신히 택시를 잡았다. 차 시간에 늦을까봐 초조했는데 다행히 와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일찍 어디 가시나요?" 인상이 깔끔한 초로의 신사 분위기의 택시기사가 물었다. 통영에 물메기탕 먹으러 간다고 하자 택시기사는 반색을 했다. "나도 가족이랑 얼마전에 동해안 가서 그걸 먹었는데 아들놈들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라니까요." 우리는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얘기를 나눴다. 젊은 날 부산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그는 얼마전 부산에 가보고 많이 변해서 실망이 컸다고 한다. 예전에 동백섬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해운대 바닷물은 수정같이 맑았고, 부산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말도 사근사근했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전국 팔도 여행기를 실컷 얘기한 택시기사는 차에서 내리는 내 뒤통수에 대고 결정적 한방을 날렸다. "예수 믿어요. 예수 믿으면 천국 가요."

버스에서 창밖의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총총히 빛나는 별이 나의 길을 동행했다. 만지면 베일 것 같은 손톱달도 시커먼 산등성이에 걸려 있었다. 먼동이 트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남쪽 땅끝은 나에겐 해방의 공간이다. 해가 바뀌면 으레 통영이 그리워진다. 그것은 본능과도 같다. 어미 새가 벌레를 물고 둥지에 들어오면 눈도 안뜬 새끼가 입을 쩍 벌리는 것처럼 말이다. 윤이상과 박경리의 고향 통영. 먹을 것이 그득한 풍요의 해안도시. 몇 년 전 2월에 갔을 때 물메기탕을 찾았으나 너무 늦게 왔다며 한 겨울에 오라는 말을 들었다.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통영은 뺨을 스치는 바람의 온도가 달랐다. 살을 에는 시베리아 한파가 여기선 맥을 못추는 모양이다. 이젠 통영이 오랫동안 살아온 것처럼 익숙하다. 서호시장 사람들도 낯이 익어 고향 사람 같다.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배가 고파 눈에 띄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직 준비가 안됐다며 12시에 오라고 해서 다시 들르겠다고 하고 시장구경에 나섰다. 내륙에선 볼 수 없는 싱싱한 생선들이 좁은 대야 안에서 몸부림을 쳤다. 군함처럼 거대한 대구들은 배가 쩍 갈린 채 척추뼈를 드러내고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다. 갓 잡아온 생선들은 오늘 어느 식탁에서 생을 마감하려나. 물고기들의 숙명과 나의 숙명은 어떻게 다를까. 시장 끄트머리에 있는 은행에 돈을 찾으러 들렀다 시간이 남아 쉴 요량으로 소파에 앉았다. 전원생활을 다루는 월간지가 있길래 집어 들었다. 곽재구 시인의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그가 20대 중반에 쓴 '사평역에서'는 내 젊은날 부러움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킨 시였다. 기사에서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바람, 꽃, 강물, 시간, 사람들의 웃음소리, 음식냄새, 이것들이 다 내 도반이다."

