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미국의 위기가 함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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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미국의 위기가 함축하는 것

김명주 충남대 교수

  • 승인 2020-06-01 10:07
  • 수정 2020-06-01 22:30
  • 신문게재 2020-06-02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명주-충남대-교수
김명주 충남대 교수
미국이 위기다. 5월31일 현재, 미국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총 확진자수는 170만이 넘고, 사망자도 10만이 훌쩍 넘었다. 우리도 그다지 안심할 상황은 아니지만, 미국의 확진자/사망자 숫자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모두가 이렇게 묻는다. 미국이 선진국 맞아?

게다가 코로나 이후 미국의 실업자가 3000만 명을 넘었는데, 이 중 저소득층 유색인종의 피해가 가장 크다. 코로나 사망자 숫자에서도 흑인이 압도적 다수이다. 인종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로 인해 들끓는 사회적 불만은 결국 미네소타주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숨진 사건을 계기로 지금 현재 폭력적 시위가 미국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모두가 이렇게 묻는다. 미국이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선진국, 맞아?

미국은 첨단 과학/의료 기술, 고등교육의 측면에서는 선진국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미국은 특정 측면에서는 상당히 후진적이다. 그 후진성이 이번 코로나 사태이후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의료보험제도의 후진성, 인종차별의 후진성, 빈부격차의 후진성, 배금주의의 후진성, 미국 특유 기만적 낙관주의의 후진성, 공동체 정신의 부재와 같은 후진성이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바깥으로 곪아터진 것이다. 이런 후진성의 토양에서 피어난 트럼트는 미국 역사 최악의 대통령이고, 후진성이 최악의 절정에 다다르는데 혁혁하게 공헌했다.

코로나 사망자가 500명이 넘어서던 3월 중순부터 트럼프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이지 않는 적"으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전시 대통령"이라고 부르면서 코로나 위기를 "전쟁"으로 은유했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적"으로 의인화했다. 어떤 은유를 사용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국민을 설득하는 대통령의 수사학은 그 국가가 추구하는 전략의 무의식을 드러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코로나 위기를 "전쟁"과 "적"으로 은유하는 트럼프의 호전적 수사학이 함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뭐든지 싸워서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자신에게 찬성하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고, 그 적과는 전쟁해야 하고, 전쟁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 이러한 호전성은 트럼프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서구 문화 전체의 성향을 반영한다. 오랫동안 서구 사유를 지배했던 전사남성의 서사는 호전성을 숭배했고, 승자가 독식하는 정글의 법칙만이 현실원리였다. 트럼프는 서구 전사문화의 화신이다.

록펠러 브라더스 펀드의 수장인 스티븐 하인츠(Stephen Heintz)는 지난 350년 동안 서구를 작동시켰던 세 개의 핵심 시스템-자본주의, 국민국가 체제, 대의민주주주의-가 오늘의 세계에 맞지 않는 낡은 시스템이 되어버렸다고 주장한다. 세 개 시스템이 호전적 적대성을 바탕으로 할 때 자본주의는 공정대신 탐욕스러워지고, 국민국가는 자율대신 자국이기주의에 빠지고, 대의민주주의는 국민대신 권력과 부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미국의 위기가 서구 전체의 위기는 아니겠지만, 서구 호전적 전사문화의 위기인 것은 확실하다.

한국 질병관리본부장 정은경의 수사는 트럼프와 다르다. 그는 단 한 번도 코로나를 "적"으로 규정한 바 없다. 시사저널이 "워드 카운터" 프로그램을 돌린 결과,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당부" "권고" "부탁" 인 것으로 밝혀졌다. 트럼프는 당부하거나, 부탁하거나, 권고하는 설득의 수사학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오늘도 트럼프는 시위가 악화되자 군대를 투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는 언제나 상대를 적대시하면서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위협의 수사학을 쓴다. 그런 호전성 결과는 10만이 넘는 사망자와 미국 30여개 도시의 폭력적 시위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섬세한 디테일과 수치 제시와 더불어, 정은경의 부드러운 당부와 권고는 약해 보이지만 오천만이 신뢰하는 힘을 발휘한다.

김명주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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