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 世窓密視] 만 권 독서 단상

  • 오피니언
  • 홍키호테 세창밀시

[홍키호테 世窓密視] 만 권 독서 단상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 승인 2021-03-3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 "한국 사회에서는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가 인생의 갈림길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모든 학생과 학부모는 대학 입시에 사활을 건다.(후략)" -

'한국경제 빅 이슈' (서울사회경제연구소 & 생각의 힘 발간)에 나오는 문장이다. 맞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을 안 나오면 사람 취급도 받기 힘들다. 이는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다.

내가 바로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갔다고 치자. 공부는 어느 정도 할까. 현재 한국의 대학은 학습경쟁이 대학 입학 단계에서 멈춘다.

중고교 시절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해서 대학에 입학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학생은 학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2014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학습시간이 초등학생은 5시간 20분으로 나타났다.



중학생은 6시간 41분, 고등학생은 7시간 34분인데 대학생 이상 학생계층은 3시간 54분에 불과했다. 초등학생보다 적은 학습시간, 한국 대학생의 모습이다. 이 또한 [한국경제 빅 이슈]에 등장하는 팩트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이자 문신이다. 그의 그림과 글씨는 국보급 문화재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정희는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중국 명말 청초의 사상가였던 고염무(顧炎武)도 했다. '독서만권(讀書萬卷) 행만리로(行萬里路)'라고. 이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다녀라"라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최근 저서를 다시 내면서 유튜브를 찍었다. 진행자가 물었다. "그동안 읽은 책이 만 권도 넘는다면서요?" "맞습니다!" 주저 없이 답변했다. 나는 시간만 나면 책을 본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나처럼 독서삼매경에 빠질까? 통계청의 '2019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이 평일 책 읽기에 투자하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고작 10분이라고 했다.

이처럼 책을 안 보는 이유는 뭘까?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부터 페이스북, 블로그, 밴드,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SNS까지 재밌는 게 차고 넘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자신은 몰라도 자녀만큼은 대학을, 그것도 소위 명문대에 보내고자 한다면 부모가 먼저 책을 봐야 한다. 지금과 달리 과거엔 책의 가격이 엄청났다.

고대와 중세 유럽에서 문자를 기록하는 데 사용한 양피지(羊皮紙)는 내구성이 뛰어났다. 그렇지만 가격이 매우 비쌌다. '성서' 한 권을 만들려면 양 200마리 이상의 가죽이 필요했다고 한다.

15세기 독일에서는 양 200마리에 곡물 수십 가마를 더해야만 비로소 설교집 한 권과 바꿀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시대 '중종실록'에 실린 기록에 따르면 당시의 문신 어득강(魚得江)이 한 말이 나온다. "가난한 이는 책값이 없어 책을 사지 못하고, 값을 마련할 수 있다 해도 '대학'이나 '중용' 같은 책은 상면포(常綿布) 3~4필은 주어야 합니다."

상면포는 품질이 아주 좋은 옷감을 말한다. 이 옷감이 3∼4필이라고 한다면 당시 2∼3마지기 논의 1년 소출과 맞먹었다. 따라서 지금의 시세로 치자면 엄청난 고가였다.

한데 지금은 지하철이든 시내버스든 그 안에서 책을 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진부한 주장이겠지만 책은 여전히 우리네 인생길을 더욱 밝고 평탄한 길로 인도하는 어떤 등대다.

나는 지금도 툭하면 책을 읽는다. 만 권의 독서는 그래서 가능했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초경서반-홍경석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