다시 찾은 식당은 조용했다. 아무리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다른 데로 가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배낭을 내려놓고 TV를 켰다. 식탁 위에 놓인 뻥튀기도 갖다 먹었다. 뭐라도 먹어서 내 위장의 히스테리를 잠재워야 했다. 한참 후에 주인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오메, 진짜 왔네예." 물메기탕이 드디어 나왔다. '뱃놈'들이 먹을법한 냉면 그릇에 나올 정도의 양이었다. 맑은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했다. 뽀얀 물메기 살은 흐물거려서 씹을 새도 없이 꿀러덩 넘어갔다. 콧물을 훌쩍이며 국물까지 다 먹었다. 주인은 남편이 바다에서 잡아온 고기를 팔면서 식당도 했다. 모름지기 사내는 밖에 나가서 가족에게 먹일 먹을 거리를 물어와야 하는 법이다. 주인은 올해는 물메기가 안잡혀 값이 올랐다며 미안해했다. 작년 겨울엔 EBS '한국기행'에도 나왔단다. 주인 부부가 바다에서 고기 잡는 모습을 찍었다고 한다. 그 뒤로 여러 곳에서 출연해 달라고 연락이 왔지만 다 사양했다고 한다. 성가시고 하루 공치는 바람에 손해만 봤기 때문이다. "다음엔 회덮밥 먹으러 올게요."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1기 신도시 재건축 '판 깔렸지만'…못 웃는 지방 노후계획도시
  2. 밀알복지관 가족힐링캠프 '함께라서 행보캠'
  3.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
  4. 축산업의 미래, 가축분뇨 문제 해결에 달렸다
  5. 교정시설에서 동료 수형자 폭행 '실형'…기절시켜 깨우는 행위 반복
  1. 대전행복나눔무지개푸드마켓 1호점 공식 카카오톡 채널 개설
  2. 농산 부산물, 부가가치 창출...환경과 경제 살리는 동력
  3. 어촌서 재충전, '쉬어(漁)가요'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
  4. 챗봇 '해수호봇', 해양안전 디지털 혁신 이끈다
  5. 정부 부동산 대책 지방 위한 추가대안 마련 시급

헤드라인 뉴스


정청래 국회연설 "내란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

정청래 국회연설 "내란청산은 정치보복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9일 “남북이 다시 손잡는 핵심은 경제협력이고, 우리는 경제통일에 민생통일을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통일부가 2026년 남북협력기금으로 1조 25억원을 편성했다. 주목할 것은 경제협력사업 예산으로, 606억원에서 1789억원으로 세 배가량 증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 사업의 재개를 위해 필요한 도로와 폐수 시설 같은 복구와 구축 사업 예산”이라며 “남북이 힘을 합치면 경제 규모도 커지고 일자리도 늘어나고, 동..

국내 증시 조정에도…충청권 상장사는 `선방`
국내 증시 조정에도…충청권 상장사는 '선방'

새 정부 출범 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국내 증시가 최근 조정 국면을 맞고 있지만, 충청권 상장사들은 비교적 선방하고 있다. 전체적인 시장의 침체 분위기 속 8월 한 달 간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 합계는 전월 대비 0.3%(4074억 원) 증가한 152조 3402억 원에 도달했다. 한국거래소 대전혁신성장센터가 9일 발표한 대전·충청지역 상장사 증시 동향에 따르면 8월 충청권 상장법인의 시가총액은 152조 3402억 원으로 전월(151조 9328억 원) 대비 0.3% 증가했다. 8월 한 달 동안 대전·세종·충남 지역의 시총은 근..

대전 공기업 임원 교체 `바람` 불까…대전관광공사 임원 교체 가닥
대전 공기업 임원 교체 '바람' 불까…대전관광공사 임원 교체 가닥

민선 8기 대전시 출범 이후 임명된 시 산하 공기업 임원이 속속 임기를 마치면서 연임과 교체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장우 시장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물갈이를 통한 조직 변화를 꾀할지, 연장으로 막바지 조직 안정화를 선택할지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9일 대전시에 따르면 시 출자·출연 기관장은 시장과 임기를 같이 하기로 조례로 정했지만, 시 산하 공기업은 지방공기업법을 적용받아 이와 무관하다. 이에 민선 8기 출범 이후 임명된 시 산하 공기업 임원들의 3년 임기가 순차적으로 끝나고 있다. 대전관광공사는 임원 교체 분위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올바른 손씻기로 식중독 예방해요’ ‘올바른 손씻기로 식중독 예방해요’

  • 전통시장 화재안전 집중조사 전통시장 화재안전 집중조사

  • ‘한국의 情을 고향에 전하세요’ ‘한국의 情을 고향에 전하세요’

  •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 K-water 안전기동점검반 임명식...‘안전을 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