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어떻게 먹을 것인가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어떻게 먹을 것인가

  • 승인 2020-03-11 10:20
  • 신문게재 2020-03-12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개
1995년 삼풍 백화점이 붕괴돼 아비규환이던 장면을 난 병원에서 보았다.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피투성이 머리를 손으로 감싸고 뛰쳐나오는 사람,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먼지를 뒤집어 쓴 중년 여성…. 나 역시 놀란 눈으로 입원실 침상에서 보신탕을 먹으며 TV 브라운관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때 난 병원에서 요양 중이었다. 세끼 밥을 대충 먹다보니 그만 병을 얻고 말았다. 초로의 의사는 보신탕을 권했다. 몸의 기력을 회복하는데 그만한 음식이 없다고 말이다. 입원해 있는 동안 삼시 세끼 보신탕을 미친 듯이 먹었다. 난 내가 삶에 대한 욕망이 그렇게 강한 줄 몰랐다. 매일 똑같은 음식을 먹느라 신물이 날만도 한데 오로지 살고 싶어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다. 그래서인지 의사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회복했다. 덕분에 41㎏ 나가던 몸무게가 47㎏으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나는 개를 좋아하면서 개고기를 먹었다. 예전 시골에선 다 그러했다. 개는 애완용이면서 가축의 개념이었다. 몇 년 키워 성견이 되면 팔고 강아지를 또 키우는 식이었다. 돼지나 소처럼 일종의 살림 밑천인 셈이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개도 종국엔 팔려 나가 보신탕 신세였지만 같이 사는 동안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산에 들에 어디를 가든 늘 함께 놀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면 '쪼니'부터 불렀다. 우리 집 개 이름은 다 '쪼니'였다. 먹을 것도 나눠 먹었다. 과자든 떡이든 우리가 먹는 것은 쪼니도 먹어야 했다. 식구라고 생각했으니까. 새끼를 낳으면 집안의 경사였다. 우리는 눈도 안 뜬 강아지들을 들여다보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 젖내 풍기는 강아지의 보드라운 발바닥을 쓰다듬고 여린 새싹 같은 귀는 또 어찌나 예쁜지,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땡볕이 내리쬐는 복날이면 장에서 사온 개고기로 엄마가 끓인 얼큰한 개장국을 먹었다.



그렇게 가족이 됐다가 팔려나가는 우리집 쪼니들의 역사는 장구했다. 그 중 오랫동안 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은 쪼니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키우던 개로 검은 색의 털이 약간 긴 순둥이였다. 당시 두 마리가 있었는데 나머지 한 마리는 영특하고 날렵한 네눈박이였다. 나는 그 개를 더 이뻐했다. 어느날 밭에 가면서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순둥이를 손으로 살짝 때렸다. 순둥이가 고개를 돌려 원망어린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동물의 눈이었지만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순둥이는 내가 네눈박이를 더 좋아하는 걸 알고 있는지 내 눈치를 보곤 했다. 시간이 흘러 중학교 때였나, 강열한 꿈을 꿨다. 순둥이 쪼니가 엄동설한에 어느 텅 빈 교실의 차가운 책상 위에서 새끼들을 품고 있었다. 새끼를 낳은 순둥이는 뼈만 앙상했다. 새끼들도 배가 고파 어미 품을 파고들며 울었다. 꿈에서 깬 나는 슬프고 무서워서 몸서리쳤다. 순둥이는 내 무의식 속에서 죄책감의 대상이 된 것이다.

