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반달가슴곰을 위하여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반달가슴곰을 위하여

  • 승인 2020-07-01 18:04
  • 신문게재 2020-07-02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1170541301
게티 이미지 제공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관한 영화다. 영화는 공포스럽고 구역질나는 장면이 많다. 그 곳엔 인간의 존엄성은 없다. 손이 뒤로 묶이고 얼굴에 비닐봉지를 쓴 채 죽은 수십 구의 시체들과 한 낮 고속도로에서 경찰의 총탄 세례를 맞아 벌집 투성이가 돼 죽어가는 카르텔 조직원들. 그리고 카르텔이 경찰과 시민들에게 공포를 주입시키기 위해 육교에 매달아 놓은 시체들. 높은 육교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알몸의 시체들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시뻘건 고깃덩이에 불과하다. 정육점의 붉은색 형광등 아래 갈고리에 꿰여 매달린 소·돼지고기 말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시체와 정육점의 고기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은 다르다. 왜 그럴까.



일반적으로 인간은 동물의 고기를 먹고 산다. 인간 사회에서 그것은 지극히 합법적이다. 이에대해 약육강식의 원리를 들이대면 설명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인간은 그것을 자연의 섭리로 간주하니까.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의 관계! 인간의 문명은 계급 갈등으로 점철돼 왔다. 마르크스의 계급론이 달리 탄생했겠는가. 그러나 인류사에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동물 간의 계급을 논한다는 건 생뚱맞다고 여겨졌다. 어디까지나 인간만이 지고한 고등동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시골 마을에선 동물을 잡는 일이 흔했다. 명절이나 한 여름 몸보신 차원에서 살찐 돼지 한 마리 잡아 마을 사람들이 나눠 먹었다. 고기가 귀해 쉽게 먹지 못하던 시절, 작정하고 날 잡아 배불리 먹는 마을 잔치인 셈이다. 그런데 그 날 '간택된' 돼지는 쉽게 죽을 수 있는 운명이 아니었다. 돼지는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길고 긴 고통을 겪는다. 동네 장정들은 밧줄로 묶은 돼지를 옆으로 누인 다음 식칼로 목을 딴다. 선지피를 받기 위해서다. 발버둥치는 돼지의 처절한 비명은 세상 끝까지 울려 퍼진다. 그 사이 돼지 목 아래에 놓인 양동이엔 시뻘건 피가 비린내를 풍기며 콸콸 쏟아진다. 돼지의 생명줄은 질겼다. 목에 구멍이 뚫린 채 많은 피를 쏟아내고도 한참을 버텼다. 인간의 고통과 동물의 고통은 다를까.



조르주 바타유는 평생 에로티시즘에 천착한 사상가다. 그는 죽음과 에로티시즘은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았다. 다소 괴짜같은 성향의 바타유는 20세기 초에 찍힌 한 몽골인의 흑백 사진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사진 속 몽골 청년은 도둑질하다 붙잡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었다. 나무에 묶인 청년은 팔이 잘리고 가슴팍의 살도 도려진 끔찍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청년은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타유는 이 사진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이 그토록 이 걸출한 사상가를 매혹시켰는지 나는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얼마 전 방송에서 사육곰 불법 도살 장면이 보도됐다. 농장주는 손님을 초청해 반달가슴곰을 보여주며 도살했다. 마취 총을 쏴서 혀를 자르고 발바닥을 자른 다음 몸을 차례로 해체했다. 그 모든 과정은 새끼 곰들과 다른 동물들이 보는 가운데 이뤄졌다고 한다.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동물의 고통에 관심이 많았다. 벤담은 인간과 동물을 같은 선상에서 보았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모든 동물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했다고 한다. 먹방 프로에서 살아 있는 문어가 끓는 물 속에서 몸부림칠 때, 불에 달궈지는 석쇠 위에서 조개가 입을 딱 벌리고 거품을 토해내는 걸 보면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 인간이 육식을 멈추는 건 불가능하다. 물론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도 엄연히 존재한다. 다만,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 동물의 고통에 공감하고 동물복지에 대해 한 발짝 나아가자는 얘기다. 역지사지는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뉴노멀 시대 아닌가.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5 교원양성기관 역량진단 발표… 충청권 대학 정원 감축 대상은?
  2. 사실상 처벌 없는 관리… 갇힘사고 959번, 과태료는 3건
  3. [라이즈人] 홍영기 건양대 KY 라이즈사업단장 "학생중심 성과… 대학 브랜드화할 것"
  4. 대전교육청 교육공무원 인사… 동부교육장 조진형·서부교육장 조성만
  5. 대전교육청 공립 중등 임용 최종 합격자 발표… 평균경쟁률 8.7대 1
  1. 전문대 학사학위과정 만족도 2년 연속 상승… 재학생·졸업생 모두 4점대
  2.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3.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
  4. 건양대-아이언닉스 AI 인재양성·생태계 조성 맞손
  5. 에너지연, 공기 중 이산화탄소 포집 규모 19배 업… 2035년까지 연간 1000t 실증

헤드라인 뉴스


대형마트도 새벽배송 허용?… 골목상권에 ‘로켓탄’ 던지나

대형마트도 새벽배송 허용?… 골목상권에 ‘로켓탄’ 던지나

당·정·청이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골목상권인 소상공인들이 즉각 반발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의 매출 급감이라는 직격탄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게 업계의 우려다. 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최근 실무협의회를 열고 대형마트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청은 해당 법에 전자상거래의 경우 관련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예외 조항을 두는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

[정책토론회]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방의회`의 역할과 준비 과제를 묻다"
[정책토론회]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방의회'의 역할과 준비 과제를 묻다"

연말부터 본격화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본궤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이 충남·대전통합특별법안을 국회에 발의하며 입법 절차에 들어가면서다. 민주당은 9일 공청회, 20~21일 축조심사, 26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오는 7월 충남대전특별시 출범이 현실화된다. 하지만 저항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 소속인 이장우·김태흠 시·도지사와 지역 국민의힘은 항구적 지원과 실질적 권한 이양 등이 필요하단 점을 들어 민주당 법안에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시민의 목소리가 배제된 채 통합이 추진..

부여 관북리 유적서 `백제 피리` 첫 확인… 1500년 잠든 ‘횡적’이 깨어나다
부여 관북리 유적서 '백제 피리' 첫 확인… 1500년 잠든 ‘횡적’이 깨어나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소장 황인호)는 5일 오전 부여군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부여 관북리 유적 제16차 발굴조사 성과 공개회를 진행했다. 이번 공개회에서는 2024~2025년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주요 유물들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알렸다. 부소산 남쪽의 넓고 평탄한 지대에 자리한 관북리 유적은 1982년부터 발굴조사가 이어져 온 곳으로 사비기 백제 왕궁의 핵심 공간으로 인식된다. 대형 전각건물과 수로, 도로, 대규모 대지 등이 확인되며 왕궁지의 실체를 밝혀온 대표 유적이다. 이번 16차 조사에서 가장 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취약계층을 위한 설맞이 사랑의 온정 나눔

  •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 국민의힘 대전시당, ‘졸속통합, 차별통합 중단하라’

  • 초미세먼지에 갇힌 대전 도심 초미세먼지에 갇힌 대전 도심

  • 단속 무시한 건축 폐기물 무단 투기 단속 무시한 건축 폐기물 무단 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