다시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인류를 강력하게 위협하는 전염병은 동물을 매개로 한다. 코로나19도 박쥐에서 출발했다. 물론 코로나19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허나 갈수록 전염병의 주기가 빨라지고 있다. 불과 5년 전 우리는 메르스로 공포에 떨지 않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은 허약하고 어리석고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어찌보면 전염병은 인간에 대한 동물의 보복이다. 인간의 탐욕을 위한 가축의 증가와 생태계 파괴. 그리고 잔인한 도살방식. 나는 이젠 개고기를 안 먹는다. 개를 좋아하면서 개고기를 먹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웠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뛰노는 개들이 예뻐 눈을 떼지 못하면서 보신탕을 먹는 내가 얼마나 위선적인가. 고통스럽게 죽어간 나의 '쪼니들'과 동물들에게 용서를 빈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월요논단]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이번에는 대전이다
  2. 의정부1동 입체주차장 운영 중단
  3.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영상포함)
  4. 천안 삼은1번가 골목형상점가, '길거리 오픈축제' 개최
  5. 갑천습지 보호지역서 57만㎥ 모래 준설계획…환경단체 "금강청 부동의하라"
  1. 최대 1만 500세대 통합재건축…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청사진 첫 공개
  2. 파주시, ‘마장호수 휴 캠핑장’ 운영 재개
  3. [2025 보문산 걷기대회] 보문산에서 만난 늦가을, '2025 보문산 행복숲 둘레산길 걷기대회' 성황
  4. '교육부→복지부' 이관, 국립대병원 교수들 반발 왜?
  5. 쿠팡 개인정보 유출 2차 피해 주의보… 과기정통부 "스미싱·피싱 주의 필요"

헤드라인 뉴스


區마다 반려동물놀이터 만든 대전…이용자 10명 남짓 실효성 논란

區마다 반려동물놀이터 만든 대전…이용자 10명 남짓 실효성 논란

대전시가 전국 최초로 자치구별 한 곳씩 조성했다고 홍보해 온 반려동물놀이터가 실제 이용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면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시설에선 고객 니즈를 고려하지 않은 예약제가 발목을 잡았고, 대부분이 야외 공간에 그쳐 날씨와 계절적 변수를 고려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개장 이후 시설 활성화를 위한 홍보·프로그램 운영이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1일 취재에 따르면, 자치구에서 운영하는 반려동물 놀이터 이용자 수가 평일 평균 10명 미만, 주말 역시 10명 대에서 100명대까지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현..

`안전 지식왕`은 바로 나… 지난해 이어 2연패 퀴즈왕에 이목집중
'안전 지식왕'은 바로 나… 지난해 이어 2연패 퀴즈왕에 이목집중

충남 안전골든벨 왕중왕전을 향한 마지막 지역 예선전인 '2025 논산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논산 퀴즈왕은 지난해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한 학생이 차지하면서 참가학생과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논산시와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논산계룡교육지원청, 논산경찰서·소방서가 후원한 '2025 논산 어린이 안전골든벨'이 27일 논산 동성초 강당에서 개최됐다. 본격적인 퀴즈 대결에 앞서 참가 학생들은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본격적인 문제풀이에 돌입하자 침착함을 되찾고 집중력을 발휘해 퀴즈왕을 향한 치열한 접전이..

대통령실 “대통령 사칭 SNS 계정 확인… 단호히 대응”
대통령실 “대통령 사칭 SNS 계정 확인… 단호히 대응”

SNS에 대통령을 사칭한 가짜 계정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범죄 정황이 확인돼 대통령실이 각별한 주의를 요청했다. 전은수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1일 서면 브리핑을 통해 “최근 틱톡(TikTok), 엑스(X) 등 SNS 플랫폼에서 제21대 대통령을 사칭하는 가짜 계정이 확인돼 국민 여러분께 각별한 주의를 요청드린다”고 전했다. 가짜 계정들은 프로필에 '제21대 대통령'이라는 직함과 성명을 기재하고 대통령 공식 계정의 사진·영상을 무단 도용하고 있으며, 단순 사칭을 넘어 금품을 요구하는 등 범죄 정황도 포착됐다고 전은수 부대변인은 설명했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청설모의 겨울나기 준비

  • ‘사랑의 온도를 올려주세요’ ‘사랑의 온도를 올려주세요’

  •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 대전 갑천변 수놓은 화려한 불꽃과 드론쇼

  •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 대전 제과 상점가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